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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세라믹 루키展 <너, 나, 우리 모두>
한국 사회의 인간 군상과 삶을 바라보는 두 시선

자신이 사는 사회와 사람들을 바라보는 작가들의 눈과 감각은 리트머스 종이와 같아서 주관대로 보고 느끼는 바가 고스란히 이미지로 반영된다. 작가란 사회 속에서 사람들과 부대끼고 살고 그 속에서 자신이 보고 느낀 것을 표현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자이기에 사회 속에서 부단히 자신의 존재를 규명하고 부조리한 것들에 대해 질문하며 부득불 형상을 만들어낸다. 우리가 미디어를 통해 우리 사회의 여러 가지 사건과 비판적 담론을 접할 수 있음에도 작가들이 만들고 그린 미술 작품 속에서 우리 사회와 삶 그리고 자신을 다시 들여다보려는 것은 보편적 시선이 아닌 작가의 농밀하고 예리한 주관적 시선으로만 볼 수 있는 세계 즉, 우리가 보지 못했거나 간과한 문제들을 이미지로 마주하기 위해서다.

올해 클레이아크김해미술관의 세라믹 루키展은 인간 군상을 소재로 작업하는 최규락, 김혜연 두 작가의 작품을 보여준다. 두 작가는 동시대 삶 속에서 자신의 눈에 들어온 인물들의 모습을 흙으로 형상을 빚거나 도판에 그린다. 한국 사회의 현실과 삶을 바라보는 두 작가의 관점과 해석 나아가 표현은 다르지만, 한국 사회가 가진 다양한 모순, 도시 문명의 속살과 인간 존재의 어두운 욕망을 탐사하고 담론화할 것인지의 동일한 목표와 관심이 있다는 점에서 두 작가 모두 같다.

풍자미술의 존재이유와 역할

최규락 작가의 작품에는 우리가 익히 아는 인물들이 많다. 텔레비전 뉴스를 보면 하루에도 몇 번씩 언급되고 등장하는 인물들이다. 작가는 문재인 대통령, 故 노무현 대통령 같은 국내 정치인을 비롯해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 일본의 아베 총리, 중국의 시진핑 주석, 북한의 김정은 위원장 등 해외 정치인을 등장시켜 ‘지금, 여기 한국’을 무대로 벌어지는 민감하고 첨예한 국제 정치적 역학관계와 사회적 정국을 다룬다. 마치 캐리커처 그리듯 인물들의 표정과 습관, 내면을 잘 포착하여 재치 있는 솜씨로 묘사해 만화나 일러스트를 보는 것 같다. 겉으로는 대중문화와 고급예술을 관통하는 팝아트 특유의 유쾌함이 있지만, 잘 들여다보면 인물과 사회를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은 풍자적이고 비판적이다. 최 작가는 평소 미디어에 노출된 정치인들의 이미지 중에서 인물의 인성과 내적 감정, 상황이 가장 잘 표출된 표정과 제스처를 선택한다. 단순히 인물만을 등장시키지 않고 슈퍼 히어로의 복장을 입히거나 인물과 관계된 상징물을 등장시켜 때로 유명 명화 속의 주인공으로 표현하여 관람자의 관심을 환기하고 흥미를 돋운다. 그의 작업은 한국 사회와 결부된 정치인, 유명인의 허상을 메타포의 형식을 통해 거침없이 드러내고 풍자하여 일반 대중이 평소 갖고 있던 정치가들에 대한 이미지와 편견에 모종의 틈을 만들고 벌리는 데서 이미지의 힘이 존재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미디어에 의해 미화되고 권력에 가려졌던 인물들의 민낯이 드러나기도 하고 그 속에서 사람들은 우리 사회가 지닌 현실의 위태로움과 권태로움에 다시 한번 경각심을 느끼기도 할 것이다.

사라지는 인간의 순수성과 존재감

김혜련 작가의 인물 표현은 두리뭉실 부풀다 만 몸, 이목구비와 표정이 사라진 얼굴, 파스텔 톤의 희뿌연 색채, 선묘가 어우러져 감상자의 눈길을 끈다. 사람들은 암석에 음각한 암각화처럼 또는 엽서 안의 평면 이미지처럼 틀 속에 갇혀 있다. 김 작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종이컵 위에 푸른 단색으로 퍼져나간 얼룩 혹은 세부와 그림자가 사라진 검은 실루엣으로만 표현했다. 관람자는 신체의 라인, 소지품 등을 통해 인물들에 관한 최소한의 정보(성별, 연령, 취향의 단서)만을 막연히 가늠할 수 있을 뿐이다. 사람들은 어디론가 향해 바삐 걷고, 핸드폰을 들여다보며 각자 바쁜 모양새다. 곁에 있되, 서로 눈과 몸을 마주치지 않으려 애쓰고 가방, 우산 등 자신의 소유물을 놓지 않으려는 의지가 엿보인다. 우리는 이러한 사람들의 행동에서 지친일상 속 불안한 삶을 사는 ‘나, 너 그리고 우리’의 자화상을 본다.

작가는 자신이 만들어낸 인물 군상이 어떤 특정한 인간을 재현해낸 것이라기보다 감상자에 따라 자의적 해석이 가능한, 정해진 인물이 아닌 그 누구의 얼굴도 될 수 있는 집단 군상이길 바랐던 것 같다. 그들은 일상에서 나를 스쳐 가는 수많은 이의 초상이며 자신을 스스로 고립시키고 소통을 단절한 채로 살아가는 현대인의 얼굴이다. 작가는 도시문화와 자본주의, 소비 사회로 인해 점차 사라져가는 인간의 순수성과 존재감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작가가 흙을 가르고, 긁고, 덧붙이며 변형, 왜곡한 신체는 도시화, 산업화로 인해 파편화와 구조화된 인간의 욕망, 그들의 불안한 심리 상태를 상징한다.

이처럼 작가의 눈은 획일화된 상품과 상품 이미지가 충동하는 소비 형태, 익명성에 숨어버린 인간 군상들의 틀에 박힌 삶을 보고 경계하고 있다. 이처럼 올해 세라믹 루키展의 두 작가는 오늘날 ‘한국, 지금 여기’를 ‘욕망의 헤게모니가 지배하는 사회’로 보는 비판적 시선을 공유하고 있다. 이들은 자신들의 눈에 들어온 다층적 소재에 독자적인 시선으로 접근해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삶의 의미와 양태를 드러내고자 부단히 자신의 일상과 주변을 자세히 살피고 주시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이 과정에서 발견한 독자적 형상과 이야기를 흙과 불 그리고 조각 기법을 통해 전개하는 것이 이 두 작가의 공통된 조형 방법이다

기간 2019.11.22.(금)~2020.02.16.(일)
장소 클레이아크김해미술관 돔하우스 1갤러리
참여작가 최규락, 김혜련
관람료 성인 2,000원 / 청소년 1,000원 / 어린이 500원 / 미취학아동 무료
※ 매표 1회 발권으로 미술관의 모든 전시 관람 가능
문의 055-340-7000

글 홍지수 공예비평가 작성일. 2019. 12.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