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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습을 넘어 도전하는 100세 될 연극
연극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의 연출가 김태형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은 영화로도 제작되어 국내에서 24만 명의 관객을 모았을 만큼 인기 높았던 작품이다. 내용에 대해서라면 다른 코너를 통해 확인하는 게 낫다. 이 작품의 무대화 과정에서 생겨난 특징만 다룬대도 지면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연극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의 가장 큰 특징은 네 가지로 추릴 수 있다. 먼저, 역사적 사실을 비튼 팩션(fact+fiction)의 성격이 원작에서부터 유지되고 있는 장르적 특성이라면, 다음 세 가지 특징은 오직 연극에서만 볼 수 있다. 연극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은 본격 반려동물 연극이자 캐릭터 저글링 연극이며 동시에 젠더 프리 연극이다. 특히 이중 ‘본격 반려동물 연극’, ‘캐릭터 저글링 연극’이란 용어는 지이선 작가와 본 지면에서 소개할 김태형 연출가가 만들어낸 신조어다. 직접 그의 설명을 옮겨보겠다.

본격 반려동물 연극? 원작에 반려묘가 등장하던가?
그리고 반려묘의 비중이 컸던가?

먼저 주인공 ‘알란’이 반려묘 몰로토프의 죽음을 보고 분노하는 에피소드는 원작에서도 볼 수 있다. 하지만 원작에 없던 부분도 있다. 원작에서는 알란이 양로원을 떠나기로 결심하는 계기가 등장하지 않는다. 지나치게 지루하고 외로운 삶을 벗어나고픈 기운만 있을 뿐, 구체적인 이유는 드러나지 않는다. 하지만 공연에는 “다시 성냥을 켜라, 당신 삶에 불을 붙이라.”는 몰로토프의 목소리를 넣었다. 그런 지점들이 ‘본격 반려동물 연극’으로서 고양이의 역할을 강화한 지점이라고 볼 수 있다. 공연을 전체적으로 3막 구조로 봐도 무방 한데, 몰로토프가 등장하는 순간부터 또 다른 막이 시작된다고 봐도 좋다. 이런 변화에는 작품을 각색한 지이선 작가의 몫이 크다. 작가는 고양이 세 마리를 키우고 있는데, 고양이가 작가에게 정서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했고 고양이 덕에 작품을 끝까지 쓸 수 있었다고 한다.

2018년 작품이 초연되었을 때, ‘캐릭터 저글링’이란 단어를 선보였다

이 작품을 선택하게 되면서 처음에 서커스 방식을 제안했다. 유럽의 유랑극단이 서커스를 하는 식으로 이야기를 전달하면 흥미로울 것 같았다. 그래서 “자, 이제 알란 칼손의 이야기를 들려드릴게요.”라고 시작해 마지막에 “그 알란 칼손이 바로 이 자리에 있습니다.”라고 이야기를 펼치려 했다. 아직 연습실에 외발자전거가 있다. 그중에서도 저글링 정도는 조금만 연습하면 될 것 같았다. 그런데 한 배우가 열대여섯 명의 인물을 연기해야 하다 보니, 묘기까지 하는 게 쉽지 않을 것 같았다. 게다가 한 인물이 다른 인물로 변화하는 시간이 짧아 묘기를 포기해야 했다. 차라리 여러 인물을 짧게 연기하고 무대에서 빠지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흥미로울 것 같았다. 마치 저글링을 하듯이 한 배우가 인물 하나를 몸에 입었다가 벗어던지는 형식으로. 그렇게 작품 콘셉트를 바꾸면서, 자연스럽게 ‘캐릭터 저글링’이라는 단어가 튀어 나왔다. 특히 마지막 부분에 한 배우가 두세 개의 역할을 동시에 선보이는 장면이 있는데, 그건 의도가 들어간 장면이다. 일부러 여러 인물이 등장하게 한 건, 배우들 능력의 최대치를 보여주고 싶어서였다. 관객들에게 배우가 그런 연기 변신을 할 수 있는 존재라는 걸, 순간적으로 다른 인물을 보여줄 수 있는 존재라는 걸 증명하고 싶었다.

이번 시즌에서는 ‘젠더 프리 캐스팅’이 도드라져 보인다

아마 주인공 알란 역할에 배해선 배우를 캐스팅해서 그런 것 같은데, 사실 초연부터 젠더 프리 공연이었다. 그 전부터 지이선 작가와는 여성 중심 서사와 젠더 프리에 대해 오래 고민을 해왔다. 이번 작품에서 그걸 할 수 있었던 거다. 그렇다고 처음부터 완벽하게 정리하고 시작한 건 아니라서 젠더 프리라는 개념만 가지고 출발했다. 과정을 보면, 작가가 작품을 연극으로 각색하면서 배역을 따로 정하지 않고 각색했다. 누가 어떤 역할을 맡을지정하지 않은 채 60명의 인물이 등장하게 만들고, 5명씩 두 팀의 배우를 캐스팅했다. 다음에 리딩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역할을 나눴는데, 이 과정도 성별 보다는 인물의 성격이나 직업 등의 특징을 보고 분류했다. 연습하면서도 남자 배우들에게 여성 역할이라 해서 여성적인 목소리나 제스처를 하지 말라고 주문했다. 자칫하면 여성의 성적인 특성을 희화하거나 부각하게 되는 결과를 낳으니까. 아무튼, 그렇게 일인다역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젠더 프리 공연을 했고, 시즌 1과 2의 다른 점은 주인공 알란 역까지 젠더 프리 캐스팅을 한 건데, 사실 시즌 1 때도 배해선 배우에게 출연 요청을 하긴 했었다.
(※ 김해 공연에서는 배해선 배우가 출연하지 않는다.)

그런가 하면, 이 작품은 유럽의 현대사를 훑는 방대한 작품이다

기본적으로 <포레스트 검프> 같은 스타일의 작품이다. 역사의 중요한 순간 마다 주인공이 등장한다. <포레스트 검프>와는 달리 이 작품에서는 알란이 역사적 사건에 중요한 인물로 등장한다. <포레스트 검프>가 주로 문화·체육적이라면, 이 작품은 정치적이다. 알란은 역사의 한복판에서 지도자들과 친구도 되고, 적도 된다. 알란은 어린 시절에 익힌 폭탄 제조 기술로 자유주의, 사회주의, 전체주의 진영을 왔다 갔다 한다. 연극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작품을 끌어가는 가장 큰 축은 이데올로기와 폭탄이다. 작품을 연구하다 보니 원작자(요나스 요나손)는 20세기를 이데올로기와 (원자)폭탄 두 가지로 보는 것 같았다. 그런 공부를 배우들과 함께했는데, 역사적 사실을 정확히 아는 게 중요하기 때문이다. 정확한 지식이 있어야 인물을 제대로 표현할 수 있다. 물론, 그보다 중요한 것도 있다. 이런 정보들을 통해 전달하려는 정서가 무엇인지, 주제가 무엇인지 아는 것이다. 그걸 찾아내는 게 항상 어렵다.

그렇게 찾은 이 작품의 주제는 무엇인가?

이 작품에 등장하는 주변 인물들은 타자의 시선으로 보면 모두 부족한 부분이 있다. 좀도둑, 만년 대학원생, 결격 사유가 있(어 보이)는 여자. 그런 그들이 연대·유대해서 결국 유토피아로 떠나게 된다. 그리고 주인공의 시선에서 보면, 알란은 전쟁과 냉전 등 치열한 이데올로기 전쟁이 벌어지는 역사의 현장에 있던 인물이다. 하지만 알란 개인에게 그런 일들은 큰 의미가 없다. 오히려 그에게는 고양이가 더 중요하다. 한마디로 20세기가 이데올로기와 그로 인한 전쟁, 차별과 혐오의 세기였다면, 21세기는 고양이의 세기인 것이다. 농담이다, 고양이든 누구든 사랑을 나눌 수 있는 존재가 중요하다고 이야기하는 게 아닐까.

김일송
김일송 칼럼니스트

공연문화 월간지 <씬플레이빌> 편집장을 역임했으며, 서울무용 센터 웹진 <춤:in> 편집장을 지냈다. 현재 공연 관련 다양한 일을 하는 이안재 대표이사로 재직 중이다.

작성일. 2020. 02.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