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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문화실험실, 시민의 도시를 꿈꾼다
더 많은 영역에서 시민 권력의 실현이 이루어져야
글.이한준 도시문화실험실 PM (사)생활자치커뮤니티 우리동네사람들 사무처장

‘도시문화실험실’은 올해로 3년째 진행되고 있는 김해문화도시의 대표적인 사업 중 하나이다. ‘실험실’이라는 이름처럼 사업 자체가 실험의 성격을 가지고 있어 매년 그 형태와 내용이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2020년 첫 번째 도시문화실험실은 ‘시민 기획 실험실’의 성격으로, 시민들이 해보고 싶었던 일을 마음껏 기획하고 실행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형태였다. 2021년에는 기존의 시민 기획 실험실 형태와 함께 ‘시민들이 발굴한 도시의 문제를 문화적으로 해결’하는 리빙 랩 형태의 실험실을 운영하였다. 시민들에게 자유로운 기획의 기회를 제공하는 다른 사업과의 차별성을 확보하면서, 도시의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을 통해 시민력을 제고하기 위함이다. 2022년 도시문화실험실은 리빙 랩 형태를 기본으로, 3가지 유형의 실험실로 적용 범위를 확대하였다.

주민자치형 실험실은 주민자치회를 대상으로, 주민참여예산 공모사업 제안서를 작성하는 과정에 리빙 랩 방식을 적용하는 실험실이다. 주민들의 절실한 필요를 바탕으로,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참여와 숙의의 과정을 통한 주민참여예산제도가 될 수 있도록 주민자치회, 주민참여예산제도와 도시문화실험실을 연계하는 시도이다. 올해 도시문화실험실에는 진례면과 불암동 주민자치회가 참여하였다. 시민 의제 발굴형 실험실은 시민의 절실한 필요를 바탕으로 도시 문제를 발굴하고, 문화적인 해결방안을 찾아내는 리빙 랩 실험실이다. 수차례의 워크숍을 통해 의제들을 발굴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시민연구원들을 모집하여 5개의 실험실을 운영하였다. 행정 협치형 실험실은 행정에서 의제를 요청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리빙 랩 실험실을 운영하는 형태이다. 도시문화실험실이 시민들끼리 무엇인가를 해보는 사업, 행사 차원이 아니라 시민과 행정이 함께 도시의 문제를 고민하고 해결하는 협치의 방식으로 확장되기를 바라는 시도이다. 자치경찰위원회의 제안을 받아 김해중부경찰서와 시민연구원이 여성 안심 귀갓길에 대한 실험실을 운영하였다.

시민이 중심이 되어 도시의 문화를 만들어가는 문화도시의 취지는 시민이 주체가 되어 도시의 문제를 해결하는 주민 참여적 사회 혁신 방법론인 리빙 랩과 일맥상통한다. 도시의 주체인 시민의 참여를 가장 중요하게 강조하는 점 또한 같다. 그리고 시민 참여가 제대로 이루어지기가 정말 어렵다는 점에서도...그동안 경남과 김해에서 다양한 시민 참여 정책을 경험하면서 느낀 점은 ‘시민 참여’에 대한 어떤 오해가 있다는 것이다.

시민 참여는 행정이 하는 일에 시민을 ‘끼워’ 주거나, 시민들로부터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얻기 위한 것이 아니다. 시민 참여는 ‘시민 권한’, ‘시민 권력’, ‘주민 자치’에 대한 것으로, 시민에게 결정권을 부여하는 것을 의미한다. 선거할 때만이 아니라 도시의 일상적인 문제의 해결에 서도 ‘시민이 주권자’라는 주민 자치의 개념이 전제되지 않으면 시민 참여는 흉내 내기에 불과하다. 많은 경우, 시민 참여는 시민이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 해결을 위한 다양한 아이디어를 제안하는 정도에 그치거나, 이미 결정된 일의 실행 과정에 참여하는 것으로 오해된다. 다양한 이해관계를 가진 시민들의 참여가 온전히 보장되지도 않고, 제대로 된 숙의 과정을 위한 시간과 지원도 없으며, 시민들이 내린 결론은 ‘단지 참고용’일 뿐인 경우가 허다하다. 결국 시민들은 ‘동원’되었다고 느끼게 되고, 실행 과정에 참여하는 것은 대부분 ‘용역’에 해당하는 것들이기에 용역 참여에 대한 대가로 수당 또는 활동비를 기대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시민들이 이런 경험을 몇 차례 하고 나면 ‘시민 참여’는 그냥 소소한 활동비를 받을 수 있는 ‘일거리’ 정도로 인식하게 된다.

시민력, 시민 역량 강화라는 이름으로 기획서 작성법, 회계 정산하는 법, 디자인 잘하는 법, 사진 잘 찍는 법 등 다양한 업무 역량을 교육하거나, 시민들에게 단체나 법인을 설립해서 고유번호증, 사업자등록증을 제출하게 하는 등 일거리 창출 사업이라고 불러야 할 것 같은 상황을 자주 보게 되는 것도 ‘시민 참여에 대한 오해’ 때문이다.

시민력은 시민의 힘, 시민 주권을 가능하게 하는 힘을 말한다. 주인 의식, 공동체 의식, 토론과 숙의를 위한 민주주의 역량,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할 수 있는 문화다양성 역량 등이 우리가 갖추어야 할 시민력인 것이다. 이는 단순히 몇 차시 교육 과정을 수료하면 갖춰지는 것이 개인적인 성취가 아니라 시민 참여의 경험을 통해, 작은 성공의 경험을 통해 조금씩 성장하게 되는 그 사회의 문화적 수준을 일컫는 것이다. 문화도시를 통해, 도시문화실험실을 통해 몇 개의 사업을 운영했고, 어떤 가시적인 성과물을 만들었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의 시민력이 얼마나 성장하고 있는지가 중요하다. 사업 예산, 프로그램의 수, 경제적 효과 같은 것에 현혹되어서는 안 된다. 중요한 것은 사람, 시민력, 우리 사회의 문화적 성취이지 않은가.

내년의 도시문화실험실은 또 달라질 것이다. 아니, 달라져야 한다. 더 많은 영역에서 시민의 권력이 작동할 수 있도록 그 적용의 범위를 확대해야 한다. ‘시민 참여 정책’이라고 규정된 몇몇 사업, 분야뿐만 아니라 더 많은 부서, 사업과 연계하여 도시 경영의 전반적인 영역에서 주민자치가 실현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적용 범위의 확대뿐만 아니라 참여의 수준을 높여야 한다. 시민 동원, 단순 의견 접수, 시민 용역의 형태를 벗어나서 실제적인 시민 권력의 실현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다양한 시민의 참여 기회를 보장하고, 충분한 숙의의 시간과 방법을 제공하고 ‘작은 성공의 경험’이 축적될 수 있도록 사업의 틀을 발전시켜야 할 것이다.

‘왕의 도시를 넘어 시민의 도시로.’ 문화도시를 통해 이뤄지기를 바라는 시민들의 꿈이다. 3년 전 김해가 문화도시를 준비하면서 함께 만들었던 이 꿈이 내년에는 조금 더 가까워지기를 바란다. 마침 김해시의 슬로건도 ‘꿈이 이루어지는 따뜻한 행복도시’로 바뀌었으니 말이다.

작성일. 2022. 11.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