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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바(ABBA)의 히트곡으로 만들어진 어트리뷰트 뮤지컬
주크박스 뮤지컬과 <맘마미아!>

동전을 넣고 원하는 음악을 편집하여 들을 수 있는 기계를 주크박스라고 한다. 주크박스 뮤지컬이란 바로 이미 발표된 가수들의 노래로 만들어진 뮤지컬이다. 주크박스 뮤지컬은 2000년대 가장 대표적인 뮤지컬 트렌드이다. ‘제니스 조플린’의 노래로 만든 <러브 제니스>(2001), ‘빌리 조엘’의 노래로 만든 <무빙 아웃>(2002), ‘엘비스 프레슬리’의 <올 슉 업>, ‘프랭키 발리’와 ‘포 시즌스’의 <저지 보이스>(2005), ‘보니 엠’의 <대디 쿨>(2006), ‘캐롤 킹’의 <뷰티풀> 등 2000년 이후 매해 평균 한 작품 이상의 주크박스 뮤지컬이 만들어졌다. 2000년대 주크박스 뮤지컬이 중요한 트렌드가 된 출발점에 1999년 제작한 뮤지컬 <맘마미아!>가 있다.

<맘마미아!> 주크박스 뮤지컬 장르의 트렌드를 만들다

그렇지만 뮤지컬 <맘마미아!>가 최초의 주크박스 뮤지컬은 아니다. 주크박스 뮤지컬의 역사는 길다. 흔히 주크박스 뮤지컬의 역사를 말할 때 1952년산 영화 <싱잉 인 더 레인(Singing in the Rain)>을 거론한다. 「You Are My Lucky Star」(1935년 뮤지컬 <브로드웨이 멜로디> 삽입 넘버)를 비롯해 작품에 사용된 여러 곡을 이미 있는 곡에서 가져왔다. 이보다 앞서 1930년 제작된 <걸 크레이지>는 ‘조지 거슈인’과 ‘아이라 거슈인’ 콤비의 기존 노래로 만든 주크박스 뮤지컬이다. 우리나라의 악극에서 기존의 유행가를 사용 하듯이 과거 대중 음악극에서 대중들에게 인기를 얻었던 익숙한 노래를 작품에 사용하는 예는 무수히 많았다. 전문가에 따라선 뮤지컬의 효시로 보는 <거지 오페라>는 헨델의 아리아 등 당시 유행하던 오페라의 아리아를 차용했다. 그런데도 주크박스 뮤지컬의 출발점을 <맘마미아!>로 여기는 것은 이 작품 이후 주크박스 뮤지컬이 하나의 장르로 확실히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맘마미아!>의 성공 이후 수많은 주크박스 뮤지컬이 만들어졌고 이것이 뮤지컬의 중요한 트렌드가 되었다.

어트리뷰트 뮤지컬과 컴필레이션 뮤지컬

주크박스 뮤지컬은 한 가수의 노래만을 사용하느냐, 그렇지 않으냐에 따라 어트리뷰트(A Tribute) 뮤지컬과 컴필레이션(Compilation) 뮤지컬로 나눌 수 있다. ‘아바(ABBA)’의 히트곡으로만 만든 <맘마미아!>는 대표적인 어트리뷰트 뮤지컬이다. 창작 뮤지컬 중 작곡가 ‘이영훈’의 노래로 만든 「광화문연가」나, ‘신중현’의 노래로 만든 「미인」이 여기에 속한다. 반면 ‘심신’, ‘김광석’, ‘송창식’ 등 1980~1990년대 대중가수의 노래를 모아서 만든 뮤지컬 <젊음의 행진>은 대표적인 컴필레이션 뮤지컬이다. 다양한 가수의 노래를 엮어 만든 앨범을 흔히 컴필레이션 앨범이라고 부르는 것처럼 여러 가수의 노래를 모아놓았다는 의미로 컴필레이션 뮤지컬이라고 부른다. 1960~1970년대 글램록과 메탈로 만든 <록 오브 에이지>나 1970~1980년대 대중가요를 엮은 <달고나>가 여기에 속한다. 최근 브로드웨이의 히트 뮤지컬 <물랑루즈>는 동명의 영화를 현대적으로 재해석된 70여 곡의 히트 팝송으로 만든 컴필레이션 뮤지컬이다. 주크박스 뮤지컬은 컴필레이션 뮤지컬보다 한 가수의 노래로 만드는 어트리뷰트 뮤지컬의 비중이 압도적으로 많다. 국내에서도 최근 ‘김현식’의 노래로 만든 「사랑했어요」, ‘신중현’의 「미인」, ‘서태지’의 「페스트」 등 어트리뷰트 뮤지컬이 만들어져 관심을 받았다.

주크박스 뮤지컬의 흥행과 숙제

2000년대에 브로드웨이에서 주크박스 뮤지컬이 인기를 끈 것은 흥행을 담보하는 작곡가가 줄어든 것과 깊은 관련이 있다. 대표적인 뮤지컬 흥행 작곡가 ‘앤드류 로이드 웨버’, ‘미셸 쇤베르크’, ‘스티븐 손드하임’ 등이 2000년대 초반 이렇다 할 만한 흥행작을 내놓지 못하는 가운데 이미 대중들에게 사랑 받는 곡들은 뮤지컬 제작자들에게 매력적인 카드였다. 게다가 브로드웨이와 웨스트엔드의 주요 뮤지컬 관객층이 40대 이상의 중장년층임을 고려한다면 추억의 가수를 소환하는 주크박스 뮤지컬은 성공 확률이 높은 선택지였다.

이미 익숙하고 인기가 검증된 노래를 사용해 주크박스 뮤지컬이 손쉽게 흥행을 이룰 수 있을 것 같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다. 주크박스 뮤지컬의 흥행률은 기존 뮤지컬과 비슷하거나 오히려 떨어진다. <맘마미아!>의 성공 이후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에 기존 노래를 접목하는 방식의 주크박스 뮤지컬이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이미 있는 가사를 새로운 이야기에 유기적으로 결합하는 작업이 간단치 않았다. 한 명의 가수의 노래로 만드는 어트리뷰트 뮤지컬의 경우 사용할 수 있는 노래가 한정되어 있다 보니 다양한 이야기를 만들어내기 어렵다. <맘마미마!> 성공을 모델로 기존 가수의 노래에서 영감을 얻어 이야기를 구축하는 주크박스 뮤지컬이 많이 등장했지만, 흥행률이 저조했다.

새롭게 이야기를 만드는 작업이 수월치 않다 보니 최근 성공한 주크박스 뮤지컬 중에는 해당 가수의 삶을 극으로 녹여내는 작품들이 많다. 뮤지컬<저지 보이스>는 팀의 보컬인 ‘프랭키 발리’와 ‘포 시즌스’의 노래로 만든 주크박스 뮤지컬이다. 이 작품은 뉴저지에서 철없는 시절에 밴드를 결성하여 세계적인 밴드로 성공한 포 시즌스의 이야기를 극의 내용으로 한다. 작품에는 밴드를 결성하고, 인기를 얻고, 또 팀원 간의 불화로 갈등을 빚다가, 해체되는 과정을 봄, 여름, 가을, 겨울 네 개의 섹션으로 보여준다. 네 명의 멤버는 각 섹션의 해설자가 되어 밴드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런 구성을 취하다 보니 기존 히트 팝송이 창작된 과정이나 연습 또는 콘서트 장면에서 자연스럽게 포 시즌스의 노래를 사용할 수 있었다. ‘캐롤 킹’의 노래로 만든<뷰티풀>이나 ‘김광석’을 떠올리게 하는 뮤지컬 <바람이 불어오는 곳>도 가수들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기본 내용으로 삼은 뮤지컬이다.

대중들에게 익숙한 노래가 있다는 것은 큰 장점이지만 이를 극과 연결해야 하는 어려움은 주크박스 뮤지컬의 큰 숙제이다. 그래서 다양한 방식의 이야기가 시도되고 있다. 이미 대중들의 사랑을 받아온 노래로 뮤지컬을 만드는 주크박스 뮤지컬은 과거에도 그렇듯 앞으로도 많이 등장할 것이다. 그러나 <맘마미아!>처럼 고른 완성도로 다양한 연령층에 사랑을 받는 작품은 많지 않을 것이다.

글 박병성
글 박병성 뮤지컬 평론가

뮤지컬 평론가 및 <더뮤지컬> 국장으로 뮤지컬 관련 문화 사업 을 진행하고 있다. 유튜브 방송 뮤지컬 비평쇼 <스테이지 감동정 산>의 프로듀서이자 패널로 참여하였으며, 저서로는 <뮤지컬 탐 독>(2019)이 있다. 한예종 음악극창작과에서 뮤지컬 분석을 강의 하였다.

작성일. 2019. 12.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