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에서
실감형 콘텐츠 전시란
무엇일까?
‘실감형 콘텐츠’는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에도 등장하지 않을 정도로 생소한 용어다. 한국정보통신기술협회 <TTA정보통신용어사전>에는 ‘현실 세계를 가장 비슷하게 나타내고자 하는 콘텐츠로 시각·청각·촉각처럼 인간의 오감과 개인의 경험 및 지식, 나아가 느낌(feeling)이나 감성(sensibility)까지 자극하여 사용자에게 실감(reality)을 전달할 수 있는 다차원 콘텐츠’로 정의하고 있다. <두산백과>에서는 ‘인간의 오감을 극대화하여 실제와 유사한 경험을 제공하는 차세대 콘텐츠’로 정보통신기술(ICT)을 기반으로 한 가상현실, 증강현실, 홀로그램, 오감 미디어 등을 대표적인 실감형 콘텐츠의 예로 보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 <2020 국립문화시설 실감콘텐츠 체험관 조성 및 공공향유형 콘텐츠 제작 지원사업>은 실감 콘텐츠를 ‘인간의 오감을 자극해 몰입을 향상시키는 기술기반의 융합 콘텐츠’로 정의하고, 그 예로 VR(가상현실), AR(증강현실), MR(혼합현실), 고해상도영상, 홀로그램, 미디어파사드 등을 들었다.
위와 같은 개념을 박물관 전시에 적용하면 ‘정보통신기술을 기반으로 한 실감형 콘텐츠를 전시로 구현하여 관람객에게 몰입감과 현장감을 제공’하는 것으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정의에도 불구하고 국립민속박물관(이하 민박)에 부합되는 실감형 콘텐츠란 무엇이고, 어떤 것을 주제로 선택하여야 하며, 구현 방식과 스토리텔링은 어떻게 구성해야 하는지 등에 대한 현실적 고민도 상당했다. 국립중앙박물관처럼 화려한 유물 중심의 실감형 콘텐츠 전시를 답습하는 것은 민박의 정체성에도 부합되지 않고, 기술을 비롯한 별도의 공간 및 인력 확보의 어려움과 실효성 때문에 전시에 적용하기를 주저한 것이 사실이다.
가령, AR(증강현실) 콘텐츠 개발은 시간·비용 대비 효과와 관람객 호응도가 낮다. 개인 모바일 기반으로 관람객이 애플리케이션을 내려받도록 하는 데 어려움이 있고, 유물이 전시된 공간에서 증강현실은 오히려 집중에 방해가 되기도 한다. 따라서 증강현실 실감 콘텐츠는 독립 공간이 필요하다. VR(가상현실) 콘텐츠는 관람객의 만족도는 높지만, 관리·운영을 위한 별도 인력과 장비 비치 등의 공간과 시설이 필요하고 한정된 인원만 체험 가능한 단점도 있다.
이를 돌파하기 위해 민박은 고고학, 역사학 중심의 박물관과 달리 무형의 수많은 아카이브 자료를 축적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또한 하나의 주제라고 하더라도 아카이브 자료와 유물을 결합한 다양한 소재의 실감형 콘텐츠 제작이 가능하다는 것도 장점이었다. 그 결과 2020년부터 정부의 예산 지원을 통해 시장과 유랑예인, 한옥의 풍경과 삶, 한국의 사계, 세시와 절기(경직도), 계절식 만들기, 야행 골목, 한국인의 일생, 탈춤, 역병, 호랑이, 민간의 신(神) 등 다양한 주제를 가지고 실감형 전시를 구현 할 수 있었다.
특별전
<한 여름밤, 신들의 꿈>
민박에서는 실감형 콘텐츠의 키워드로 ‘몰입감’, ‘현장감’, ‘관람객 소통’을 설정했다. 그러나 낮은 천장과 수많은 기둥 등의 협소한 공간은 큰 방해 요소였다. 그나마 관람객에게 인기가 있는 실감 전시는 상설2관의 양동마을 한옥 공간이다. 계절에 따른 양동마을의 변화상과 한옥의 생활모습을 프로젝션 매핑, 3D 그래픽, 홀로그램, 지향성 스피커 등의 기술을 적용해 한국적 이미지와 사계가 어우러지게 하였다. 사랑채 툇마루와 안채의 마루에 앉아 보는 듯한 양동마을의 사계절과 사람들의 생활상은 관람객에게 현장감은 물론 평안함과 향수를 불러일으킬 정도로 인기가 높은 편이다.
2022년 8월 13일부터 10월 11일까지 개최했던 특별전 <한 여름밤, 신들의 꿈>은 실감형 전시 구현에 그나마 적합한 기획전시실1 공간(595m²)을 활용했다. 그간의 실감 전시와 달리 공간을 이동하고, 환상적 체험에 몰입할 수 있게 구현 한 것이 특징이다. 이는 여타 박물관에서도 구현해 본 적이 없는 최초의 시도라는 점에서 큰 의미를 지니기도 한다.
또한 유물이나 현장, 역사적 사실에 기반한 형태의 기존 실감 영상을 뛰어넘는 민박만의 실감 전시를 위하여 민간신앙과 설화 등 민속 문학을 기반으로 한 ‘스토리텔링형의 실감 콘텐츠 전시’를 지향했다는 점에서도 주목받는 전시였다.
보통 박물관 전시는 전시 주제 선정, 자료 조사, 전시 구성 기획, 유물 선정, 해석 매체 기획 등의 기획 과정을 거친다. 그러나 실감형 전시의 경우 영상만으로 이루어지는 전시이기 때문에 유물 선정대신 영상 기획 단계가 추가되었다. 영상 기획은 주제 선정(우리 민속 신 소개), 자료 조사, 소재 선정(장승 등 7개 신), 영상 스토리라인 및 시나리오 구상, 일러스트 제작의 과정을 거쳐 이루어졌다. 유물과 이론을 기반으로 해야 하는 박물관의 입장과 무한한 상상력을 적용하고자 하는 영상 업체 간 의견 조율의 지난 한 과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렇게 탄생한 특별전 <한 여름밤, 신들의 꿈>은 ‘두 가지가 없다’는 점에서 특징적이었다. 첫째, 박물관 전시이면서 유물이 없었다. 물론 유물을 기반으로 영상의 기본이 되는 일러스트가 그려졌기 때문에 박물관 전시가 가져야 하는 논리성은 갖췄다. 둘째, 레이블과 도슨트가 없었다. 대신 AR(증강현실) 마커를 활용한 미션 해결식 전용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자연스럽고 재미있게 패널 및 레이블 등 전시 정보를 제공하였다. <한 여름밤, 신들의 꿈>은 그동안 이야기와 사진을 중심으로 소개되었던 신화의 서사 방식에 실감 영상을 더한 최초 시도로, 우리 신(神) 소개서이자 ‘K판타지’의 입문서였다. 특히 영상에 익숙하면서도 우리 민속에 대해서는 관심이 적은 젊은 층에게 어필할 수 있는 전시로 많은 관심을 얻었다.
하지만 실감 영상 전시의 아쉬운 점도 존재한다. 바로 ‘디지털 소외계층을 어떻게 배려할 것인가’의 문제다. 화려한 영상과 다층적인 음향이 중요한 관람 요소인 실감 영상 전시에서 시각장애인과 청각장애인의 관람권은 어떻게 보장할 수 있을까? ‘약자 프렌들리’, 즉 ‘모두의 박물관’이라는 가치가 중요하게 여겨지는 지금도 많은 박물관은 실감 영상을 전시 기법으로 적극 활용하고 있다. 향후에는 발전하는 영상 기법에 발맞춰 저시력자와 시각장애인, 청각장애인 등 약자를 위한 ‘배려 기술’ 또한 함께 발전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