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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니스트 조성진의 감성과 역사 그리고 반전과 인생
네 개의 색으로 그릴 음악적 자화상

지난 3월 28일(토), 피아니스트 조성진은 자택에서 촬영한 홈 콘서트 영상을 유튜브를 통해 공개했다. 연주곡은 브람스가 작곡한 <6개의 피아노 소품 Op.118> 중 일부다. 오는 7월 1일(수) 김해문화의전당 리사이틀에서 연주할 곡들 중 몇 곡이었다.

브람스(1833~1897)가 1893년 여름에 완성한 <6개의 피아노 소품>은 4곡의 간주곡과 각각 1곡의 발라드와 로망스로 구성된 곡이다. 지금은 여섯 곡을 한데 묶어 전집처럼 연주한다. 하지만, 1894년 초연 당시 여섯 곡은 여러 무대에서 따로 발표되었다. 이러한 형태의 초연이 가능했던 이유는 여섯 곡을 관통하는 음악적 공통성이나 관련성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브람스의 만년작에서 잘 나타나는 내성적인 우울함과 멜랑콜리한 분위기, 감미로운 선율들은 각 작품 저변에 흐른다. 그래서 곡들은 <6개의 피아노 소품>으로 묶일 수 있었다. 이처럼 작품에는 예술가의 혼이 담기고 온기가 배어 있다. 예술가의 모든 게 담긴 한 폭의 ‘자화상’인 셈이다.

후대의 음악가는 이러한 선배들의 자화상(작품)을 물감 삼아 자신의 음악적 자화상을 그린다. 그래서 무대에서 선보일 곡(작품)들을 엮는 ‘선곡’은 자화상을 채색하기 위한 물감을 ‘선택’하는 것과도 같다.

이번 리사이틀에서 그려질 조성진의 음악적 자화상은 네 개의 작품을 음악적 물감으로 사용하려 한다. 앞서 말한 브람스의 <6개의 피아노 소품 Op.118>와 프랑크의 <프렐류드, 코랄과 푸가>, 베르크의 <피아노 소나타 Op.1> 그리고 리스트의 <피아노 소나타 B단조>이다. 그 색들을 면밀히 살펴보면 브람스는 ‘감성’, 프랑크는 ‘역사’, 베르크는 ‘반전’, 리스트는 ‘인생’이 되겠다.

‘감성’에 취하고 ‘역사’를 탐구하다
첫 곡으로 연주할 브람스의 <6개의 피아노 소품 Op.118>의 색은 ‘감성’이다. 제1곡 간주곡의 불안정한 도입은 브람스 만년의 외로움과 쓸쓸함을 보여 준다. 제2곡 간주곡을 지나면 제3곡은 발라드. 이 곡은 어떤 특정한 이야기를 염두에 두고 작곡한 곡은 아니다. 하지만 이야기가 전개되는 듯한 극(劇)적인 힘이 농후하다. 제4곡 간주곡은 경쾌하면서 쓸쓸하다. 제5곡 로망스는 고풍스럽기 그지없다. 마지막 제6곡 간주곡은 생기와 우울한 정서가 묘하게 포개져 브람스적 ‘감성’의 레이어를 보여준다.

프랑크(1822~1890)의 <프렐류드, 코랄과 푸가>에서 비치는 색은 ‘역사’이다. 벨기에 출신의 프랑크가 활동했던 19세기 후반의 프랑스는 화려한 낭만주의 시대였다. 사람들은 순수 음악보다는 가볍고 오락적인 성격의 오페레타를 선호했다. 그 속에서 프랑크가 음악을 향한 태도는 경건, 그 자체였다. 조류에 휩쓸리기를 거부했고, 프랑스 음악계에 고전주의의 순수 음악을 부활시키고자 노력했다. 그래서 늘 바흐(1685~1750)와 베토벤(1770~1827)의 음악을 가까이 두었다. 두 작곡가의 유산을 기반으로 자신만의 음악 세계를 구축하고자 했던 프랑크는 <프렐류드, 코랄과 푸가>를 작곡하며 바로크 양식을 빨아들였고, 바흐의 숨결을 들이마셨다. 조성진은 <프렐류드, 코랄과 푸가>를 통해 19세기 낭만주의를 지나, 바흐가 활약했던 18세기 바로크의 시대로 우리를 안내할 것이다.

반전’의 매력과 성숙할 ‘인생’
조성진이 세 번째로 연주할 베르크(1885~1935)의 <피아노 소나타 Op.1>은 ‘반전’의 물감으로, 그가 여러 무대에서 즐겨 선보이는 곡 중 하나다. 악명 높은 작곡가 베르크는 현대 음악의 거장 쇤베르크의 직속 제자였다. 현대 음악은 전통을 해체한 뒤의 음악이다. 음악뿐만 아니라 미술, 연극도 마찬가지. 그래서 현대 미술에서는 전통적으로 전승되던 묘사법이나 대상이 없다. 현대 연극에도 보는 이가 쉽게 따라갈 수 있는 이야기가 흐르지 않는다. 음악에는 누구나 흥얼거릴 수 있는 선율선이 없다.

이 작품이 ‘반전’의 색상을 지닌 이유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악명 높은 현대 음악가 베르크’에게 숨겨져 있던 ‘전통적 고전 계승자’의 면모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베르크는 현대 음악 특유의 ‘난해한 음악의 작곡가’인 한편, 슈베르트·슈만·바그너·말러·브람스·리하르트 슈트라우스·볼프 등으로 이어지는 낭만적인 감성을 표현하는 작곡가이기도 했다. 이러한 낭만적 정서의 너울거림이 어두운 색채와 함께 버무려져 있는 곡이 바로 <피아노 소나타 Op.1>이다. 특히 2015년 쇼팽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입상하며 쇼팽 스페셜리스트가 된 조성진이 쇼팽을 통해 단련한 낭만적 감수성을, 이베르크라는 ‘반전’의 물감으로 어떻게 표현할지 궁금하다.

이번 리사이틀에서 가장 기대되는 것은 리스트(1811~1986)의 <피아노 소나타 B단조>이다. ‘피아노의 파가니니가 되겠다’는 각오로 유럽 무대를 휩쓸던 리스트는 연주 여행을 중단하고 작곡에 전념하기로 결심한다. 센세이셔널한 연주 끝에 남는 것은 결국 허망한 느낌뿐이었기 때문이다. 그즈음 작곡된 <피아노 소나타 B단조>는 낭만주의 소나타의 최고봉으로 손꼽히는 작품이다. 또한, 30여 분 분량의 교향곡을 방불케 하는 풍부한 악상으로 빼곡하다.

리스트의 전기 작가 피터 라베는 <피아노 소나타 B단조>가 ‘성공과 실패, 사랑과 증오로 얼룩진 리스트의 일생을 요약한 자서전’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음표들은 리스트가 지나왔고, 또 앞으로 걸어갈 ‘인생’을 말하고 있는 셈이다. 결국 리스트가 지은 ‘인생’의 음표들을 연주하는 후예는 리스트의 음악 인생을 답습하며, 자신의 음악 인생을 설계한다.

스물여섯 청년은 ‘감성’(브람스)의 피아니스트로, ‘역사’(프랑크)를 탐구하는 청년으로, ‘반전’(베르크)의 신사로, 그리고 ‘인생’(리스트)을 논하는 음악가로 다가오려 한다.

송현민
송현민 음악평론가

음악을 듣고, 글을 쓰고, 음악가들을 만나며 책상과 객석을 오고 간다.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공부했고 한반도의 르네상스를 주장했던 '박용구론(論)'으로 <제13회 객석예술평론상>을 수상 했다. 집필, 강의, 방송 활동을 통해 여러 대중과 소통하고 있다.

작성일. 2020. 05.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