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해시는 개업한 지 30년 이상 된 가게 26곳을 발굴해 ‘한우물 가게’로 선정했다. 본지에서는 오랜 시간과 많은 이야기를 간직한 한우물 가게를 매달 한 곳씩 다루고 있다
고소한 향기로 입맛을 돋우는 참기름은 한 방울만으로도 음식의 풍미를 높인다. 한식의 마지막을 장식할 참기름을 위해 깨를 볶고 기름을 짜는 사람들이 있다. 봉황동에서 늘 한결같은 모습으로 참기름을 만드는 조은현, 노두리 대표. 부부가 함께 운영 중인 가게 봉황참기름에는 곳곳에 삶의 흔적이 배어 있다. 손때 묻은 채유기와 제분기, 가게 곳곳에 밴 고소한 향기는 정겹고 따뜻한 감성을 일으킨다. 오늘도 고소한 깨 볶는 향기가 봉황동을 감싸는 봉황참기름에서 두 대표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주소 김해시 김해대로2325번길 43 (봉황동)
문의 055-336-4904
갑작스럽게 찾아온 인생의 전환점
큰딸이 중학교에 입학하면서 조 대표는 근심이 가득했다. 딸이 입학한 학교와 집은 너무 멀었다. “저희는 상동면에서 묘답을 경작하던 농부였습니다. 묘답은 의뢰인의 산소를 관리하고 대가로 의뢰인의 땅을 빌려서 농사를 짓는 일입니다. 첫째 아이가 중학교에 입학하면서 통학이 불가능했어요. 버스를 타려면 30분이나 걸어서 산길을 내려가야 했습니다. 그렇다고 어린 아이 혼자 자취를 시킬 수도 없는 노릇이었지요.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두 대표는 시내로 이사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순전히 아이들의 교육 때문이었다. “저희 인생의 새로운 전환점이었습니다. 제가 마흔 살이 되던 해였지요. 이사를 결심했는데 제 삶을 돌아보니 저희가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논과 밭을 경작하는 농부였지만, 묘답으로 농사를 지었기에 땅도 저희 것이 아니었지요. 특별한 기술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때 손을 내밀어 주신 분은 저희 누님이셨습니다. 누님이 운영하시던 봉황참기름에서 일을 배웠습니다. 참깨와 들깨를 볶고 기름을 내는 착유와 고추와 쌀을 빻아 가루를 내는 제분 기술을 배웠지요. 이후에 은행 빚을 내어 가게를 물려받았어요. 1988년 4월이었습니다. 누님께 정말 감사했어요.”
인생의 제2막이 시작되다
새로운 마을에 정착해 익숙지 않은 일을 계속하는 것은 어려웠다. “당시만 해도 직접 농사지은 깨와 고추를 가져오시는 분들이 많았지요. 정신을 차리고 돌아보니 여름이 다가오고 있었어요. 여름에는 미숫가루를 만들어 드립니다. 미숫가루를 만들려면 손님이 가져오신 곡물을 솥에 볶아야 합니다. 당시는 연탄불로 곡물을 볶았어요. 아침에 피운 연탄불이 오후 3시쯤이면 꺼지곤 했습니다. 일이 많았기 때문에 중간에 연탄을 갈 수 없었지요. 불이 꺼진 후에 미숫가루 제조를 요청하는 손님이 오면 급하게 번개탄을 피워서 일했습니다. 그만큼 일이 많았어요.” 조 대표는 밀려드는 손님으로 누나에게 배운 착유 기술을 계속해서 연마해 갔다. 하지만 시행착오는 두 대표도 피해 갈 수 없었다. “참깨와 들깨는 기본적으로 저희만의 노하우가 있습니다. 깨를 볶는 시간과 온도는 참기름의 맛을 좌우합니다. 최고의 풍미를 위해 시스템을 만들어 놓은 것이지요. 하지만 동백 씨와 해바라기 씨, 살구 씨 같이 접하기 힘든 재료를 처음 만났을 때는 종종 실수를 했습니다. 예전에 손님 한 분이 생들깨 기름을 내어 달라고 하셨어요. 들깨를 볶지 않으면 생들깨이니 기존의 방식 그대로 기름을 내면 기름이 완성되리라 생각했습니다. 한 번도 시도해 본 적은 없었지만, 큰 문제가 될 것은 없다고 생각하고 채유기에 볶지 않은 들깨를 넣었습니다. 착유가 시작되자마자 기름이 나오는 구멍에서 들깨가 사방으로 튀기 시작했습니다. 총알처럼 튀어 나가는 들깨 때문에 옆에 사람이 있었으면 다칠 뻔했지요. 알고 보니 생들깨 기름을 내기 위해서는 들깨를 포에 감싼 상태로 착유해야 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경험과 노하우가 쌓이니 모두 옛날이야기가 되었네요.”
아직 인생의 제2막은 끝나지 않았다
가게를 운영하면서 두 대표는 한 가지 신념이 생겼다. 봉황참기름을 찾아오는 손님을 위한 다짐이었다. “저는 노 대표에게 딱 한 가지 가치만 지키자고 말했습니다. ‘정확하게 하고 정직하게 하자’입니다. 타인을 속이기 위해서는 자신부터 속여야 하는데 저는 저를 속이려 하니 마음이 아파서 그렇게 할 수 없었습니다. 스스로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기 위해 저희 가게를 믿고 살 수 있는 제품만 생산했습니다.” 고된 노동 속에서 한 번도 어렵고 힘들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는 두 대표는 계속해서 봉황참기름을 이어가고 싶다고 말한다. “1990년대는 기억이 나지 않을 만큼 일을 많이 했습니다. 하지만 단 한 번도 일이 힘들어서 그만두고 싶다고 생각해 본 적 없어요. 농사를 짓는 것보다 훨씬 쉬웠습니다. 젊고 어릴 때는 생각지도 못한 직업을 가지게 되었지만 저는 지금에 감사합니다. 가게를 통해서 딸과 아들의 뒷바라지를 마쳤고 생계를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 어렸던 아이들은 이제 결혼을 하고 손자를 낳아 건강하게 잘살고 있습니다. 더 바랄 것이 없지요.”
우직하게 자신의 자리를 지켜온 두 대표. 고소한 향기에 깃든 세월이 벌써 33년이 되었다. 아름다운 노부부가 운영하는 가게에는 두 사람의 금실처럼 고소한 깨 볶는 향으로 지나가던 이들의 발걸음을 사로잡는다. 앞으로도 계속 고소한 향기가 계속되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