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김해문화재단 웹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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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새로움에 목마른 한국 도자예술의 거장 신상호
흙으로 내놓는 인생의 대답

흰색과 노란색의 짝짝이 신발, 하늘색 니트 셔츠와 주황색 비니모자를 한 72세 도예가. 첫인상부터 심상치 않았던 그는 만남의 처음부터 끝까지 ‘새로움’을 말했다. 새로운 무언가를 집요하게 찾아내고 가능성을 발견하여 도예로써 표현하는 일, 그 안에서 행복을 느끼는 그는 역시 거장이라는 수식어의 주인임이 분명했다. 원로예술인이 된 나이에 그가 보여주는 열정은 젊음의 패기가 느껴지는 열정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여생을 작품에 오롯이 열중하고 싶다는 그의 웃음에서 짙은 행복이 느껴졌다.

전통 도자부터 현대 도자까지 작품의 스펙트럼이 넓어서 하나의 스타일을 고수하지 않으시는 것 같습니다.
무조건 새로운 것. 삶의 철학이죠. ‘흙’이라고 하는 재료의 역사가 깊다 보니 흙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싶은 욕구가 생겼습니다. ‘흙이 전통, 그릇으로 표현되는 것 말고, 새로운 가능성은 뭐가 있을까?’ 고민을 했어요. 시간이 지나면서 그 가능성을 어떻게 실현해 낼 것인가에 대해 평생을 실험하며 살았습니다. 그래서 ‘새로운 것’이라는 말도 꺼내게 된 거죠. 저는 전통이나 역사를 중요시하는 성향의 사람들에게 많은 저항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수많은 방면으로 실험을 하는 거예요. 제 것이 뭔지, 저 자신도 모르는 거죠. 그게 솔직한 대답입니다. 나이 70이 넘어서 과거에 걸어왔던 길과 현재까지의 인생을 정리하면서, ‘이렇게 살아온 것이 올바로 추구했던 것인가?’ 하는 물음에 대한 대답을 스스로 하려고 합니다.

작품 활동에 있어서 어디서, 어떻게 영감을 받으십니까?
영감은 역사와 문화 속에서 발견합니다. 요즘 세상은 굉장히 빠른 속도로 지나죠. 경쟁도 세계인들과 해야 하기 때문에 우리나라 문화만 익혀서는 안 됩니다. 세계의 문화를 알아야 해요. 우연히 런던예술박물관의 <Continental Africa>展을 갔어요. 아주 완벽히 빠져들었어요. 미치겠더라고요. 아프리카의 원시 미술이 우리나라의 샤머니즘적인 신앙, 굿, 제사 문화와 맥락이 비슷했어요. 아프리카 미술이 훨씬 앞서 있다는 걸 느끼면서 바로 아프리카로 여행을 떠났죠. 제 작품의 대부분은 아프리카에서 영감을 많이 얻었습니다. 지금까지도 그렇고요.

이번 전시에 출품하신 <생명수>는 어떤 작품인가요?
1976년에 이천에 있던 작업장을 부곡리로 이전했습니다. 그해 직접 느티나무를 심었어요. 사람들이 그거 왜 심느냐고 물을 때, 별생각 없이 “이게 크면, 여기서 환갑잔치하려고 그래.”라고 대답했어요. 그리고 3년 정도 전에 여름날 밖에서 작업하던 때였어요. 무심코 올려본 나무를 보며 묘한 생각이 들더라고요. ‘저 나무가 어느덧 커서 내 모든 작업과 희로애락을 함께 했구나. 나머지 인생은, 저 나무를 그려야지.’라고 생각했죠. 그리고 흙을 불에 구워서 회화적으로 풀어낸 작품은 <생명수>가 최초일 거예요. 그 시발점이 된다는 것이 작가에게 큰 의미가 있죠.

2006년 클레이아크김해미술관의 초대 관장이셨어요. 12년 만에 작가로 다시 돌아오신 소감을 듣고 싶습니다.
이번에 저를 포함해서 9명의 작가가 전시에 나섭니다. 다른 작가들은 어떻게 보면 제자의 제자들이죠. 제 나이 된 사람을 이렇게 젊은 작가들과 같이 전시를 할 수 있게 제안을 주니 굉장히 좋고, 흥분됐어요. 제안이 참 근사하다 생각했죠. 우연히 미술관 관장님도 만나서 고맙다는 얘길 전했습니다. 젊어지는 기분도 들고 행복합니다.

클레이아크김해미술관이 나아갈 방향성에 대해 조언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제가 만들긴 했지만, 방향성은 정말 잘 잡았어요. 이대로 구태의연하지 않고 진취적으로 미술관이 운영된다면 아마도 세계가 주목하는 곳이 될 겁니다. 대한민국의 도예 하면 김해시 그리고 김해시의 클레이아크김해 미술관이 될 거예요. 확실한 콘텐츠를 잡았으니 지속적으로 발전할 거라고 봅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실적을 따지기보다 김해시민들이 외국 어딜가도, 우리 김해시에는 클레이아크김해미술관이 있다고 문화적 자긍심을 가질 수 있도록 시의 관심이 필요하죠. 김해시의 큰 빛이 될 것입니다.

도예가로서 앞으로의 활동 계획이 있다면?
저는 어떤 직책을 맡거나, 사람을 만나거나 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오로지 집과 작업장에서 작업에 몰두할 것입니다. 그래야 지금과 같은 작업물도 나오고, 그게 저의 가장 큰 행복이고 보람된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후회하지 않고 열심히 한 시대에 흙을 만지다 간 사람으로 남길 바랍니다.

권혁제 작가 작성일. 2019. 04.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