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크를 낀 채 사람들과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일상입니다. 예전에는 얼굴에서 눈이 참 중요하다고 생각했는데, 상대방의 표정을 알게 되는 데에 미소 짓는 입매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 새삼 생각하는 요즘입니다. 물리적 거리를 두어야 한다는 사실이 사람에 대한 마음의 거리도 일정하게 띄우도록 만들고 있네요. 멀어진 그 사람과 나 사이에 다정한 말들을 한 자루 풀어 놓고 싶어집니다.
나의 할머니에게
윤성희 외│소설│다산북스│240p
“무슨 말을 하든 그들이 주고받는 동사는 시제 없이 원형으로 밖에 표현되지 않는데 어느 날 문득 할머니는 동사를 사전에서 찾다가 삭제된 시제들은 대부분 과거형이며 할머니에게 미래형 동사를 써서 표현할 것은 거의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앞선 시대를 살며 뒤이어 태어난 우리를 온기 가득한 손길로 쓰다듬어주었던 세상의 모든 할머니들을 떠올리게 되는 단편소설집입니다. 할머니도 이름이 있고, 자신을 중심에 둔 열정과 기쁨의 순간들을 가져왔음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할머니’는 한 시절을 다 보내버린 사람의 이름이 아니라, ‘할머니의 시간’을 향해 가고 있는 우리들 앞에 놓여있는 이름 같기도 합니다.
당신의 자리는 비워둘게요
조해진, 김현│시/에세이│미디어창비│232p
“타인의 삶을 염려할 때 우리의 삶은 비로소 과거가 아니라 미래로 향한다는 말을 하면 지나치게 거창한 것일까요. 그런 믿음이 마침내 사람이라는 말을 희망과 연대와 온기라는 말로 변화시킨다고 한다면 너무 틀에 박힌 걸까요.” 조해진 작가와 김현 시인. 영화를 매개로 편지를 주고받는 두 사람의 다정함에 이입되어 나와 연결된 이 누구에게든 다정한 한마디쯤 보내며 살아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됩니다. 서로에게 조금 더 다정해지는 일 외에 우리에게 더 거창한 무엇이 필요하냐는 듯, 편지지를 사고 꼭꼭 눌러가며 손편지를 쓰게 될 것 같습니다.
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습니다
박준│시/에세이│문학과지성사│116p
“휴지로 입을 닦다 말고는/ 아이들이 보고 싶다, 좋아한다, 사랑한다,/ 잔뜩 낙서해 놓은 분식집 벽면에// 봄날에는/ ‘사람의 눈빛이 제철’이라고/ 조그맣게 적어놓았습니다.” 시가 왜 공감과 위로의 문학인지 제대로 느끼게 해주는 박준 시인의 두 번째 시집입니다. 내가 모르는 어떤 사람의 이야기가 내 이야기인 듯 들리고, 또 어떤 구절은 몇 달 전 내가 흘려버린 마음들을 시인이 주워와 쓴 것 같기도 합니다. 마음을 흔드는 구절들에 밑줄을 긋다가 아예 시집을 통째로 외워버리고 싶어지기도 할 테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