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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의 거장 푸치니가 남긴 최고의 역작
현대적인 재해석의 오페라 <나비부인>

푸치니의 오페라 <나비부인>이 초연된 해는 1904년이다. 원작인 존 루터 롱의 동명의 단편소설이 출판된 1898년에서 6년밖에 지나지 않았다. 그만큼 루터 롱의 단편극에는 당시의 서구인을 매료시킨 무언가가 있었다. 미국의 페리 제독이 군함을 이끌고 나타나 일본을 화들짝 놀라게 하여 강제로 개항 조약을 맺은 때가 1854년이다. 일본의 서구 열강에 대한 개항은 이때가 처음은 아니다. 포르투갈의 상선이 처음 나가사키 항에 들어온 때가 1571년이고 이후 나가사키는 일본이 세상 밖, 특히 유럽과 만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창구이기도 했다.

오페라 <나비부인>

<나비부인>은 나가사키 항을 바라보는 언덕의 집을 배경으로 한다. 가문의 몰락으로 게이샤가 된 일명 ‘나비부인’ 초초상은 갓 입항한 미군 장교 핑커튼에게 단돈 100엔에 집과 함께 팔려 갔다. 핑커튼의 일본 현지처가 된 셈이다. 돈으로 이루어진 계약관계지만 초초상의 주장에 따르면 열다섯 살에 핑커튼과 사랑에 빠져 아이를 낳는다. 그리고 핑커튼이 본국으로 돌아가며 남긴 다시 돌아오겠다는 약속을 철석같이 믿으며 자신을 탐하는 야마도리의 끈질긴 구애도 거절한다. 3년이 지난 어느 날 항구에는 미군함이 모습을 드러내지만, 초초상 앞에 선 사람은 핑커튼이 아니라 그의 아내인 케이트였다. 핑커튼의 아이를 데려가겠다고 하자 모든 걸 알아차린 초초상은 핑커튼이 직접 온다면 아이를 주겠다고 약속한다. 그리고 아이의 눈을 천으로 묶어 가린 후 장지문 뒤에서 아버지가 남긴 칼로 자결한다. 뒤늦게 방으로 뛰어든 핑커튼은 피를 흘리며 쓰러진 초초상과 엄마를 찾는 아들을 발견하고 오열한다.

오페라 <나비부인>의 초연은 2막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특히 2막이 길고 지루하기로 유명하다. 이탈리아에서는 초연 버전이 작곡가인 푸치니의 의중을 더 잘 살린 것으로 간주해서 가끔 초연 버전이 공연되곤 하지만 이탈리아 밖에서는 3막으로 이루어진 재공연 버전을 선호한다. 초연 버전은 지나치게 많은 인물이 등장해 속절없이 사라지며, 일본에 대한 핑커튼의 차별 가득한 악담들이 걸러지지 않고 쏟아지기도 하기 때문이다. 미국인이 주인공으로 나선 덕분인지 <나비부인>은 미국에서도 인기가 매우 높다. 초연 실패 후 절치부심하여 올린 재연은 큰 성공을 거두었고 빠르게 유럽 전역과 영국, 미국 등으로 수출됐다. 이 작품이 성공한 핵심에는 푸치니의 소름 돋을 정도로 아름다운 선율이 우선하겠지만, 이국적인 동양인에 대한 뿌리 깊은 편견을 종용하는 초초상이라는 인물이 서구인에게 주는 낯선 매력도 큰 지분을 차지한다.

“그가 멀리서 ‘버터플라이’ 라고 부르겠지. 난 대답하지 않고 숨을 테야.
안 그러면 난 기쁨으로 죽을지도 몰라!”

주인공 나비부인이 떠나간 핑커튼을 그리워하며 부르는 <어떤 개인 날>의 가사 중 일부다. 원망이라고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는 이 노래 가사를 보면 초초상의 주장대로 정말 십대의 소녀라는 사실을 의심할 수가 없다. 이 노래를 부르는 초초상의 직업은 게이샤지만 사랑하는 남자의 말에 순종하는 모습의 초초상이 만든 동양 여성에 대한 깊은 편견은 아무리 베트남, 중국계 코미디언 알리 웡이 등장해 동양계 미국인 여성으로서 편견에 둘러싸여 사는 인생을 통렬하게 풍자하거나 에미상을 수상한 <킬링 이브>의 주인공인 한국계 배우 산드라 오의 개성적인 모습을 보여줘도 여전히 굳건하다. 영국의 길버트와 설리반 콤비의 오페레타 <미카도>에 대해서는 질색 팔색하는 일본도 이 작품은 사랑하는지 나가사키에는 초초상을 연기했던 일본 오페라 가수의 동상이 세워져 있고 초초상이 핑커튼과 살림을 차렸으리라 짐작되는 언덕 위의 서양식 집에는 푸치니의 동상이 세워져 있을 정도라고 한다. 역시 일본을 배경으로 한 작품으로 1885년에 런던에서 초연됐던 <미카도>는 영국의 정치적 상황을 풍자하려 했다는 핑계라도 있지만 <나비부인>은 동양에 대한 편견의 집합체라는 비난을 피할 구석은 오로지 순전한 사랑, 그뿐이다.

작품에서 드러나는 오리엔탈리즘

동양에 대한 서구의 편협하고 몰이해한 시각이 현대에 와서도 거의 변한 게 없다는 사실은 1989년에 런던 웨스트엔드에서 개막한 뮤지컬 <미스 사이공>을 보아도 확연하게 드러난다. <미스 사이공>은 오페라 <나비부인>의 배경을 베트남 전쟁으로 옮겼을 뿐 기저에 깔린 동양에 대한 편견과 우월한 입장에서 내려다보는 시혜적 박애주의가 그대로 남아있다. 주인공인 초초상은 오늘 막 몸을 팔러 나온 베트남 여성 킴으로, 핑커튼은 킴과 사랑에 빠지는 미군 병사 크리스로, 초초상에게 집착하는 천박한 부자 야마도리는 킴의 약혼자 투이로, 돈을 위해 초초상을 부자에게 팔아 한 몫 챙기려 하는 뚜쟁이는 엔지니어로 묘사된다. 스펙터클한 전쟁 장면과 실물인가 싶은 박진감 넘치는 헬리콥터 퇴각 장면, 주옥같은 뮤지컬 곡들로 사랑을 받지만 내용을 보고 있자면 한숨이 절로 나온다. 핑커튼이 그랬듯이 크리스도 킴을 돈으로 사고 초초상이 그랬듯이 킴도 자신의 부모를 죽게 한 미군 크리스와 대가 없는 사랑에 빠져 어린 시절부터의 약혼자 투이를 외면한다. 초초상과 킴이 미군과 무조건적인 사랑에 빠지는 모습은 어쩔 수 없이 중국계 미국인 극작가 데이빗 헨리 황이 쓴 희곡 <M. Butterfly>에서 주인공인 갈리마르의 대사에 묘사된 동양인의 모습을 연상케 한다. “동양인은 무조건 강한 것을 숭배해. 그래서 서양을 숭배하고, 그래서 공산주의를 숭배하지, 그 이념을 이해하고 따르는 게 아니야.” 북경에 있는 프랑스 외교관에서 동양 전문가로 근무하고 있지만 갈리마르는 정말 아무것도 모르며 그가 보고 싶어 하는 방식으로 동양을 본다. 그가 얼마나 모르냐 하면 자신의 연인, 중국인 경극 배우 송과 이십 년 동안이나 연인관계를 유지해 오면서도 송이 남자였다는 사실을 모를 정도다.

갈리마르에 비하면 <왕좌의 게임>의 아무것도 모르는 존 스노우는 우스울 정도다. <M. Butterfly>의 모티프는 제목이 보여주듯 푸치니의 오페라 <나비부인>이지만 <미스 사이공>처럼 시대만 현대로 옮긴 게 아니라 서구인의 오리엔탈리즘을 갈리마르의 욕망과 겹쳐서 보여주며 여러 겹의 아이러니를 드러낸다. 여성에 대한, 인종에 대한, 그리고 소수자에 대한 겹겹의 편견이 인물들의 관계를 통해 통렬하게 펼쳐진다. 송은 갈리마르와의 첫 만남에서 거침없이 <나비부인>에 담긴 오리엔탈리즘을 지적하지만 갈리마르는 알아 듣지 못한다. 최근 푸치니의 마지막 오페라 <투란도트>가 현대적인 재해석과 특히 여성주의적인 재해석으로 큰 화제를 모으고 있듯이 오페라 <나비부인> 역시 새로운 세기에는 새로운 해석을 기대해 보아도 좋을까? 이번에 김해에서 공연되는 <나비부인> 역시 현대적 재해석을 내세우고 있기에 어떤측면에서 접근하는지에 집중하며 보는 것도 즐거운 경험이 될 것이다. 2막의 <어떤 개인 날>을 듣고 마음이 일렁이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이수진
이수진 극작가

뮤지컬 극작가로 지난 2005년 <지킬앤하이드> 대본을 번역 했으며 <콩칠팔새삼륙>, <신과 함께 가라> 등 다양한 작품 들을 작필, 각색하기도 했다. 지난 2017년에는 가야의 역사를 담은 작품을 준비하기 위해 ‘가야사워크숍’에 참여했다.

작성일. 2019. 09.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