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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홉 번째 한우물 가게 – 경화춘
한 그릇에 오롯이 담긴 정성

70년이 훌쩍 넘은 ‘경화춘’은 김해 최초의 중식당이다. 대만 화교 곡소득 씨가 문을 열었고, 뒤를 이어 아들 내외인 곡조명(CHU CHAOMING) 씨와 왕소현(WANG XIAOFEI) 씨가 운영하고 있다. 아무것도 없이 빈손으로 시작해 차근차근 자리 잡으며 겪었던 우여곡절. 그 다사 다난했던 세월 안에 담긴 이야기를 들어봤다.

태어났을 때부터 여기 이곳

경화춘 대표 곡조명 씨는 경화춘이 정확히 언제 문을 열었으며, 경화춘이라는 이름이 어떻게 누구에 의해서 지어졌는지 기억하지 못한다. 그저 1950년 이전에 시작됐다는 정도만 알고 있을 뿐. 그가 태어났을 때 경화춘은 이미 운영 중이었고, 모든 가족이 함께했던 이곳에 그 역시 자연스럽게 녹아들었기 때문이다.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경화춘도 하루아침에 생겨난 건 아니다. 전쟁을 겪으며 힘들었던 시절 그의 아버지 곡소득 씨는 배급받은 밀가루로 빵, 만두를 만들어서 팔기 시작했고, 작은 가게부터 2층짜리 중식당까지 차근차근 자리 잡게 됐다

“중국은 남자든 여자든 밀가루 요리를 다 할 줄 알거든요. 한국 사람이 전이나 떡볶이 이런 걸 할 줄 아는 거랑 똑같아요. 맨날 하는 거니까.” 빈손으로 한국에 왔지만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으로 먹고살기 위해 최선을 다한 결과가 경화춘인 것이다. 곡조명 씨는 중학생 때부터 방학과 방과 후를 활용해 아버지를 본격적으로 도왔고, 요리를 접하게 됐다. 그렇게 태어나면서부터 봐왔던 아버지의 모습이 어느덧 60대가 된 자신에게서 보일 만큼 오랜 세월이 흘렀다

다시 그리고 변함없이

곡조명 씨는 6남매 중 셋째로, 첫째인 형도 경화춘을 운영했었다. 동상동에 위치한 지금의 경화춘을 형이, 내동 분점을 곡조명씨가 운영했는데 형이 돌아가시면서 이곳을 운영하게 된 것이다. 내동에서도 10년을 보낸 터라 쉬운 결정은 아니었지만, 경화춘의 처음이 동상동이었기에 돌아오기로 했다. 오랫동안 비워져 있어 폐가가 된 2층짜리 건물을 허물고, 새로 지었다. 2014년에 다시 영업을 시작했지만 광고는 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장사가 조금 안 되 긴 했어요. 그런데 사람들이 지나가면서 한 명씩 한 명씩 ‘어? 경화춘 있네?’ 하면서 들어오셨어요. 그리고 ‘네가 여기 있네?’라며 저를 알아보시고는 경화춘이 다시 문을 열었다는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어요.” 곡조명 씨는 김해에서 태어났는데, 김해에는 화교가 몇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의 친구도 이웃도 모두 김해 사람이다. 그는 김해 사람들이 참 좋다고 거듭 말했다. 화교라는 이유로 여러 규제에 얽매여 힘든 일을 많이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좋은 이웃들 덕분에 좋은 시절을 보낼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런 마음이 통한 걸까. 경화춘은 동상동이 번화가였을 시절 못지않게 많은 사람이 기쁜 마음으로 찾고 있다.

보고 배운 그대로 이어가다

그저 오래됐다는 이유만으로 장사가 꾸준히 잘된다는 건 어려운 일이다. 음식점에서 중요한 건 무엇보다 ‘맛’. 곡조명 씨는 자신이 배웠던 그대로, 좋은 재료를 가지고 정성을 다해 음식을 만든다. “부모님께서 항상 말씀하셨어요. 재료를 절대 아끼면 안 된다, 손님한테 정성을 다해야 한다, 장사가 안 될 때 더 잘해야 된다고요.” 힘든 시기라고 해서 안 좋은 재료를 쓸 수는 없다고, 부모님의 말씀을 지켜왔기에 여태까지 장사를 할 수 있었다며 두 사람 모두 입을 모아 이야기했다. 좋은 재료와 함께 빼놓을 수 없는 한 가지, 손맛이다. “저희 남편이 음식 만드는 솜씨가 타고난 게 있는 것 같아요. 집에서도 뚝딱뚝딱 그냥 만드는 것 같은데 먹어보면 정말 맛있어요.” 왕소현 씨는 중국에서 곡조명 씨를 만나 1996년에 한국에 왔다. 처음에는 한국말을 할 줄 몰라 주문을 받는 의사소통도 힘들었지만, 지금은 홀을 책임지고 있다. 오랜 세월 함께하며 손발이 척척 맞게 된 두 사람은 한결같은 정성으로 경화춘을 지키고 있다.

70~80대의 손님 중에는 경화춘 2층에서 결혼식을 올렸다며 추억하는 손님도 있고, 멀리 외국에서 그때 그 맛이 그리워 찾아오는 손님도 있다. 또, 경화춘이 대를 이어 오고 있는 것처럼 손님들도 대를 이어 찾는 사람이 많다. 곡조명 씨와 왕소현 씨는 동상동에서 다시 문을 열면서 욕심 없이, 우리를 찾아주는 손님들에게 정성을 다하자고 생각했다. 두 사람의 마음이 담긴 ‘정성 한 그릇’이 조금 더 오랫동안 많은 사람에게 추억을 안겨주길 바란다

주소 김해시 분성로335번길 8-1(동상동)
문의 055-326-5168

작성일. 2021. 02.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