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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이제 다시 시작이다

기대 수명이 점점 늘어남에 따라 ‘100세 시대’라는 말을 심심치 않게 듣는 요즘이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에게 ‘100세’란 짐짓 상상하기 어려운 나이다. 게다가 그 나이에 할 수 있는 것이 있을까 자문을 해보아도, 너무 늙어서 아무것도 못 할 것이라는 자조적인 답이 쉽게 떠오른다. 하지만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의 주인공 ‘알란 칼손’은 이런 질문과 대답이 우습다는 듯이 지난 100년 동안 그랬던 것처럼 100세 생일인 오늘 새로운 모험을 떠난다.

일시 2020.03.20.(금) 19:30 / 03.21.(토) 15:00, 19:00
장소 김해문화의전당 누리홀
연령 중학생 이상 관람가
좌석 전석 40,000원
문의 055-320-1234
※ 코로나19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 공연 및 전시 일정이 변경 또는 취소될 수 있습니다.

20세기 역사의 숨은 영웅,
21세기 새로운 모험을 시작하다

연극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은 스웨덴 작가 ‘요나스 요나손’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만들어진 작품이다. 2009년 발표된 소설은 인구가 1천만 명밖에 되지 않는 스웨덴에서 120만 부 이상 팔리는 기록을 세웠고, 유럽은 물론 전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끈 베스트셀러다. 소설의 인기에 힘입어 2013년 동명 영화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원작 소설에 관해 흥미로운 점이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이 소설이 소설가 요나스 요나손의 데뷔작이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데뷔 당시 그의 나이 49세였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늦깎이 소설가의 이야기에는 대체 어떤 매력이 숨겨져 있기에 사람들의 마음을 단번에 사로잡은 것일까.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은 제목처럼 자신의 100세 생일날 양로원 창문을 넘어 도망친 노인 알란 칼손이 주인공이다. 특별한 계획도, 마땅히 갈 곳도 없지만 양로원을 탈출한 이 노인은 버스 터미널에서 되는대로 버스에 올라타 마을을 떠난다. 그런데 버스를 타기 직전 아주 사소한 사고로 갱단의 돈 가방을 손에 넣게 되면서 갱단의 추격을 받게 되고, 동시에 실종된 알란을 찾기 위한 경찰 수사도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여기까지는 다소 유별난 노인의 일탈 이야기 정도로 치부할 수 있겠지만, 이 작품의 주인공이 어디 그렇게 평범한 사람인가. 무려 100세 생일에 양로원을 탈출한 비범한 노인이잖은가.

주인공 알란은 1905년 스웨덴 시골에서 태어났다. 가난 때문에 학교는 3년 밖에 다니지 못했지만, 일찍이 폭탄에 흥미를 느껴 폭탄 제조 기술을 연마한다. 알란은 습득한 폭탄 제조 기술 덕분에 남다른 스케일의 굴곡진 삶을 살게 된다. 청년이 된 알란은 스페인으로 가 스페인 내전에 참가하고, 그다음에는 미국으로 넘어가 원자폭탄을 만드는 맨해튼 프로젝트에 참여한다. 그뿐만이 아니다. 국민당과 공산당이 대립 중이던 중국에서는 마오쩌둥의 부인을 구해내고, 심지어 6·25전쟁이 한창일 때는 북한으로 가 김일성과 김정일을 만나기도 한다. 역사에 전혀 기록된 바 없으나 20세기 역사의 현장에는 어김없이 나타나 역사를 바꿨던 알란 칼손. 이게 바로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의 정체다.

재치와 상상력으로 빛나는 모험 이야기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은 정확히 100년을 기점으로 알란의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며 진행된다. 알란의 모험은 다소 황당무계하지만, 작가는 재치와 상상력으로 이야기를 교묘하게 엮어 ‘세상에 이런 일이?’를 ‘세상에 이런 일이!’로 만들어냈다. 독자는 알고 있는 역사적 사실이 유쾌하게 왜곡(?)되는 현장을 목격하고, 도무지 어디로 튈지 예상할 수 없는 모험을 관찰하면서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의 매력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이 작품이 흥미로운 점은 100년을 중심으로 전혀 상반된 시각으로 알란의 인생을 소개하고 있다는 것이다. 먼저 과거는 알란의 개인사보다 인류의 세계사에 더 주목한다. 알란이 겪었던 역사적 사건과 세계사를 쥐락펴락했던 인물들을 통해 강대국과 강대국, 이념과 이념의 대립으로 어두웠던 20세기 현대사를 다소 우스꽝스럽게 그린다. 반면, 현재는 알란과 그의 친구들의 사적인 이야기가 펼쳐진다. 알란의 새로운 친구들은 세계적인 위인들과 급이 다르다. 무료한 70대 좀도둑, 거의 모든 분야의 지식을 갖췄지만 대학을 졸업하지 못한 남자, 세상과 외떨어져 사는 여자 등 유명인은커녕 가족과 친구도 없는 외롭고 소외된 사람들이다. 이들은 알란을 만나고 무기력했던 일상에서 도망쳐 모험을 떠난다. 서로에게 의지해 눈앞에 닥친 문제들을 해결하고 오늘보다 좀 더 괜찮은 내일을 기대한다. 20세기 알란은 역사를 바꿨다면, 21세기 알란은 사람들의 삶을 바꾼 것이다. 이렇게 상반된 과거와 현재 속에는 암울했던 지난 역사에 대한 비판적 시각과 앞으로 다가올 미래에 대한 희망적 바람이 담겨있다.

 

원작의 묘미에 무대의 매력을 더한 연극

방대한 분량의 원작을 매우 충실하게 무대로 옮긴 연극은 100년의 세월과 9개국을 넘나드는 모험을 빠르고 유쾌하게 펼쳐낸다. 원작이 과거와 현대를 비슷한 분량으로 다루고 있다면, 연극은 현재의 모험 속에서 ‘함께’의 가치와 가능성을 더욱 강조한다. 누군가와 대화를 하고, 음식을 나누고, 서로의 온기에 기대어 위로를 주고받는 사소한 일들이 100세에 창문을 넘어 도망친 노인과 친구들의 삶을 어떻게 바꾸는지를 따뜻한 시선으로 풀어낸다. 연극은 함께라면 몇 살이든 기꺼이 새로운 모험을 시작할 수 있고, 과거와는 또 다른 역사-그것이 개인의 역사든, 인류의 역사든-를 만들어갈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이것이 연극을 보는 내내 황당무계한 모험의 연속에 깔깔거리며 웃다가도 왠지 모를 뭉클함을 느끼게 되는 이유다.

연극 무대에서 무엇보다 돋보이는 건 배우들의 연기다. 긴 시간 동안 여러나라에서 진행되는 이야기를 단 다섯 명의 배우들이 야무지게 소화한다. 배우들은 각각 서로 다른 나이대의 알란을 나눠 연기하고, 동시에 알란이 만나는 많은 사람과 동물들까지 종을 넘나드는 연기를 펼친다. 게다가 이번엔 모든 배역에 성별 구분을 따로 두지 않는다. 배우들은 최소한의 소품과 이름표만으로 평균 1인 12역을 거뜬히 소화한다. 배우로서 개인의 역량뿐만 아니라 다른 배우와의 호흡도 잘 맞아야 하므로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그런데도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의 배우들은 완벽한 앙상블로 작품의 재미를 배가한다. 눈 깜짝할 사이에 다른 인물로 변신하는 배우를 볼수 있는 것은 이 작품의 묘미이자 동시에 연극 무대만이 가진 매력이다.

최영현
최영현 스테이지톡 기자

현재 공연 포털 사이트 스테이지톡에서 수석기자로 활동 중이다. 온라인 매체의 특성을 살려 글뿐만 아니라 영상, 모바일북 등 여러 방면에서 공연 관련 콘텐츠를 제작 하고 있다.

작성일. 2020. 02.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