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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루와’써 놓고 ‘마을 한다’라 읽는다
지역을 살리는 마을 관광
글.조문환(하동 놀루와협동조합 대표) 사진.조문환(하동 놀루와협동조합 대표)

지역을 살리는 농촌관광에 눈을 뜨다

2004년경 공직에 종사하던 나는 어려운 농촌의 현실을 접하고서, 불현듯 농촌관광에 미래가 있다고 확신하고 상경했다. 수원에 있는 ‘한국농촌관광대’ 제1기로 입학을 한 것이다. 졸업 후 나는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농촌의 현실을 객관적으로 알게 됐고, 농촌관광은 목적이 아니라 지역을 살리는 수단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관광이 아닌 시민의 삶의 질을 위한 슬로시티로

2009년 우연히 언론을 통해 슬로시티를 접하고, 슬로시티 국제본부의 국제실사를 거쳐 드디어 최종 인증서를 받아냈다. 그렇게 하동군은 슬로시티가 되었다. 당시 나는 하동군청의 관광담당 계장이었고 슬로시티를 통해 하동 관광을 한 단계 격장하고자 하는 야심을 품었다. 하지만 슬로시티 국제총회에 참석하고 난 뒤 꿈이 깨졌다. 본 행사 후 스웨덴의 슬로시티 팔셰핑( ) 시장과의 간담회에서 가장 먼저 손을 들고 물었다. “스웨덴은 복지가 좋은 나라인데, 왜 슬로시티를 시작했습니까?” 답변은 머리를 망치로 친 듯 충격이었다. “시민 삶의 질을 위해서입니다.”

이렇게 잘사는 나라에서 삶의 질을 위해 슬로시티를 한다고? 이해하지 못한 채 받아들여야만 했다.

‘하동다움 여행’ 전국에 각인시키다

2017년엔 7년 일찍 퇴직했다. 친구들과 협동조합을 꾸리고 주민여행사를 창업했다. 8월, 폐교 한 모퉁이에 사무실을 열었다. 당시만 해도 주민여행사나 공정여행사라는 이름이 매우 생소할 때였다. ‘협력적 비즈니스, 건강한 공동체’라는 비전과 ‘놀루와 방식’이라는 여덟 가지의 약속도 만들었다. 핵심은 하동에서만 할 수 있는 여행상품을 만들고, 마을과 지역사회와 함께하자는 내용이었다.

하동차를 기반으로, 차와 문화예술의 융합 프로그램인 ‘차마실’, 섬진강과 백사장과 달을 엮은 ‘섬진강 달마중’, 겨울철 평사리 들판을 뜨겁게 달구어 여행과 농업의 농한기를 극복하자는 취지에서 만들어진 ‘평사리들판 논두렁축구대회’와 같은 여행상품이 탄생했다. 모두 하동의 자연과 문화, 역사, 놀이와 자연적 특징을 살려낸 것들이었다. 상상외로 반향이 컸기에 ‘놀루와’를 전국에 각인시킬 수 있었다.

마을도 탁월한 여행지다

하지만 무엇보다 더 든든한 기둥은 ‘마을과 지역사회와 함께하자’는 외침을 현장에서 실천한 것이었다. ‘놀루와’는 마을과 끊임없는 소통과 협업을 진행했다. 자연스럽게 마을재생과 관련되는 일을 하게 됐고 주민들도 하나둘씩 믿음을 주기 시작했다. 그것이 지금은 마을미술관, 마을호텔, 창고재생과 같은 작은 열매가 되어 가는 과정에 있다.

덕분에 코로나19로 일반 대중들의 여행이 멈춘 상태에서도 마을로의 여행, 다원과 백사장으로의 여행은 쉬지 않았다. 아니 여행의 방향을 완전히 바꿔 놓았다. ‘마을도 여행지다’라는 새로운 여행 공식이 만들어졌다. 코로나19가 한창일 때 국내 굴지의 여행사들이 함께 로컬 여행상품을 만들어 내자고 방문했었는데 우리는 우리의 하동다움을 굳건히 지켜야 한다고 다짐했다. 운이 좋았다고 말할 수밖에 없겠지만, 결국 코로나19는 로컬여행이라는 장르를 탄생시켜 놓았다. 사람 냄새 나는 여행, 서툴 수 있지만 진정성이 묻어나는 여행, 주민이 직접 만들고 그들의 마당까지 내놓는 그 따스함이 여행자들의 발길이 이어지게 만들었다.

주민여행사, 굽은 소나무가 되어 마을을 지킨다

로컬여행은 여행도 살리고 마을도 살리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만들어 낸다. 작년에 ‘놀루와’의 슬로건을 바꿨다. “‘놀루와’라 써놓고 ‘마을한다’라 읽는다”다. 여기에는 깊은 속뜻이 있다. ‘놀루와’는 지역사회와 함께하겠다는 선언이자, 하동다운 여행상품을 고집하겠다는 약속이다.

가끔씩 ‘잘 키운 주민여행사 열 기업 부럽지 않다’는 말을 쓰곤 한다. 지역을 가장 잘 알고 지역을 아끼는 주민여행사 하나가, 굽은 소나무가 되어 지역을 지키는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작지만 그러나 깊은 우물이 되어 마르지 않는 샘물을 토해내는 옹달샘과 같은 주민여행사 하나. 그 하나가 자치단체마다 자리 잡아, 자손들이 다 떠난 고향 선산을 지키는 굽은 소나무가 되기를 소망한다.

작성일. 2023. 03.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