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우리 눈에 포착되지 않지만 갖가지 이야기가 만들어지는 공간이 무수히 존재한다. 우리는 그 공간이나 경계에서 살고 있다. 누군가는 유·무형의 경계를 지키려고 하고 누군가는 자유롭게 경계를 넘나들며 일상을 보낸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자연과 인공적인 구조물 사이의 경계들을 물리적으로 넘나들기도 한다. 자연에서 건물(인공물)을, 건물 안에서 밖의 자연을 바라보기도 한다. 심지어 이동하는 수단 안에서 건물과 자연경관을 동시에 바라본다. 우리는 모두 일상생활 속에서 수많은 경계를 넘나들며 그 경계들을 바라보는 ‘도시 속의 생활형 산책자’다. 우리가 보고 느끼는 감정과 기억이 그 공간에서 발생한 모든 이야기와 그 속에 존재하는 무수한 존재들과의 관계를 증명한다. 하지만 잊혀 가는 공간의 이야기들을 어떻게 기억하고 시간이 지나서도 바라볼 수 있을까?
<자연의 경계에서> 展의 금민정 작가는 자연과 인공적 공간의 기억, 그 장소에서 발생하는 감정을 주제로 작품을 만든다. 작가는 작품을 통해 다양한 ‘시선’을 제공하는데, 필자는 금민정을 ‘주의 깊은 산책자’로 칭하고 싶다. 금 작가가 작품을 매개로 보여주는 시선을 따라 전시 속의 작품을 감상하길 권하며 <자연의 경계에서> 展(2022.06.10.(금)~10.23(일), 클레이아크김해미술관 큐빅하우스 5, 6 갤러리)을 소개하고자 한다.
금 작가의 작품들은 “나는 이런 이야기를 하니 내 이야기를 들어봐 줘.” 하고 애써 대화를 건네지 않는다. 시간이 흘러가는 대로 늘 곁에 있는 자연처럼 담담하게 자리하고 있다. 작가는 공간이 갖는 감정을 영상 매체로 시각화하는 작업을 한다. 작품의 주제가 되는 공간에 과거의 시간, 건축물과 자연의 경계를 함께 담아낸다. 마치 잊혀 가는 과거의 공간에 숨결을 불어넣어 주는 듯하다. 작가는 숲을 마냥 푸르른 산림욕의 장으로 바라보지 않고 사연이 담긴 공간으로 보고, 옛 화전민의 터를 찾아 그 흔적에서 전달되는 공간의 기억을 상상한다. 대표적으로 작품 <화전민의 벽>과 <화전민의 문>이 있다. 금 작가는 옛 화전민의 터를 찾았고, 그 흔적에서 공간의 기억을 상상해 낸다. 공간을 찾았을 때 그 공간에서의 소리, 느낌, 움직임에서 포착한 주파수를 바탕으로 영상의 움직임을 조정한다. 이후 나무나 철 프레임 등의 사물과 조작된 영상을 결합하여 새로운 조형물로 만들어 낸다. 특정 공간일 수 있겠지만, 그 공간들이 가진 본질적인 이야기, 내면의 무언가를 찾아내고자 하는 금 작가의 행위에는 자연이 있다.
전시장에 놓인 작품들은 뿌리를 내리고 오래 한자리를 지키는 나무처럼 무심한 듯 견고하게 놓여있다. 철 프레임이나 나무로 만든 조각에는 마치 신체의 일부 혹은 심장처럼 비디오가 삽입되어 있다. 유형의 형태 안에 무형의 감각이 결합되어 있는 듯 하다. 작품은 무음이지만 마치 예전 사람들(화전민)의 노랫소리, 숲의 나뭇잎이 바람에 비벼지며 나는 소리, 새소리 등 자연의 소리가 나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인공적인 공간에서 작가가 사용하는 영상 매체를 통해 우리는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느낄 수 있다. 제6 전시실의 안쪽으로 들어가면 유리창으로 외부가 보이는 공간에 작품 <담 넘어, 12개의 풍경>이 있다. 까치발을 들고 담 너머의 풍경을 보게 되듯 시선에 맞추어 설치된 작품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실내 공간 안에 바람이 이는 느낌이 든다.
특정한 소리가 나지 않지만 눈높이의 자연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그 공간이 머금고 있는 공기, 즉 대기감(大氣感)이 전달된다. 당시 자연의 온도와 습도가 전시장으로 옮겨진 듯하다. 한 집(건물)의 구석구석을 돌아보듯 전시장을 둘러보면, 작가가 기억하는 자연을 오롯이 느낄 수 있다. 또한 무언가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더욱 본질적인 것을 찾아내고자 하는 작가의 태도와 노력도 함께 전달되는 듯하다
잠깐이라도 시간 내어 작가가 건네는 자연의 바람 속을 거닐어 보는 건 어떨까.
전시장에 들어섰을 때 작품을 하나하나 구분하여 보기보다 한 공간에서 곳곳의 창을 통해 밖을 바라 보듯 연결 지어 보길 권한다. 자연을 따라 걷는 산책자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