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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한우물 가게 – 봉황이용원
사각사각, 멋을 디자인하다

주소
김해시 분성로302번길 25(서상동)
문의
055-324-9089

사각사각. 빗으로 쓸어 넘긴 머리카락이 경쾌한 소리와 함께 다듬어진다. 길게 자란 머리카락이 깔끔하게 정리되면 면도가 시작된다. 하얀 비누 거품을 턱과 입가에 바르고 면도칼로 조심스럽게 손님의 수염을 깎아주는 모습은 이발소가 아니면 볼 수 없는 풍경이다. 김해의 멋쟁이 신사들이 방문하는 이곳은 봉황이용원. 이발사의 손이 시선을 끈다. 그의 가위질로 손 위에는 손님의 머리카락이 쌓이고 이용원을 지켜 온 세월의 흔적이 손주름 사이사이 배었다. 반세기가 넘는 시간 동안 김해 신사들의 머리를 책임진 봉황이용원의 허삼주 대표.허 대표의 시간 속에서 부드럽게 빗어 넘긴 추억 한 자락이 우리를 기다린다.

※ 김해시는 개업한 지 30년 이상 된 가게 26곳을 발굴해 ‘한우물 가게’로 선정했다. 본지에서는 오랜 시간과 많은 이야기를 간직한 한우물 가게를 매달 한 곳씩 다루고 있다.

소년, 이발을 배우다

소년의 나이 15세, 세상은 가혹했지만 삶의 새로운 방향에 눈을 뜨게 해줬다. 1961년 집안 사정이 어려워지면서 중학교에 재학 중이던 허 대표는 학교를 그만둬야 했다. 새로운 인생의 기로에 놓인 것이다. “중학교 2학년 때였을 겁니다. 공납금을 낼 형편이 되지 않아 학교를 그만두고 일을 해야 했어요. 기술을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당시 배울 수 있는 기술로 자동차정비 기술과 양복을 만드는 재단 기술도 있었지만 끌리지 않았어요. 마침 삼촌이 이발사로 계셨기에 이발 기술을 배워보고 싶었습니다.” 허 대표는 학교에서 벗어나 삼촌의 이발관을 새로운 배움의 터로 삼았다. “이발 기술을 바로 가르쳐 주시는 것이 아니었어요. 바닥에 떨어진 머리카락을 쓸어 담는 청소부터 시작했습니다. 몇 년간 바닥 청소를 하면서 선배 이용사들이 이발하는 모습을 어깨너머로 익히기 시작했어요. 차츰 이발하는 방법이 눈에 익어 갈 때쯤 바닥 청소에서 벗어나 머리를 감겨주는 일로 넘어 갔지요.” 당시 이용 기술은 아무나 배울 수 없었다. 허 대표는 삼촌이 운영하시는 이발관에서 일을 익혔지만 모든 방식을 정석대로 배워 나갔다. “이발 보조사로 오랜시간 허드렛일을 했어요. 꼬박 10년이 걸렸네요. 수련 기간이 끝나자 바로 이용사 자격증을 취득했습니다.”

초보 이발사의 작품

1970년 허 대표는 이용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본격적으로 면도와 이발 기술을 배우기 시작했다. “처음 이발 기술을 배울 때 면도칼과 가위를 사용해야하는 작업이라 너무 떨렸어요. 조금만 실수를 해도 손님이 다칠 수 있기 때문이에요. 날카로운 작업 도구가 손님의 몸과 가까운 곳에 닿기 때문에 긴장을 많이 해야 합니다. 게다가 이발은 심미적인 부분도 중요해요. 사람마다 다른 헤어 라인과 두상을 고려해서 잘 어울리게 머리카락을 잘라야 합니다. 이발 보조사로 10년 동안 눈으로 익힌 것과 실제로 해보는 것은 많이 달랐어요. 이발을 마치고 거울을 본 손님이 화를 내는 경우도 있었습니다”며 웃어 보인 허 대표는 초보 이발사들이 겪는 어려움을 모두 거친 과거를 회상 했다. “이발을 마쳤는데 손님의 양쪽 머리 길이가 다른 겁니다. 왼쪽을 자르면 오른쪽이 길고, 오른쪽을 자르면 왼쪽이 길었어요. 자꾸 짧아지는 머리 때문에 손님의 표정이 점점 어두워지더니, 결국 버럭 화를 내셨어요. 당시는 초보 이발사라 경험이 부족해 어쩔 수 없었어요. 지금도 그 당시를 생각하면 웃음이 납니다.”

검은 머리가 파뿌리 될 때까지

초보 이발사에서 이발 장인이 되기까지 5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면도사로 일하던 아내를 지인의 소개로 만나 동종 업계에 종사한다는 공통점이 계기가 돼 결혼하게 됐습니다. 1976년 결혼을 하면서 같은 해 8월에 봉황 이용원을 개업했어요. 봉황이용원을 운영하면서 아내는 면도를 담당하게 됐지요. 부부가 같이 일하게 되니 손발이 잘 맞아 좋았습니다.” 매년 명절이 다가오면 봉황이용원은 깔끔하게 머리를 단장하려는 손님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학생부터 어르신까지 많은 손님이 머리를 하러 왔어요. 시간이 흐르면서 손님들과 손님들의 머리 모양도 변했어요. 처음 문을 연 1970년대에서 1980년대 중반까지는 이발 후 머리를 말리고 포마드를 발라 깔끔하게 빗어 넘기는 것이 남성 머리의 기본이었습니다. 당시 깔끔하게 빗어 넘긴머리를 하던 멋쟁이 신사들이 이제는 백발이 되어 머리를 하러 오십니다. 참 시간이 빠르게 흘렀네요.”

수동 이발기와 솥에 끓인 따뜻한 물로 머리를 감겨주던 시절이 있었다. 검고 억세던 이발사의 머리도 하얗게 변했다. 이제는 손님의 얼굴만 봐도 어울리는 머리 모양을 디자인 할 수 있다는 허 대표. 오늘도 손님들은 봉황이용원을 찾는다. 노련한 이발사의 가위 소리는 멈추지 않는다. 사각사각, 어서오이소.

작성일. 2020. 06.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