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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해방선언 100주년의 의미
방정환의 어린이 '해방' 정신
글.이주영 어린이문화연대 대표(어린이날101주년·어린이해방선언100주년기념사업협의회 대표) 사진.어린이문화연대 제공
1. 어린이를 재래의 윤리적 압박으로부터 해방하여 그들에게 대한 완전한 인격적 예우를 허하게 하라.
2. 어린이를 재래의 경제적 압박으로부터 해방하여 만 14세 이하의 그들에 대한 무상 또는 유상의 노동을 폐하게 하라.
3. 어린이 그들이 고요히 배우고 즐거이 놀기에 족할 각양의 가정 또는 사회적 시설을 행하게 하라.
<방정환과 어린이 해방 선언 이야기>(2021, 이주영 저), 16쪽

이 선언문은 100년 전인 1923년 5월 1일 어린이날1)발표된 글이다. 우리나라 어린이 운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방정환은 1922년 5월 1일 천도교 소년회 결성 1주년에 처음 어린이날을 제정하고 선언문을 선포했다. 방정환은 아동을 ‘이놈, 저놈’ 부르지 말고 ‘어린이’라고 높여 부르자고 주장했고, 어린이들에게 높임말을 쓰자며 실천했다.

선언문의 주요 내용은 어린이들이 윤리적, 경제적 압박으로부터 해방되어야 하며 이를 바탕으로 ‘고요히 공부하고 즐거이 놀기’에 충분한 가정과 사회를 만들자는 것 두 가지였다. 사실 인류 역사에서 어린이를 처음 발견한 시점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이는 동서양도 크게 다르지 않아 20세기 초에 그 개념이 정립되었다. 1924년 국제연맹에서는 ‘어린이 권리에 관한 선언’이라는 제네바 선언을 발표했다. 모두 5조로 구성된 이 선언의 주요 골자는 ‘어린이는 약하기 때문에 우선 보호받을 권리가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방정환 선생이 주축이 된 소년운동협회에서 발표한 선언문은, 제네바 선언보다도 훨씬 앞선 인식을 보여주었다. 선생은 단순히 어린이가 약자이며 보호받을 권리가 있다는 인식을 넘어, 어른과 평등한 사람으로서 ‘독립된 인격체로 대접받을 권리’가 있음을 말했다. 그러려면 어린이는 모든 불평등한 억압에서 벗어나야 하기에,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해방’이라는 단어가 등장하게 된다.

이는 비단 방정환 개인의 인식이 아니었다. 방정환의 어린이 운동에 영향을 받아 평생 어린이 운동을 하면서 수많은 동요와 동시를 써낸 윤석중은 앞선 선언을 ‘어린이 독립선언’이라고 말하기까지 했다. 무엇보다 중요하고도 분명한 사실은, 방정환의 어린이 해방선언이 ‘어린이 해방’의 관점에서 선언한 문건으로는 세계 최초라는 것이다.

1. 어린이를 내려다보지 마시고 치어다보아 주시오.
2. 어린이를 가까이하사 자주 이야기하여 주시오.
3. 어린이에게 경어를 쓰시되 늘 보드랍게 하여 주시오.
<방정환과 어린이 해방 선언 이야기> (2021, 이주영 저), 16쪽

또한, 어린이 해방선언과 함께 배포된 선전지에는 어른들에게 당부하는 글도 있는데, 모두 아홉 가지 조항으로 위의 내용은 그중 1항부터 3항까지다.

1항은 어린이를 어른보다 낮게 보지 말고, 오히려 어른보다 높게 보자는 것이다. 어린이는 어른보다 새로운 사람이자 새로운 세상을 만들 사람이고, 역사를 앞을 향해 보면 어른보다 수십 년 앞서가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2항은 어린이 생활 가까이에 다가가 자세히 살펴보며 자주 이야기를 해야 한다는 내용이며, 3항은 자주 이야기를 하되 높임말을 쓰자고 했다. 그것도 ‘보드랍게’ 말이다. ‘아 다르고, 어 다르다’는 우리네 속담처럼 아무리 높임말을 쓴다 해도 압박하듯이 거세게 말해서는 안 된다는 깊은 뜻이 읽힌다.

작년인 2022년은 어린이날 100주년이었다. 무려 1945년 해방 이후 처음으로, 천도교와 어린이 문화 예술 운동 단체들이 해방 전의 어린이날이었던 5월 1일에 어린이날 행사를 개최했다. 방정환 생가터인 세종문화회관 예인마당에 모여서 어린이 해방 선언문을 낭독하고, 거리 행진을 한 뒤 어린이가 행복한 나라를 어떻게 만들 것인지 고민하고 다짐했다.

올해는 ‘어린이 해방선언’이 100주년을 맞는 해다. 올해도 역시 5월 5일이 아닌, 5월 1일에 광화문에서 기념식을 연다. 지역 곳곳에서도 뜻깊은 날을 기념하는 행사가 점차 늘어나고 있다고 들었다. 5월이다. 이제부터라도 어린이날이 품었던 원래의 뜻을 따라 보았으면 좋겠다. 어른과 어린이가 함께 지난 1년을 돌이켜 반성해 보고, 모두가 행복한 나라를 만들기 위해 새로운 1년을 어떻게 맞이할 것인지를 살펴보고 다짐하는 날로 되살아나기를 바란다.

  • 1) 일제 탄압으로 1928년부터는 어린이날을 5월 1일이 아니 라 5월 첫 공휴일로 지정했는데, 그나마 1938년부터는 어 린이날이 금지되었다. 해방 후 1946년 첫 공휴일이 우연 히도 5월 5일이었고, 그날 이후로 5월 5일을 어린이날로 삼고 있다.
작성일. 2023. 04.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