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문화의전당 윤슬미술관은 김해의 신예작가를 소개하고 중견작가를 재조명하는 <뉴페이스 & 아티스트 인 김해>展을 2월 19일부터 전시 중이다. 코로나19로 말미암아 꼬박 1년의 기다림 끝에 재개된 이번 전시회를 미리 찾아가, 칼날을 다듬으며 기다린 네 작가를 만나보았다.
윤슬미술관의 풍경은 전시회 준비를 마무리하느라 분주한 모습이었다. 신예작가 두 명과 중견작가 두 명의 작품으로 진행되는 전시회라 규모가 자못 큰 편. 네 공간을 채우고 있는 각기 다른 색채의 작품들을 감상하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칼을 갈았구나!’ 1년이라는 기다림이 작가들에게는 고통이었을 테지만, 그만큼 작품들은 더 잘 익어간 것이다. 작품들을 감상하며 걸음을 옮기는 내내 눈과 뇌가 즐거웠다. 마치 잘 만든 영화 네 편을 연이어 보는 느낌으로 전시관을 빙 두른 뒤, 그 이야기들을 만들어낸 예술인을 차례로 맞았다
생명의 에너지를 담은 정원 - 조해경(아티스트)
조해경 작가의 전시 공간을 한마디로 말하자면 에너지 정원이라 표현하고 싶다. 선인장과 동백, 매화. 식물을 그린 그림에서 선명한 에너지가 뿜어져 나왔다. 정지된 관념의 식물을 표현한 작품에서 어떻게 이런 힘을 느낄 수 있는지 놀랍고 궁금했다. “강한 생명력의 식물에 알 수 없는 매력을 느꼈죠. 그 생명력을 어떻게 표현할까 많이 고민했어요. 관객들이 그걸 느낄 수 있다는 것이 너무 감사해요.”
그는 자신이 느끼는 식물의 생명력을 표현하기 위해 수많은 시도를 했다고 한다. 그중 하나는 물과 오일의 반발기법이다. 물방울을 떨어뜨리고 그 위에다가 테레핀을 섞은 묽은 오일을 똑 떨어뜨려 한방울로 만든다. 그런 뒤 화폭을 기울여 방울이 또르르 흘러가며 흔적을 남기는 기발한 기법이다. 검은 배경의 선인장 그림을 보니, 그 기법으로 선인장의 향기가 퍼지는 묘한 느낌을 절묘하게 연출하고 있었다.
조해경 작가의 작품들을 보며 드는 또 다른 느낌은 색감이 매우 선명하다는 것이었다. 그 색감의 경계가 매우 날카롭고 섬세했다. 초고화질 초고해상도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저는 이런 원색적인 작품을 해야지만 에너지가 생겨요. 중간색을 많이 쓴 작품에서 차분한 매력을 느끼기도 하지만 그렇게 그리면 힘이 빠져요. 이게 나랑 맞는 색이라 느꼈고, 그래야 힘이 느껴지더라고요.”
그 말이 뒤통수를 때렸다. 그림에 힘을 불어넣는다고만 생각했지, 그리면서 힘을 얻는다는 생각은 못 했던 것이다. 그는 푸릇한 시절엔 생활을 해야 해서 그림을 못 그렸다. 그러다가 아들이 사춘기가 되어 너무 방황할 때, 마음이 정말 아팠다. 그때 다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면서 마음을 치유했다는 것이다. “하루 종일 그림만 그리면서 한번 살아보는 게 제 소원이었는데, 중견 작가로 선정되고 나서 기다리는 1년 동안 원 없이 그린 것 같아요. 그림도 질적으로 더 좋아진 것 같고.”
그는 최근 그린 세 작품을 아주 마음에 들어 했다. 이전 선인장 그림들과는 확연히 달라진 느낌. 이전 작품은 전체적으로 디테일이 확 살아난 모습이라면, 최근 세 작품은 색종이를 오려 붙인 것 같은 굵은 선들로 모자이크처럼 대상을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조리개 초점을 맞추듯이 알맹이들만 섬세하게 그려낸 모습이다. 이렇게 그린 작가들은 아무도 없다며 어디에 내놔도 부끄럽지 않은 작품이라는 그의 말에, 끊임없이 작품세계를 발전시켜나가는 예술가의 풍모와 자부심이 느껴졌다.
몸을 움직일 수 없는 전율 - 노재환(아티스트)
혼돈 속에서 뻗어 나온 빛의 향연. 몸을 움직이지 못할 만큼의 강한 끌림. 우주의 수축과 팽창, 빅뱅의 강렬한 에너지를 담은 작품들 속에서 노재환 작가를 만났다. 그의 작품들은 하나같이 생소한 기법의 것들이었다. 어떻게 이런 강렬한 아름다움을 표현할 수 있는 지가 놀라웠다.
“마블링을 수백 장 하고 그걸 콜라주로 붙여서 컬러로 코팅을 하는 등의 기법들이죠. 저만의 독자적인 느낌을 지니게 됩니다.”그의 작품의 주요 모티브는 카오스였다. 무질서 속의 질서를 찾아가는 것이 그의 작품 과정이다. 마블링과 드리핑 기법으로 어떻게 나올지 모를 우연과 즉흥의 효과를 내고, 그 무위의 혼돈 속에서 작가는 유형의 질서를 만들어간다. 자신의 내면이 카오스에 투영되어 그만의 조형 언어로 표출되는 것이다. 어둠 속에서 빛나는 핸드폰 화면처럼 눈을 시리게 만드는 나비들. 다른 차원의 세상에서 피어난 듯한 꽃. 절망의 세상에서 어둠을 물리치듯 퍼덕이는 빛의 날개. 작품들에서 심오한 내공이 느껴졌다.
“동판화를 많이 하다 보니까 모노톤에서 나오는 무게감이나 강렬함에서 좀 독특합니다. 강한 명도와 고채도를 많이 쓰는 편입니다.
대비를 많이 주는 편이라 유연한 느낌보다 강렬한 느낌이 많이 들죠. 그래서 대중성이나 상업성 부분에서는 많이 약합니다.” 대중성이 부족하다는 말에는 공감할 수 없었다. 이토록 낯선 아름다움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 신선함과 차별성, 예술성을 동시에 갖춘 심도 있는 작품들에서 대가의 기운이 느껴졌던 것이다. 그는 여러 해 집중해온 카오스라는 주제가 다소 어두운 면이 있다며, 이제는 좀 더 희망적이고 스스로에게도 즐거움이 되는 작품을 하고 싶다고 했다.
“마이크로 코스모스. BTS 노래처럼 스스로 빛나는 별이라는 그런 내용을 가지고, 조금 더 희망적인 작품을 하려 합니다. 한 사람이 하나의 별이라는 그 아름다운 개념이 너무 와 닿습니다.” 자신을 35년 된 그림쟁이라 칭하는 그는 스스로가 젊다고 느낀다했다. 그래서 지금까지 해온 것들을 지키려고 하기보다는, 새로운 느낌으로 좀 더 희망적이고 힐링이 될 수 있는 작품을 많이 해보고 싶다고 전했다
웃음을 만드는 도자기 - 손현진(뉴페이스)
웃음이 절로 나오는 도예 작품들. 그 속에서 만나본 이는 손현진 도예 예술가였다. 그의 작품들은 호랑이, 까치, 인물, 로봇 등 다양하고 재미난 모양의 도자기 다관에 분청과 청화의 옛 기법을 접목한 것들이었다. 특히나 가야토기의 전사를 로봇으로 표현한 작품은 웃음을 빵 터지게 만들었다.
“제 모토가 재밌는 것. 그냥 한번 봤을 때 웃을 수 있는 것. 그것에 초점을 두고 있어요. 앞으로는 재미있는 작품들이 모여서 하나의 이야기가 될 수 있는 전시도 생각하고 있지요.”마냥 웃기에는 작품의 완성도가 너무 훌륭했다. 현대적인 느낌의 캐릭터와 전통기법의 이질적이면서도 절묘한 콜라보.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해낼 수 있었을까. 그는 어릴 적 봤던 영화나 애니메이션에서도 영감을 얻고, 생활과 일 속에서도 아이디어를 얻는다고 했다. 하지만 그런 창작 아이디어가 당장 튀어나오는 것은 아니다. 늘 생각을 지니고 있다가 우연히 다른 상황이나 환경을 맞닥뜨렸을 때 머릿속에서 새로운 형태로 결합되어 나온다는 것이다. 그러니 생각이 익어가는 시간이 필요하단 이야기였다.
“예술을 위해서 도자기를 시작했다기보다 그냥 좋아해서 시작했죠. 생활도자기를 만들다가 좀 특별하고 재미난 것도 좋겠다 싶어 도전한 작품들이 점점 발전해서 주목을 받게 되더라구요.” 작가의 작품들은 예술품일 뿐만 아니라 다관으로서의 기능도 충실히 갖추고 있었다. 로봇의 어깨를 열어 차를 담고 따르는 모습은 ‘정말 이렇게까지 만드는구나’라는 탄성을 자아냈다. 그의 머릿속에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갈 구상들까지 가득했다. 현대와 과거의 접목에서 좀 더 진화한 미래적 테크놀로지를 적용한 도자기가 그하나다. 센서를 가미해 도자기의 색상이 바뀐다든지, 자동으로 차의 적정 온도를 맞춰준다든지 하는 개념이다. 그리고 해외 견학을 통해 얻은 아이디어들을 구현할 계획도 있었다.
“대만에 갔는데, 핸드백을 나무로 만들었더라고요. 어, 나무로? 도자기로도 가능하겠다. 굉장히 고급스럽고 여성스럽고. 고퀄리티 명품처럼 만들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신예작가라는 말이 무색해질 만큼 작품세계가 탄탄한 그는 아직도 표현하지 못한 것들이 너무 많다고 했다. 다만 생계와 환경들로 인해 오롯이 전념할 수 없어 더뎌지는 감이 있다고. 생활과 예술 사이에서 현실적인 절충을 고민하면서도 예술을 향한 끊임없는 열정을 불태우는 모습. 그의 모습이 말 위에서 전장을 바라보는 가야토기 로봇 전사처럼 느껴졌다
자연과의 순수 교감 - 신예진(뉴페이스)
미술관에서 생소한 철골들이 보이고. 참으로 독특한 작품들이 여기저기 배치되어있다. 자연을 모티브로 한 작품들 속에서 설치예술가인 신예진 작가를 만났다. 우선 그의 초기작품들에 눈길이 갔다. 꿈틀거리는 듯한 애벌레와 머리 위로 녹말이 피어오른 개구리. 무슨 의미인지 자못 궁금해졌다. “애벌레나 개구리같이 초기작품들은 즉흥적, 감정적으로 예전 기억들을 떠올리며 재현해내고자 한 작품들이에요. 처음엔 몰랐어요. 벌레나 이런 것들을 잡았을 때 물리는 건지도요. 만졌을 때 너무 말랑하고 오동통하고 짜릿하고 그런 식의 경험들을 재현한 것들이죠.”
그의 작품들은 어렸을 적 순수한 경험과 그 잊지 못할 느낌을 소재로 한 것들이 많았다. 몸통이 없는 나비들, 온갖 생명체와 자연물이 뒤섞여 한 덩어리가 된 공. 모두 어렸을 적 한 번쯤 경험해 봤던 일들일 것이다. 그런데 공간 왼편에 있는 검은 철골 작품은 맥을 좀 달리하는 것 같았다.
“규칙 없이 산발적으로 뭉쳐놓는 형태를 계속했었어요. 그러다가 저 나비들의 날갯짓을 일직선상에 표현한 작품처럼 중간 형태의 작품들을 거쳐서 구조로 가게 되었죠. 저 철골들은 자연의 뼈에요. 강한 뼈대를 가진 자연. 역설이죠.”
작가는 어릴 적 살던 집과 동네가 처참하게 재개발된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자연을 인간에 맞추어 헤집어 놓는 방식들이 강압적이고 폭력적으로 느껴졌던 것이다. 자연에 뼈대가 어디있고 직선이 어디 있으랴. 그렇지만 저렇게 공고하고 각이 선 뼈대들이 우리 눈에만 보이지 않는 자연의 섭리라 깨닫는다면, 감히 우리 인간이 자연을 함부로 훼손할 수 있을까. 작가의 순수하지만 예리한 통찰력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작가는 그 철골들이 나무의 몸통을 기울여 놓은 형상도 된다고 했다.
“철골들이 만드는 통로는 자연의 핵심부로 향하는 게이트웨이인 셈이죠.”
작가의 뒤를 따라 그 게이트웨이를 걸어 들어갔다. 반대편으로 빠져나오니 시야를 가득 메우는 세 방향의 벽면에서 자연의 잎사귀들이 무한하게 증식하고 있었다. 반전에 이은 압도. 실로 처음 겪어 보는 설치미술의 묘미. 작가가 무엇을 말하려는지 온몸으로 느낄 수 있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