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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道)를 닦듯 인내로 개척한 도자 회화라는 새로운 길
클레이아크김해미술관 상반기 기획전 이승희: 2020 TAO

기간 2020.03.27.(금)~06.14.(일)
장소 클레이아크김해술관 돔하우스
전시작품 도자 회화, 설치 조형 등 240여 점
관람료 성인 2,000원 / 청소년 1,000원 / 어린이 500원
문의 055-340-7000
※ 현재 상기 전시는 코로나19 확산 방지로 잠정 휴관 중이며, 전시 재개는 여부는 추후 홈페이지를 통해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이승희: 2020 TAO>展은 1990년대부터 현재까지 이승희의 작품세계를 조명한다. 2013년 뉴욕 전시부터 사용된 전시명 ‘타오(TAO)’는 도자기의 도(陶)를 뜻하기도 하지만, 흙물을 70회 이상 부어 말리는 반복적인 작업 방식이 도(道)와 같다고 해서 지어진 작품 명제다. 전통적인 통념의 도자기를 현대미술로 승화시키는 과정에서 진부하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이승희는 사유의 도구로서 ‘흙’이 갖는 재료의 무한한 가능성과 세라믹 고유의 제작 방식, 전통적인 소재에 주목해 왔다. 그는 도판을 만들고 흙물을 수십 번 바르고 말리며 얻은 미세한 두께와 유약을 발라 가마에서 구워내는 일을 반복하는 수작업 중심의 제작 방식으로 누구도 모방할 수 없는 이승희 작가만의 데이터베이스를 축적했다. 그는 기존의 회화나 조각과는 확연히 다른 ‘도자 회화’라는 새로운 영역을 개척한 예술가다.

이승희는 1958년 청주에서 태어나 청주대학교 공예과를 졸업했다. 1994년 첫 번째 개인전<사유된 문명>을 시작으로 꾸준히 도자 조형 설치 작품을 발표했으며, 지금까지 27차례 개인전을 여는 등 왕성한 창작 활동을 펼치고 있다. 2006년 그는 우연한 기회에 방문한 독보적인 자기(瓷器) 생산지이자 2천 년의 역사와 풍부한 인프라를 간직한 중국 경덕진(景德鎭)에 매료돼 정착하면서 작품 세계의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한다. 오롯이 작업에 몰두할 수 있는 환경 속에서 시행착오를 겪으며 흙의 종류, 수분량, 불의 온도, 염료의 농도 등을 매일 기록한 자료를 토대로 자신만의 흙의 조합방식을 찾아냈다.

이 작가는 30여 년의 끈질긴 인내심으로 주변 사람들의 우려를 불식시키고 조선백자, 민화 등 한국적인 미감에 현대적 변주를 완성하며 국제적인 작가로 입지를 다졌다. 2015년 영국 사치 갤러리, 2016년 빅토리아 앤 알버츠 박물관 초대전, 프랑스 도자기 생산의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도자 회사 베르나르도가 설립한 문화재단 초대전과 발로리스 국제비엔날레에 그의 작품이 초대돼 전시를 펼쳤다. 최근까지 미국, 중국, 일본, 홍콩 등에서 개인전이 계속 이어지고 있으며, 그의 작품은 해외에서 더 큰 호평을 받고 있다.

이번 전시는 건축과 도자의 연계를 통해 흙의 확장성을 계속해서 모색해 온 클레이아크김해미술관에서 도자라는 매체에 함몰되지 않고 끊임없는 실험과 연구를 통해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한 이승희의 예술적 실험 여정을 소개하기 위해 기획됐다. 초기작 <사유된 문명>부터 도자 회화의 시작을 알린 <클레이젠(clayzen)> 시리즈, 장르 해체와 기술적 완성을 보여준 <타오(TAO)-조선 백자회화> 시리즈, 대나무 조형 설치 등 100여 점과 신작을 선보인다.

PART 1 <흙으로 사유를 축적하다> 1990~2000

이승희가 1990년대 개최한 개인전 전시명을 보면 흙을 대하는 그의 태도를 알 수 있다. 그는 <사유된 문명>(1993), <사유와 꿈>(1994), <사유의 그늘>(1996)과 같은 타이틀을 선택해 실용적인 조형물을 만들어내고자 함이 아니라 생각을 표현하는 도구로 흙을 선택했음을 보여준다. 이 시기의 작품은 흙에서 나는 것들인 곡물과 식물을 형상화하거나, 돌덩이 같은 형태에 오브제를 연결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이는 ‘흙=도자기 재료’라는 생각과 도자기의 가치는 실용성이라는 공식과도 같은 관념을 지우기 위한 과정으로 보인다.

1990년대 초반 한국 현대미술은 포스트모더니즘이 확산했다. 조각과 회화의 구분이 모호해지고 장르 간 융합, 미디어아트, 설치 예술 등 실험성이 강한 작품이 이때 많이 등장했다. 이승희의 작업 역시 이러한 시대적 흐름과 무관하지 않다. 그의 작업은 ‘도예’는 부정하고 있지만 ‘흙’이라는 원초적인 질료를 매개로 다양한 실험을 전개해왔다.

PART 2 <흙으로 도자를 그리다> 2006~2016

‘나는 나만의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이승희의 고민은 2006년 중국 여행을 계기로 해결의 실마리를 찾게 됐다. 그가 베이징에서 보낸 1년의 시간은 진부하다고 치부해 온 동양미술의 아름다운 미감을 발견하는 기회였고, 이후 그는 경덕진에 작업실을 마련하여 중국 흙의 특성과 유약에 대한 실험을 계속하며 인내의 시간을 보냈다. 적지 않은 나이에 시작한 해외에서의 작업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갑작스러운 홍수에 작업 노트며, 그동안 꼼꼼히 기록한 실험 노트가 모두 유실되기도 했지만 흙물을 붓고, 건조하고, 소성해 온 오랜 숙련의 과정은 그의 몸이 기억하고 있었다.

작품이 완성되는 과정은 세라믹의 고유 제작 방식을 따르고 있으며 시유와 소성 온도에 따라 미세한 차이를 보이기 때문에 작가가 의도한 형태와 색으로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기까지 4년의 세월이 필요했다. 이후 작품은 숙련된 기술과 고유색의 깊이를 더하며, 도자기나 회화가 아닌 어떤 장르로도 분류될 수 없는 지점을 찾아 자신만의 정체성을 구축했다.

PART 3 <흙으로 스스로의 한계를 실험하다>

<물외물>(物外物): 대나무 조형 설치 연작이 작품은 이승희의 무모했던 시도가 7년 만에 실현된 것으로, 예술가로서 새로운 도약의 기회를 안겨 주었다. 2015년 베이징 전시를 필두로 홍콩아트센터 전시,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 초청으로 이어졌다. 이후 매년 전시 장소가 바뀌며 꾸준히 소개되고 있는 <물외물>은 현재 뉴욕에서도 일부 전시되고 있다. 300그루 이상의 대나무 숲을 도자 조형으로 완성하는 작업은 인고의 노력, 많은 인력과 비용이 발생하는 것임에도 상상을 현실화하고자 한 그의 집념이 결실을 맺은 결과다.

이번 전시에는 작가가 보유하고 있는 피스 중 공간에 적합한 분량의 검은 대나무 작품 일부만 설치했다. 이전 전시에서 행했던 설치 방식과 차이가 있다면, 나무를 지탱하는 철 구조물을 그대로 노출한다는 점이다.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었고, 익숙한 것을 옳다고 생각하는 사고방식에 의문을 던지며 대나무에 부여된 일반적인 상징과 관념을 넘어서 새로운 관점으로 바라보기를 제안한다.

 

PART 4 <2020 TAO-공간과 시간으로의 확장>

“내 작업은 그저 질문일 뿐이다.” 2019년 뉴욕 개인전 <변형: 8mm의 공간(Transfiguration: space of 8mm)>의 연장선에 있는 이번 신작은 흙의 물성을 시각적으로 최소화하고 흙물 기법의 기술적 완성도를 극대화하는 방식을 취한다. 화면 위에 전통적인 도자기의 형태는 사라지고 종이처럼 얇은 질감이 강조되거나 색감의 미세한 차이에 주목한 작품이 선보이고 있다.

특히 돔 공간의 특수성을 반영한 대규모 설치 작품은 검은색의 풍부한 스펙트럼을 펼쳐 보이며 새로운 질문을 유도한다. 작가는 자신이 설정해 놓은 공간에 사람들이 머물며 소통이 이루어지길 바란다. 즉, 감상자가 작가의 질문은 무엇인지 호기심을 갖는 것, 사유하고 명상하는 시간 자체가 바로 소통이다.

최근 이승희는 ‘흙길을 걷듯’ 작업한다고 말한다. 반평생 흙과 함께 한 그에게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한 마디가 아닐까 싶지만, 흙으로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은 다하겠다는 다짐처럼 들리기도 한다. 평생 흙으로 사유해 온 작가의 창작 여정을 따라 걸으며 한 작가의 삶과 교감해보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

작성일. 2020. 03.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