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김해문화재단 웹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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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더 다양한 사회로 가고 있는가?
문화다양성 증진은 '내 안의 다양성'을 인식하는 것에서부터
글.이완 아시아인권문화연대 대표
인간은 본래 각기 다른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 그 다르다는 점이 나를 나로서 가치 있게 하고 존재하게
한다. 따라서 다르다는 것 자체로써 존중받아야 한다. 이 당연한 명제가 현실에서는 여러 암초를 만나고
있다. 지금 한국 사회는 다양한 정체성이 존중받는 사회로 나아가려 한다. 내가 가진 다양한 정체성을 표
현하는 것이 두렵거나 손해가 되지 않는 사회로 조금씩 향해가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이에 반대하는 이
들도 있다. 그리고 때로는 격한 갈등과 충돌이 벌어지기도 한다.

자신이 가진 소수성으로 인해 오늘 당장 고통을 받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이런 더딘 걸음에 마음이 급해
지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함께 올바른 방향으로 한 걸음씩 나아가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이주민, 노인, 여성, 아동, 성소수자, 장애인 등 각각의 소수성을 가진 우리 모두가 안전하고
평화로운 사회로 함께 나아가면 좋겠다. 내일은 오늘보다 더 다양한 사회를 기대해 본다.

2012년 문화부를 필두로 한 ‘문화다양성 가치확산 사업’이 시작한 지 10여 년이 지났다. 문화부뿐만 아니라, 민간영역을 포함하여 사회 전반에서 다양성을 확산하고자 하는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개개인의 노력을 넘어 제도화되고 공공의 영역까지 점차 확산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도 문화다양성을 증진하려는 노력은 개인과 사회를 넘어 기업과 정부를 가리지 않고 앞다투어 벌어지고 있다. 2021년에는 미국국무부에서 다양성과 포용성 부서가 만들었다. 미 국무부는조직을 신설하며 “다양성과 포용성이 우리를 더 강하고, 똑똑하고, 창조적으로 만들 것”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한국 사회는 10년 전보다 조금 더 다양성이 존중받는 사회가 되었는가? 많은 시도와 노력이 펼쳐지고 있다. 그러나 문화다양성을 왜곡하고 훼손하는 일이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것 또한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왜 아직도 이런 현상을 넘어 때로는 혐오와 차별이 더욱 넘쳐나는 사회로 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을 하게 되었을까? 이는 여러 가지 환경과 조건이 결합된 복잡한 현상이나, 한국사회가 오늘에 이르기까지 어떤 일을 겪어 왔는지를 뒤집어 보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한국 사회는 매우 짧은 시기 동안 여러 가지 일을 겪었다. 식민 통치, 해방, 전쟁, 체제경쟁, 독재, 압축적 산업화 그리고 민주화의 과정을 지나왔다. 특히나, 군부독재와 체제경쟁을 거쳐 오며, 한국 사회의 각 구성원은 국가와 사회 속에서 개별적인 존재가 아니라 거대한 하나가 되도록 요구받았다. 다른 가치와 표현 그리고 행동을 하는 것은 부적절한 것으로 취급되었다. 사회를 불안하게 한다거나, 미풍양속을 해친다거나 또는 구성원 간 결속을 방해한다는 이유로 범죄화 되기까지 했다. 우리가 속한 체제의 우월성을 드러내기 위해 또는 독재를 유지하기 위해, 각자가 가진 다양한 생각과 표현은 끊임없이 희생됐다.

이에 더해, 한국 사회는 압축적인 산업화의 과정을 거치며 대량 생산 체제의 효율을 강조하는 시대를 지나왔다. 똑같은 물건을 재빠르게 가장 많이 생산하는 것이 모든 것에 앞서는 최고의 가치였다. 똑같은 동작을 모두가 발맞추어 해내는 것이 모든 것에 앞섰다. 남과 다르다는 것은 비효율적이고 비생산적이라고 교육받았다. 이런 과정을 거치며, 개개인이 가진 다양성보다는 우리가 얼마나 서로 같은가를 가장 큰 장점으로 여기게 되었다.

한국 사회는 많은 이들의 희생과 노력으로 군부 독재를 무너뜨리고 민주화를 이루었다. 이제는 산업화를 지나 문화 강국으로 그리고 창의성과 다양성이 가장 중요하다는 4차산업혁명의 시대에 와 있다. 획일적이고 단일한 사회가 가장 우선시 되어왔던 지난 몇십 년간의 체제에 적응되어있던 한국인들에게, 다양성은 매우 낯설고 어색한 현상이다. 이런 점을 살펴보면 어쩌면 현재 한국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격렬한 논쟁은 일면 당연한 것이 아닐까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우리가 가진 다양한 정체성을 마음껏 뽐내며 모두가 행복한 사회를 만들어 갈 수 있을까? 다양성은 매우 당연한 것이지만, 그렇다고 가만히 시간을 보낸다고 성취되는 것 또한 아니다. 이미 오랜 시간 뿌리 깊이 왜곡 된 한국 사회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그러나 문화다양성 증진은 선택의 문제도 더는 미룰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조금 더 다양성이 존중되는 사회로 나아갈 수 있을까?

문화다양성을 증진하기 위해서는 우선 ‘내 안의 다양성’을 인식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개개인은 각기 다른 수많은 정체성의 집합체이다. 내가 가진 어떤 면은 때와 장소에 따라 다수에 속할 수도 있지만, 반대로 소수성을 가진 소수자가 되기도 한다. 따라서 우선 내 안의 다양성을 인식하고, 내가 가진 다양한 정체성이 내가 속한 사회 안에서 어떤 방식으로 표현되고 때로는 억압되고 있는지를 살펴보았으면 한다. 타인의 변화를 추구하고 유도하기 이전에 내 안의 다양성을 인식하는 나로부터 출발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또한, 다양성을 왜곡하고 억압하는 환경을 둘러보고 이를 고쳐나가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우리를 둘러싼 모든 것들을 다양성의 눈을 가지고 조금 다른 각도로 살펴보는 시도가 있었으면 한다. 너무나 익숙해서 문제 인식을 가질 수 없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면 좋겠다. 관행적으로 해 와서 문제의식이 없었던 일들을 돌아보았으면 한다. 꼭 그렇게 해야 할 필요가 있는지를 꼼꼼히 따져 보아야 한다. 물론 때로는 좀 더 커다란 제도와 정책이 다양성을 훼손하기도 한다. 따라서 당장에 해결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다. 그러나 문제를 당장 교정하지 못하더라도 문제 인식을 가지고 있는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는 큰 차이가 있다. 문제를 인식하고 함께 고쳐 나가기 위해 의지와 목소리를 모아야 한다.

마지막으로, 오랜 시간 쌓여온 효율과 발전 우선주의와 단일주의 등을 넘어서기 위해 더 적극적이고 활발한 노력이 지속적으로 필요하겠다. 다양성은 우리가 가진 본질이지만, 가만히 두고 시간이 흐른다고 해서 증진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왜냐면 이미 우리를 둘러싼 많은 것들 또한 잘못된 방향으로도 단단히 쌓여 사회를 구성하고 있다. 이미 너무 익숙해서 변화에 대한 저항이 생긴다. 지난 10여 년간의 노력으로 얼마만큼 변화했는지 알 수 없다. 그러나 오랜 시간 단단해진 벽을 일순간에 무너뜨리기는 어려운 것이 당연하다. 다양성이 억압되고 왜곡되었던 시간만큼이나, 이를 회복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리라 생각한다. 따라서 지치지 않고 함께 가는 것이 중요하겠다.

작성일. 2022. 10.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