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댄스 블록버스터의 귀환
7년 만에 다시 찾아온 한국 공연

관능적이다. 서정적이다. 코믹하다. 로맨틱하다. 드라마틱하다. 다이내믹하다. 이 표현들은 바로 <번더플로어>를 가리키는 말이다. 대사 대신 눈빛과 호흡을 통해 끊임없이 몸의 대화를 나눠야 하는 댄스 뮤지컬이기에 가능한 표현일 것이다. 댄스 공연으로는 이례적으로 매번 기립박수를 끌어내며 이 형용사들을 입증해온 <번더플로어>가 2012년 이후 7년 만에 한국을 다시 찾는다. 볼룸 댄스의 정수를 맛볼 수 있는 이 공연은 2006년 국내 초연 이후 다섯 번째로 한국 관객들과 만난다. ‘춤’이라는 콘텐츠를 가장 흥미롭고 역동적인 방식으로 엮어 거대한 시각적 서사로 만든 까닭에 ‘댄스 블록버스터’라는 칭호도 얻었다. 매료될 수밖에 없는 춤의 향연과 스타들의 당당한 위용은 그 칭호를 납득하게 한다.

타오를 수밖에 없는 몸짓의 에너지
<번더플로어>는 제목 그대로 ‘무대를 불태울(Burn the Floor)’ 만큼 현란한 기교가 이어지는 공연이다. 한마디로 춤의 화려함과 정열을 뽐내고 즐기는 데 공연의 목적이 있는 것이다. 이 단순한 취지야말로 이 공연이 관객을 열광시키는 주요인이다. 흔히 극장 공연의 춤은 관객에게 고상한 취향과 난해한 철학을 요구하지만, <번더플로어>는 생각할 틈을 주지 않는다. 세계 최고 수준의 댄서들이 100분 동안 뿜어내는 에너지와 아드레날린은 무대와 객석을 ‘완전 연소’시킨다. 마음에 드는 춤을 취향에 따라 즐기면 된다는 점에서 <번더플로어>는 ‘볼룸 댄스의 종합선물세트’라고 할 만하다. 등장하는 춤의 종류만 해도 15가지다. 한 음악에 다른 춤을 섞어 보여주는 장면도 있어 체감상 더 다양하게 느껴진다. 공연은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구체적인 서사를 진행하기보다 각각의 춤으로 커플의 대화를 풀어나가는 방식이다. 두 사람의 이야기는 춤이 지닌 성격에 영향을 받기 때문에 춤의 특징을 미리 알아두면 공연의 묘미를 더 잘 느낄 수 있다. <번더플로어>는 ‘댄스 스포츠’ 중심으로 구성됐다. 17세기 유럽의 궁중 무도회에서 남녀가 파트너를 바꿔가며 추던 사교 댄스(Social Dance)는 영국 왕실의 ‘둥글고 큰 방’에서 추던 볼룸 댄스(Ballroom Dance)로 발전했다. 이후 두 번의 세계대전 동안 각국의 춤 요소가 섞이면서 영국왕실무도교사 협회가 현재의 체계로 정리해 1995년에 국제올림픽위원회(IOC)에 공식적으로 등록한 것이 ‘댄스 스포츠’다. 댄서들이 보여주는 격렬한 움직임과 체력소모를 보면 ‘스포츠’라는 정체성이 낯설게 다가오지 않을 것이다. 댄스 스포츠는 크게 ‘스탠더드 댄스’와 ‘라틴 댄스’로 이뤄지는데, 스탠더드 댄스에는 왈츠, 탱고, 폭스트롯, 퀵스텝, 비엔나 왈츠의 5개 종목이 있고, 라틴 댄스에는 룸바, 차차차, 삼바, 자이브, 파소 도블레의 5개 종목이 있다. 이 10개의 춤을 비롯해 살사, 린디 합(Lindy Hop), 부기우기(Boogie Woogie), 키좀바(Kizomba), 바투카타(Batucata) 등 대중적으로도 널리 알려진 스윙댄스, 라틴 댄스를 댄스 스포츠 종목 사이에 적절히 배치했다. 특정한 틀에 얽매이기보다는 자유로운 춤의 묘미를 자연스럽게 전달할 수 있는 구성이 엿보인다. 그래서 서정적이고 로맨틱한 음악과 춤을 감상하다가도 별안간 빨라지는 리듬과 몸짓의 변화로 관객이 마음을 잠시도 놓을 수 없게 하려는 것이다.

새롭게 주목해야 할 2019년의 <번더플로어>
스테디셀러 공연의 특징은 재연될 때마다 그 명성에 이끌린 관객들과 함께 기존 관객들도 다시 공연장을 찾는다는 점이다. 이번 <번더플로어>는 이런 관객들을 위해 기존 공연 구성과 새로운 춤을 적절히 혼합했다. 총 2막으로 구성된 이번 공연 중 1막의 ‘Ballroom Beat(차차차)’, 2막의 ‘Burn for you(룸바)’, ‘Ballroom Blitz(퀵스텝, 린디 합)’는 2012년 공연 그대로 등 장한다. 특히 로맨틱하면서도 애절하게 그려지는 룸바 안무는 지난 공연에서도 깊은 인상을 남겼다. 팝페라 가수 조쉬 그로반의 <Un Giorno>, 칼 오르프의 <Carmina Burana 中 ‘O Fortuna’>를 통해 우아한 왈츠와 탱고의 묘미를 또다시 즐길 수 있다. 한국 관객들의 정서를 고려해 이번 공연에서 왈츠를 추가한 점은 기대감을 더한다.

이번 공연에서 특히 눈여겨볼 것은 새롭게 추가되는 음악과 춤이다. 2019년 버전의 특징은 팝 음악을 재해석한 퍼포먼스가 주를 이루는 것인데, 리한나의 <Don’t Stop The Music>이 삼바와 차차차로, 마이클 잭슨의 <Smooth Criminal>이 키좀바, 살사, 탱고, 린디 합으로 1막부터 객석을 들썩이게 할 예정이다. 특히 <Smooth Criminal>에서 등장하는 키좀바는 이번 공연에서 포인트가 될 만한 춤이다. 포르투갈의 식민지였던 앙골라의 전통춤 셈바(Semba)가 유럽의 트렌디한 음악, 남미의 살사나 탱고의 영향을 받으면서 탄생한 춤이다. 커플 사이의 호흡을 중시한다는 점에서 ‘한 번 추면 연인이 된다’라는 말이 있을 만큼 관능적인 춤 ‘바차타’와도 연결되는 지점이 있다. 이 밖에도 레이디 가가의 <Shallow>가 폭스트롯으로, 본 조비의 <Hallelujah>가 비엔나 왈츠로 옮겨져 영혼 가득한 팝 음악과 모던 볼룸 댄스의 만남을 흥미롭게 감상할 수 있다. 오랜만의 내한인 만큼, 댄서들의 역동적인 퍼포먼스 외에도 두 명의 가수와 라이브 밴드가 함께한다. 서정적이다가도 금세 폭발할 것 같은 사운드의 변화, 현란한 조명의 움직임과 의상의 조화는 댄서들의 춤을 시청각적으로 보완하는 또 다른 즐거움이 될 것이다. 이번 공연은 2012년 공연과 마찬가지로 프로듀서 할리 매드캘프와 1980~1990년대 세계 볼룸 댄스 및 라틴 댄스 챔피언이었던 페타 로비가 손을 잡았다. 또 예술감독 겸 안무는 호주 출신의 세계적인 안무가이자 페타 로비의 40년 댄스 파트너인 제이슨 길키슨이 맡았다. <번더플로어>는 오는 6월 25일(화), 26일(수)의 울산현대예술관 공연을 시작으로 6월 28일(금), 29일(토)의 김해문화의전당 마루홀 공연을 이어간 후, 7월 2일(화)부터 14일(일)까지 예술의전당 CJ 토월극장 무대에 오른다

글 송준호 공연 저널리스트
글 송준호 공연 저널리스트

한국예술종합학교 대학원에서 무용미학과 비평을 전공하고 주간한국과 한국일보, 더뮤지컬을 거쳤다. 공연예술의 다양한 변화를 주시하며 대학에서 춤 글쓰기를 강의하고 있다.

작성일. 2019. 05.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