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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 번째 한우물 가게 – 금능마크사
바늘과 실로 이어온 디자인

※ 김해시는 개업한 지 30년 이상 된 가게 26곳을 발굴해 ‘한우물 가게’로 선정했다. 본지에서는 오랜 시간과 많은 이야기를 간직한 한우물 가게를 매달 한 곳씩 다루고 있다

주소 김해시 가락로 135(대성동)
문의 055-322-0525

힘차게 돌아가는 금능마크사의 재봉기 앞에서 꼼꼼하게 작업물을 살피는 김시식 대표. 그의 손이 닿은 자리마다 반듯한 자수가 모습을 드러낸다. 마크사는 학생 명찰과 군인의 계급장, 단체기와 상패 등을 전문적으로 제작해 주는 곳이지만, 금능마크사는 조금 특별하다. 컴퓨터를 활용한 자수 디자인부터 다양한 방식의 마크 제작과 광고 디자인까지 김시식 대표의 화려한 능력 덕에 김해를 넘어 전국에서 금능마크사를 찾는다. 폭넓은 사업 분야를 모두 공부를 통해 스스로 배워왔다는 김 대표. 36년째 대성동에서 김해 시민과 함께 해 온 그의 이야기를 들어 보자.

어려운 시절을 이겨낸 힘

먹고사는 것이 힘들었던 시절, 마크사 일은 김 대표에게 천직이었다. “기술과 노력을 겸비하면 이겨내지 못할 일은 없다고 생각했어요.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시절이었지요. 적은 창업 비용으로 남녀노소 누구나 고객으로 맞이할 수 있는 일을 찾았습니다. 재봉으로 수를 놓는 일은 꼼꼼함과 아이디어가 필요했지요. 저의 적성과 잘 맞았습니다.” 손재주가 좋아 빠르게 재봉수 기술을 배운 김 대표는 1984년 금능마크사를 창업했다. “사업이 번창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쇠 금(金)자에 언덕 능(陵)자를 써서 가게 이름을 정했어요. 황금 무더기라는 뜻입니다. 마크사를 운영하며 결혼도 하고 아이둘을 다 키워냈으니 잘된 일이지요” 김 대표는 큰 부자가 되길 바라기보다 노력한 만큼의 대가로 살뜰하게 생활을 꾸려가고 싶었다. “결혼하고는 아내와 같이 일을 했습니다. 재봉기 1대와 저의 기술을 믿었어요. 밤이 늦어도 손님과의 약속은 무조건 지키려고 노력했습니다. 지금처럼 홍보 수단이 발달하지 않았기에 손님 한 분 한 분의 입소문이 중요했지요.”

한 땀에 깃든 노력

성실한 김 대표에게 행운의 여신은 손을 들어줬다. “처음 개업했을 당시에 김해에는 육군공병학교가 있었습니다. 군인들이 많았지요. 군인 명찰과 계급장을 달아 주면서 가게의 기반이 잡혔습니다.” 여유가 생긴 김 대표는 사업 분야를 조금씩 넓혀야겠다고 생각했다. 시트지 인쇄기를 구입한 것은 또 다른 분야의 시작이었다. “기기를 구매하자마자 우연히 김해전화국의 고민을 듣게 되었습니다. 전화국에는 부서별로 배치된 내선 전화와 통신 장비가 수 천대 있었어요. 전화번호와 장비 고유 번호를 수기로 정리하는 것이 어려워 여러 업체와 논의를 했지만 뾰족한 수를 찾지 못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저는 아이디어를 냈지요. 시트지 인쇄기로 현황판을 출력하는 것이었습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어요.” 입소문이 나면서 전국의 전화국에서 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김 대표는 진영, 장유, 생림, 밀양, 부산 사직, 거제 경기 광주 등 전국에서 몰려드는 일을 처리하느라 잠을 줄여야 할 정도였다. “더 많은 기술, 더 새로운 방식으로의 접근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현실에 안주하는 것이 아니라 계속 나아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열정, 지금의 그를 만든 힘

김 대표는 박람회와 엑스포를 다니며 시대적 변화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서울 코엑스에서 열리는 박람회와 엑스포에 매년 갔습니다. 새로운 기술을 접하고 개발 회사에 찾아가 가르침을 부탁한 일도 있었지요. 배움의 손을 내밀 때 많은 분이 잡아 주셨습니다. 참 고마웠습니다.” 박람회를 둘러보던 김 대표는 컴퓨터가 미래를 여는 핵심이라 생각했다. “1992년에 도스컴퓨터를 장만했습니다. 인쇄기와 부가적인 주변 기기를 구입하니 1,800만원 이었어요. 영세한 가게에서 정말 큰돈을 투자한 것이었지요. 컴퓨터 그래픽 디자인을 할 수 있게 되면서 컴퓨터 자수, 대형 현황판 제작 등 사업의 범위가 넓어졌습니다. 변화하는 트렌드에 맞춰 나가기 위해 끊임 없이 공부했어요. 1999년 인제대학교 최고 경영자 과정을 수학하면서 경영에 대해서도 배웠습니다. 한 번도 빠짐없이 참석해 출석상을 받기도 했지요. 지금 저의 모습은 오롯이 한 길만을 위해 집중하며 치열하게 살았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합니다. 한순간도 허투루 보내지 않았어요. 요행을 바라지 않고 저에게 주어진 삶에 불평불만 없이 늘 최선을 다했습니다. 나이가 들어 일을 그만두는 순간이 오겠지요. 그때가 될 때까지 계속해서 정진할 것입니다.” 김 대표의 성실함은 금능마크사의 모든 상품마다 숨어 있다. 자수 한 땀에도 상품을 사용할 손님을 위해 튼튼하고 견고하게 작업한다는 김 대표. 열정과 노력으로 일궈 온 36년의 세월은 그의 머리 위에 하얗게 내려앉았다. 금능 마크사는 오늘도 열심히 달리고 있다. 재봉기가 내는 삶의 소리가 지금도 멈추지 않는다.

작성일. 2020. 11.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