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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으로 미리 만나는 〈발레메카닉〉
음악과 춤의 관계
글.편집부 정리 | 자료 TIMF앙상블(신예슬 음악평론가 해설) 사진.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옥상훈
춤의 시작을 떠올려보자. 아마 이런 장면을 그릴 것이다. 음악이 흐르고,
박자와 멜로디를 따라 무용수가 몸짓을 펼치는. 그래서 보통은 음악이
춤보다 먼저 존재했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춤으로부터 탄생한 음악도 있다.
예컨대 탱고가 그러하다. 탱고는 본디 춤을 위해 만들어진 음악이다.
그러나 지금은 춤 없이, 음악 감상만을 위해서도 존재한다.

TIMF앙상블과 아트 프로젝트 보라의 공연 〈발레메카닉〉을 기획·연출한
김도윤, 문종인은 이 지점에 주목했다. “우리는 춤에서 독립한 음악들을 다시
어머니 품으로 돌려보내려 한다”라고 연출노트에 밝힌 것처럼,
음악이 무대 전면에 선다. 그리고 무용수들은 기존 장르들의 관습을 벗어던지고,
‘도구화된 신체’로서 조화롭기도, 이질적이기도 한 완전히 새로운 춤을 선보인다.
즉, 공연을 여는 핵심 열쇠는 음악인 것이다. 공연에는 총 다섯 곡의 현대음악이 등장한다.
신예슬 음악평론가의 해설을 따라, 공연 〈발레메카닉〉을 먼저 만나보자.

이고르 스트라빈스키:
<탱고>(1940)

2차 세계대전 발발 후, 유럽의 수많은 예술가들이 본국을 떠나 미국으로 망명했다. 일찍이 유럽 무대에서 활약했던 러시아 작곡가 이고르 스트라빈스키 또한 1939년 미국 캘리포니아 할리우드에 자리를 잡았다. 하지만 타지 정착이 쉽지 않았다. 그는 프랑스에서 지속적으로 저작권료를 받고 있었지만 국제 저작권법상의 문제로 이를 미국에서 수령하는 것이 불가능했던 것이다. 스트라빈스키에게는 상업적 성공이 필요했다. <탱고>는 바로 그런 상황에서 만들었다. 규칙적인 박자와 당김음 리듬 등 아르헨티나 탱고 음악의 특성을 담은 <탱고>는 본래 노래로 작곡될 예정이었으나 피아노 독주곡으로 완성됐다. 이후 바이올린과 피아노 이중주, 그리고 오케스트라 편성으로도 편곡되었다.

스티브 라이히:
<나무조각을 위한 음악>(1973)

작곡가 스티브 라이히의 <나무조각을 위한 음악>은 최소한의 재료들로 음악을 만들어낸다. 박수 소리로만 구성된 ‘박수 음악’의 연장선에 놓여 있는 이 작품은 서로 다른 음정으로 조율된 딱딱한 나무 조각이나 클라베(clave)라는 악기로 연주된다. 다섯 명의 연주자는 나무 조각을 각자의 리듬으로 반복해서 연주하지만, 이 제각각의 리듬은 서로 다른 지점에서 맞물린다. 아주 단순한 부품 같은 소리들을 만들어두고 이를 다양하게 조합한 <나무조각을 위한 음악>은 계속해서 변화하는 ‘리듬의 패턴’을 들려준다.

테리 라일리:
<행성의 꿈 수집가의 일출>(1980)

1960년대 말부터 테리 라일리는 연주자의 즉흥적인 선택에 따라 음악이 구성되는 방식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이 생각의 연장선에서 라일리는 <행성의 꿈 수집가의 일출>에서도 연주자가 마치 제비 뽑기를 하듯 재료를 즉흥적으로 선택하며 연주하도록 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내가 구상한 것은 작품이 매번 재구성되는 것이다. 무언가 악보에 적혀 있더라도 이것은 재즈 헤드를 편곡해서 연주하는 것에 가깝다.” 재즈 음악가들은 일종의 주제인 ‘헤드’를 각자의 스타일로 연주하는데, <행성의 꿈 수집가의 일출> 또한 그러한 방식으로 연주되기를 바란 것이다. 라일리는 행성을 돌아다니며 잠자는 사람들의 꿈을 수집하고, 이튿날 이 꿈을 다른 사람들의 꿈에 옮겨 심는 초자연적 존재를 상상했다. 이 작품을 구성하는 재료들은 그 ‘수집된 꿈’처럼 여겨질 수 있을 것이다.

모리스 라벨:
<프론티스피스>(1918)

본디 한 대의 피아노와 다섯 개의 손을 위한 작품이다. 아주 간결한 선율로 시작하지만, 점차 다른 선율들이 겹겹이 쌓여가며 그 짜임새가 한층 두터워진다. 짧은 시간 안에 빠르게 복잡해지는 이 곡은 한 대의 피아노로 연주될 수는 있지만 ‘한 사람’이 연주 할 수는 없는 두꺼운 화음으로 끝난다. <프론티스피스>는 피아니스트 두 명의 이중주로 연주되기도 하며, 프랑스 작곡가 피에르 불레즈에 의해 오케스트라 버전으로 편곡된 바 있다.

조지 앤타일:
<발레메카닉>(1953)

자동 피아노는 20세기 초에 발명되어 많은 주목을 받았다. 이 기계 장치는 예술의 영역에 발을 들인 침입자로 여겨지기도, 연주라는 어려운 과업을 대체해 주는 조력자로 여겨지기도 했다. 이 와중에 몇몇 작곡가들은 이 특별한 기계의 음악적 가능성에 열광하며 이를 위한 음악을 만들었다. 미국 작곡가 조지 앤타일이 “기계로 만들어진, 기계를 위한 음악”이라고 말한 <발레메카닉>은 바로 이 자동 피아노 16대와 사람이 연주하는 피아노 2대, 실로폰 3대, 베이스 드럼 4대, 비행기 프로펠러 3개, 사이렌, 전자 종, 탐탐으로 연주되는 곡이다. 그러나 당시 기술로 자동 피아노 16대를 정확한 타이밍에 합주시키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고, 이후 앤타일은 사람들이 연주하는 버전으로 편성을 바꾸었다. <발레메카닉>은 페르난드 레거와 더들리 머피가 만든 동명의 실험영화에 쓰일 예정이었으나, 작업 과정에서 본래 취지와 서서히 멀어지며 독립적인 음악이 됐다.


작성일. 2023. 07.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