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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합★체〉가 꿈꾸는 합체
극작가가 띄우는 편지
글.정준 사진.국립극장

안녕하세요.

뮤지컬 〈합★체〉의 대본을 쓰고 노랫말을 다듬은 정준입니다.

혹시 ‘배리어프리-무장애극’에 대해 들어본 적 있으신가요? 세상에 있는 모든 장애물을 넘어볼 만한 요철로 만드는 것, 그것이 배리어프리(barrier-free)의 정신입니다.공연을 보고 싶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연장에 와서 볼 수 있게 하고자 하는 마음이 무장애 공연의 소망입니다. 나아가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가르는 벽은 물론이거니와, 나와 내가 아닌 것 사이에 선을 긋는 일체의 마음과 행위를 허물고자 하는 것이 뮤지컬 〈합★체〉의 소망입니다.

쌍둥이 형제 합과 체가 한마음이 되어 각자의 꿈을 향해 공을 던지는 이야기 〈합★체〉. 이제 배우, 스태프들이 한 마음 한뜻으로 똘똘 뭉쳐 배리어프리 뮤지컬 〈합★체〉가 합체하길 꿈꾸며 노력했던 것들을 소개합니다!

★ 원작과의 합체

박지리 작가의 데뷔작인 원작 소설인 〈합★체〉1)를 처음 만난 순간, 우리의 주인공 체가 힘껏 쏘아 올린 공이 ‘퉁’하고 제 마음속 벽을 두드렸습니다. 한 번도 밟아본 적 없는 낯선 계룡산 숲길을 걸어가는 합과 체의 여정을 함께하며, 내 안에 벽돌처럼 굳건히 쌓아 올려졌던 선입견에 금이 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나의 벽과 너의 벽이 도미노처럼 연쇄반응을 일으키길 기대하는 마음으로 모쪼록 원작의 말맛과 캐릭터, 서사 구조를 충실히 담아내고자 하였습니다.

★★ 음악과의 합체

뮤지컬이 배리어프리 공연을 시도하기란 쉽지 않은 일입니다. 음악이라는 것 자체가 하나의 언어이므로, 뮤지컬이란 음악과 극이 만나 이미 두 개의 다른 언어가 공존하는 장르인데 그 위에 또 다른 언어들이 추가되고 각각 변환되는 과정이 더해지기 때문이지요. 그럼에도 음악으로 말미암아 이야기를 더 쉽게 이해하고 인물의 감정과 더 가까워지도록, 드라마와 음악이 찰떡같이 어우러지도록 최선을 다해 보았습니다.

★★★ 음성해설과의 합체

원작과 뮤지컬의 가장 큰 차이는 바로 ‘DJ 지니’의 존재입니다. 원작에서는 라디오 사연 소개 때 잠깐 나오는 인물이지만 무대 위에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그녀의 말만 들으면 상황을 다 알 수 있도록 해설자 역할을 맡겼습니다. 보통의 배리어프리 공연에선 별도의 수신기를 통해 음성 해설을 들을 수 있는데요. 이를 ‘폐쇄형 음성해설’이라고 한다면 저희 공연에서는 ‘개방형 음성해설’을 접하실 수 있습니다. 단순한 음성해설보다는 ‘극 중 인물이 자연스럽게 내레이션 방식을 통해 음성해설을 해 줄 수 있다면 더 재밌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DJ 지니’에게 전지적 작가 시점의 해설2)을 맡겨 보았죠.

★★★★ 수어해설과의 합체

뮤지컬 〈합★체〉에는 단순히 수어통역사라고 불리기엔 아까운 다섯 분의 수어 ‘배우’들이 배우 열두 명과 합체합니다. 일반적인 무장애극에선 무대 양옆 혹은 뒤쪽에 위치했던 수어통역사들이, 우리 작품에선 배우들과 함께 무대 전면을 누비고 계시죠. 처음엔 조금 눈이 바쁘고 다소 정신없게 느껴질 수 있어요. 하지만 조금만 익숙해지면 한 역할에 해당하는 배우와 수어 배우가 합체해 각각의 인물 하나하나가 진짜 살아나 움직이게 되는 마법을 경험하실 수 있습니다. 이른 바 ‘그림자 통역’을 통해 ‘가장 진화된 형태의 배리어프리 공연’을 만나보게 되실 텐데요. 이를 위해 춤과 동선을 익히는 것은 물론, 따로 연기까지 배운 수어 배우들께 아낌없는 박수 부탁드립니다.

★★★★★ 혁명과의 합체

마지막으로, 극중 체가 선망하는 체 게바라 형님은 아르헨티나 출신의 의사이자 정치가로서 혁명가였습니다. 그는 쿠바 혁명을 성공시켜 독재 정부를 종식시킨 인물로, ‘Che’라는 별명은 그의 왼쪽 머리에 있는 작은 별 모양의 점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 별은 체 게바라의 모토인 “Hasta la victoria siempre(승리에 이르기까지 항상)”라는 문구와 함께 그의 혁명적 신념을 상징하는 심벌로 쓰여 왔습니다. 소설〈합★체〉의 표지에 선명하게 찍혀 있는 별 역시, 이 이야기가 체 게바라의 혁명 정신을 추구하고 있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것 아닐까요?

“여러분, 혁명을 꿈꿔야 합니다. 정치적 행동만 혁명인 것은 아닙니다.
환경을 위해 분리수거 앞장서는 것도 혁명, 친구와 싸운 후에 먼저 사과하는 것도 혁명, 나 자신을 위해 용감히 도전하는 것도 혁명,
잘못을 했다면 먼저 시인하는 것도 혁명, 혁명은 빨간 머리 띠에 있는 것이 아니라 붉은 피 만들어지는 가슴속에 살아 있습니다.
체, 체, 체!”

오늘 이 공연을 보고, 극장을 나서는 여러분의 발걸음이 상쾌한 가을바람처럼 싱그러워지길 기대합니다. 그것이 합과 체가 쏘아 올린 공이자, 지난여름 내내 저희 팀이 한마음 한뜻으로 꿈꿔온 혁명입니다.

자, 저희의 공을 이제 어디로 패스하실 건가요?

  • 1) 합★체(2010), 사계절출판사
  • 2) 자막 해설 역시 제공됩니다.
작성일. 2023. 10.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