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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문화예술 접근성: 규범적 접근성에서, 고민하는 배리어프리로
공공과 창작자들, 장애인 당사자가 함께 머리를 맞대야
글.문영민 서울대학교 사회복지연구소 연구원, 이음 온라인 기획위원

장애인이 문화예술을 향유할 권리에 대한 담론은, 최근 30여 년간 제정·시행된 여러 법 규범을 근거로 발전해 왔다. ‘장애인의 문화예술 향유 권리’가 최초로 등장한 법률은 1989년 제정된 ‘장애인복지법’이다. 장애인복지법 제15조에서는 문화 환경의 정비 등을 국가의 책무로 규정하였다. 하지만 1988년 서울 패럴림픽 이후 장애인 여가생활의 한 부분으로 문화 개념을 강조한 것이며, 문화예술에 대한 권리가 ‘접근성’의 개념으로 법 조항에 등장한 것은 아니었다. ‘장애인의 문화예술 접근성’이 법률상에 등장한 것은 ‘장애인, 노인, 임산부 등의 편의증진보장에 관한 법률(이하 편의증진법)’ 제4조에서 ‘접근권’을 ‘장애인 등이 시설과 설비, 정보에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는 권리’로 명시하면서부터이다. 장애인복지법이 문화 활동에 장애인이 참여하도록 국가가 노력해야 한다는 선언적 규정만을 명시했다면, 편의증진법에서는 그것을 실제로 가능하게 하는 의무를 문화예술 시설에 부과하기 시작했다.

이후 2008년에 시행된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에서는 국가와 지방자치단체, 그리고 문화예술사업자가 장애인이 문화예술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대책을 마련하고 정당한 편의를 제공할 것을 명시하였다. 이제 장애인은 문화예술 활동 참여에 있어 정당한 편의를 보장받지 못할 경우 국가, 지방자치단체, 문화예술 사업자에게 접근성을 요구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게 되었다. 장애인의 문화예술 접근성에 대한 권리가 시설물에 대한 접근에서 나아가, 접근성을 청구할 수 있는 권리로 발전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후 2010년대에 제정된 ‘장애아동복지지원법’, ‘발달장애인 권리보장 및 지원에 관한 법률’, ‘한국수화언어법’ 등을 통하여 특정 연령, 특정한 장애를 가진 장애인의 접근성에 대한 규범들이 확립되며 장애인의 문화예술 접근성은 좀 더 구체적인 모양새를 띄기 시작한다.

그동안 복지, 인권, 편의 증진 등의 권리를 보장하는 개별 법률이 장애인의 문화예술 접근성을 보장해왔다면, 2020년 12월부터 ‘장애예술인 문화예술 활동 지원에 관한 법률(이하 장애예술인지원법)’이 시행되며 장애인의 창작활동은 좀 더 포괄적인 영향을 받기 시작한다. 2021년 9월을 기준으로 하여 서울특별시, 경기도, 제주특별자치도 등 56개의 광역 및 지방자치단체가 장애인의 문화예술 활동을 지원하는 조례를 제정하기 시작했다. 즉, 장애인 문화예술 접근성에 대한 보장은 장애인이 여가를 향유할 수 있는 ‘접근성’에서 시작되어, 현재 창작에 대한 ‘접근성보장’으로 그 지원의 영역이 확대된 것이다. 또한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장애 예술인 지원의 책무를 장애예술인지원법이라는 좀 더 포괄적인 규범으로 규제하기에 이르렀다.

장애인 문화예술 접근성이 규범적으로 장애인의 문화예술 향유와 창작의 권리를 설명한다면, 창작 현장에서 좀 더 익숙한 단어는 ‘배리어프리(barrier-free)’라는 용어이다. 이는 2010년대 초반 장애인이 향유할 수 있는 공연에 대한 고민을 시작한 몇몇 단체들의 시도로부터 시작되었다. 2012년부터 ‘숨겨진 감각축제’라는 부제로 시작된 ‘페스티벌 나다’, 장애인 문화예술 접근성 연구와 창작을 목표로 2013년 설립된 장애문화예술연구소 ‘짓’의 시도들이 대표적이다. 창작 현장에서 시작된 배리어프리에 대한 고민은 법이 규정하는 접근성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갔다는 점에서 의의를 가진다. 특히 이들은 시각장애인 관객을 위한 음성해설과 터치투어(touch tour), 청각장애인 관객을 위한 수어통역과 문자통역, 나아가서 발달장애를 가진 관객을 위한 릴렉스드 퍼포먼스(relaxed performance) 등을 통해 공연의 소리, 대사, 장면 등 기본적인 정보와 상황에 대한 접근을 보장할 뿐 아니라 장애인이 장애가 없는 사람과 동등한 수준의 미적 체험을 가능하게 하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 공연의 내용을 단순히 수어나 화면해설로 번역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동등한 수준의 미적 체험으로 경험하게 하고자 한 것이다. 이를 법이 규정하는 물리적·정보적 접근성과 구별되는 의미로 ‘미학적 접근성(aesthetic accessibility)’으로 일컫는다.

미학적 접근성을 목표로 하는 몇몇 장애 예술 단체에서 시작된 배리어프리에 대한 고민은 이후 동시대 극장과 공연 단체로 확산하였다. 특히 공공 극장들이 배리어프리 공연을 만드는 시도를 적극적으로 시작했다. 2020년 문을 닫은 남산예술센터에서 <7번 국도>를 시작으로 <명왕성에서>, <묵적지수>,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 등 4개 작품을 배리어프리로 제작했고, 2021년 대학로·아르코 예술극장에서는 <새들의 무덤> 등 6개의 작품을 배리어프리로 선보였다. 과거에 비해서 많은 작품이 배리어프리로 제작되고 있기는 하나 여전히 일부의 작품들만이 배리어프리 버전으로 제작된다. 배리어프리 장치를 위해서 별도의 예산과 긴 제작 기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현재 대부분의 작품은 공연이 제작된 이후 별도로 배리어프리 버전으로 제작되지만, 단순히 번역에 그치지 않고 미학적 접근성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제작 초반부터 배리어프리를 염두에 두고 제작될 필요가 있다. 이 경우 더욱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드는 것은 물론이다. 공공의 지원이나 개입이 필요한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과거 접근성에 대한 규범은 편의시설의 구조 등에 대한 세부적인 기준을 마련하는 데 치중되었다. 그러나 배리어프리한 창작활동에 대한 지원은 법 규범을 그대로 따르는 것 그 이상의 노력이 필요하다. 법률이 배리어프리 공연을 상연하는 관람석의 숫자나 규격을 제시할 수 있지만, 수어 통역사와 자막기의 위치, 시각장애인 화면해설의 속도나 대본의 구성 등에 대한 정답을 제시할 수는 없다. 이는 창작자의 예술적 표현과 기예의 영역에 해당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장애 예술가가 접근 가능한 예술 환경을 지원하고자 한다면 규범의 준수를 넘어서, 배리어프리한 예술 환경을 만들기 위해 상상력을 가지고 고민을 시작해야 한다. ‘접근 가능한 예술 환경이란 무엇인가’, ‘그러한 환경을 어떻게 조성하고 유지할 것인가?’ 등 공공과 창작자들, 그리고 장애인 당사자들이 함께 머리를 맞대어 장벽을 없애고 배리어프리를 가능하게 하는 새로운 방법론을 찾기 위한 시도를 지속해야 할 필요가 있다.

작성일. 2022. 09.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