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김해문화재단 웹진

search
<클레이아크를 말하다>展
건축 도자를 통해 들여다보는 현대 도자예술의 새로운 표현과 지평

클레이아크김해미술관에서 만나는 건축과 도자의 현주소

인간의 삶을 담는 두 개의 그릇
도자예술과 건축은 인류 역사에 시간과 공간의 광대한 범위 속에서 인간의 삶을 최적으로 아우르며 함께 발전해왔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접할수 있는 도자와 건축의 접점은 타일, 벽돌, 기와 등이다. 그러나 도자예술과 건축의 관계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오래전부터 시작되었다. 신석기시대부터 인류는 진흙을 뭉쳐 그릇을 빚었고, 진흙과 볏짚을 뭉쳐 벽돌을 빚고 쌓아 올려 흙집을 지었다. 도자가 인간의 식생활과 주거에 필요한 물건을 담고 끓이고 보관하는 작은 그릇이라면, 건축은 인간의 신체와 삶, 정신을 담는 큰 그릇이다. 이 때문에 도자와 건축은 종종 ‘존엄한 인간의 삶을 담는 그릇’에 비유되곤 한다. 그릇의 은유는 그만큼 도자와 건축이 인간이 안온하고 행복한 삶을 유지하는 데 얼마나 필수적이며 중요한 매체인가를 잘 보여준다. 그러나 무엇보다 도자와 건축의 공통점은 이 두 매체 모두 인간의 삶을 담지 않고서는 존재해야 할 이유가 없으며, 인간의 삶과 사용에 최적으로 대응하는 본연의 역할이 있다는 것이다

도자와 건축을 매개로 인간의 삶과 행위를 탐색하다
14년 전, 클레이아크김해미술관은 ‘삶을 담는 그릇’이라는 도자와 건축의 공통분모를 토대로 진례에 처음 문을 열었다. 이후 클레이아크김해미술관은 건축과 도자를 모태로 급변하는 현대도예 및 미술의 조류를 아우르며 새로운 예술영역을 열고 담론을 확장해 왔다. 올해 새롭게 기획한 <클레이아크를 말하다>展은 그간 펼쳐온 미술관의 활동과 정체성을 재점검하고, 동시에 미술관과 함께 진보해온 한국 현대도예의 확장성과 표현을 가늠하는 플랫폼의 성격이 짙다. 이를 각인하듯 <클레이아크를 말하다>展은 개관 당시 초대 관장이자 건축 타일부터 도자 오브제, 설치미술에 이르기 까지 다양한 창작의 스펙트럼을 거침없이 시도해 새로운 도자예술의 지평을 열어온 신상호 작가의 작품을 전시의 선두에 세웠다. 이후 세대와 가치관 그리고 매체와 공간에 대한 이해가 각기 다른 강준영, 김희원, 박삼칠, 이인숙, 정민지, 정용현, 조영학, 최주연 등 8명의 작가의 작품을 전시했다.

건축 도자, 공간의 확장 그리고 기술의 진보
9명의 작가는 각자 지닌 예술적 목표를 성취하고 나아가 도자예술이 보여줄 수 있는 표현의 한계를 넘어 새로운 패러다임을 열기 위해 자신들이 가진 최상의 아이디어와 재기를 발휘했다. 이 전시에서 가장 눈여겨볼 점은 새로운 시각적 재미를 추구한다는 점이다. 9명의 작업 모두 백색 큐브 안에 놓인 받침대에 조형물을 올려두는 것에 멈추지 않고, 개별 유닛 혹은 작품들을 달리 조합해 전시장소와 공간의 규칙성과 구조를 변형하고 장악했다. 이것은 하얀 입방체 안에서 관람자가 작품을 일방적으로 경험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사회, 경제 그리고 미학의 맥락 속에서 전시공간과 작품 간의 맥락 그리고 내용의 비평적 관계를 새롭게 모색하려는 작가들의 시도와 전략이 그만큼 현대 도자예술의 표현에서 일반화 되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또한 작가들은 개별의 유닛 혹은 오브제의 낱낱을 모아 거대한 합(合)의 이미지를 이루는 설치방식을 선호하고 있다. 이러한 설치방식은 장소와 작품이 유기적인 관계를 맺는 공공미술 즉, 장소 특정적 미술로서 건축 도자가 지닌 일반적 특징이다. 이는 건축의 내외부에서 건축의 형태에 맞게 번식하거나 축소하며 자신의 형태를 가변해야 하는 건축 도자의 숙명적 형태이기도 하다.
이처럼 현대 도자예술은 건축 도자 혹은 공공미술의 형태로 외연을 달리하며 이제 집, 백색 큐브를 점차 벗어나 바깥으로 설치장소를 확장하고 있다. 그러나 도자가 외부환경에 설치되려면 날씨, 바람, 온도 등의 변화에 견딜 수 있는 신재료와 성형·소성방법, 설치공법 등이 필요하다. 특히 아이디어만으로도 예술이 되는 최근 현대미술의 표현과는 달리, 도자예술은 기술적 측면이 확보되지 않고서는 작가가 원하는 이미지와 형상을 현실화할 수 없는 측면이 크다. 도예가들이 꾸준히 새로운 예술적 접근방식, 미학적 콘셉트 등을 중요하게 여기면서도, 새로운 소재와 설치공법 같은 기술적 측면을 개발하고 습득하는 데 공력을 다하는 이유다. 14년이 지난 지금, 클레이아크김해미술관의 성장과 역할 덕분에 빠르게 진보해온 한국 건축 도자의 새로운 재료와 수법의 다양성을 확인하는 것, 그리고 같은 재료와 수법이라도 작가마다 다른 상상력과 취향, 조합으로 만들어낸 색다른 결과물은 이 전시에서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건축 도자와 현대 도자예술의 또 다른 면모이자 즐거움이 분명하다

홍지수
홍지수 공예평론가, 미술학박사

미술 현장에서 작가들을 만나고 전시를 기획하면서 공예에 관한 연구와 글을 쓰는 일, 강연 등에 집중하고 있다. 현재 홍익대학교, 동덕여자대학교 등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나 만의 도예공방 만들기>, <그릇: 도예가 15인의 삶과 작업실 풍경> 외에 여러 공예 관련 책을 집필했다.

작성일. 2019. 04.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