삭막한 나루터에 온기를 심다
김해시 대동면은 김해 가장 동쪽 끝에 위치한 지역이다. 예로부터 낙동강 줄기를 따라 뱃길로 부산, 양산과 교류하였으며 그 먼 옛날에는 바닷길로 이어진 국제 무역항의 역할을 톡톡히 해 왔던 곳이기도 하다. 대동면에 오랫동안 뿌리내리고 살던 이들은 대동의 전성기를 ‘나루터’에서 찾는다. 강에서 건져 올린 싱싱한 재첩을 사기 위해 장사치들이 몰려오던 곳, 인근 도시의 회사원들이 주말마다 나들이를 오던 곳, 그리고 낙동강 둑을 따라 부산 대저까지 처녀와 총각의 설레는 만남이 이어지던 풍경…. 하지만 육상교통이 발달하면서 나루터는 빛을 잃기 시작했다. 낙동강 하구언 공사로 재첩은 씨가 말랐다. 찾아오는 사람들의 발길이 하나둘 끊어지면서 대동면은 지금 김해시에서 가장 노령화지수가 높은 지역이 되었다. 과거의 영광은 지역의 어르신들 이야기 속에만 등장할 뿐이었다.
지역 사람들의 추억이 담겨있는 나루터의 영광을 재현하기 위해 여러 방법을 모색하고 있던 2021년, (재)김해문화재단으로부터 반가운 연락을 받았다. 문체부의 '2021 지역형 생활문화 활성화 시범사업'에 (재)김해문화재단이 기획한 '김해 다-가치 프로젝트'가 선정되면서, 대동면 문화기획단 ‘대동사람들’이 생활문화 프로그램을 기획할 기회가 생겼다. 우리가 가장 먼저 한 사업은 생활문화동호회 발굴이었다. 우리가 만나는 이들은 대다수가 평생 농사만 짓고 살아오신 노인이기에, 이분들 중에서 생활문화동호회 활동을 하는 분들은 극소수였다. 그분들과 축제를 만들어보자고 의견을 모으고, 생활문화동호회를 만들고자 하는 분들의 단체 설립을 도왔다. 이런 일련의 활동을 통해 우리 단체가 진행하는 문화 예술 교육 프로그램도 활력이 생겼다. 막연히 배우고 마는 것이 아니라, 배운 것을 맘껏 뽐낼 수 있는 무대가 생겼기 때문에 어느 한순간도 시간을 허투루 보낼 수가 없었다.
코로나19로 모든 행사가 멈춘 시기, 대동나루터는 ‘대동 문화나 루터 축제(이하 축제)’를 통해 홀로 빛났다. 열심히 배우고 익힌 생활문화동호인들이 무대에 올랐고, 낙동강 뱃길을 따라 대동면과 교류했던 양산, 부산의 동호회들도 축하 공연을 와주었다. 방역 지침으로 입장객을 100명으로 제한했지만, 공연장으로 들어오지 못한 분들은 낙동강 둑에 돗자리를 펴고 앉아 이웃들의 무대를 감상했다. 초대 가수는커녕 전문 진행자조차 없는 저 예산 축제였으나, 감동적인 무대가 펼쳐졌다. 특히나 빅밴드 산해정과 신정마을 불꽃교실의 무대는 비록 서툴지만, 그 자체로 깊은 울림이 있었다. 낙동강 언저리에서 재첩을 캐고 하천 부지에서 농사지어 자식들을 키워냈던 우리 아버지들이 늦게나마 자신의 꿈을 펼쳐 보였다.
나루터에 희망이 돋아나다
지역민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축제라는 점에서 멋진 결과를 거두었음에도 올해 축제 개최는 여전히 안개 속이었다. 김해시가 문화도시가 되면서 김해문화재단의 국비 사업 도전 기회가 적어 작년과 같은 지원을 기대할 수 없었다. 고민이 깊었다. 축제 무대에 서기 위해 연습을 하고 계신 분들의 이야기도 들었기에 2회 개최에 대한 부담은 더 컸다. 그러다가 ‘대동사람들’이 문체부의 ‘2022 생활문화동호회활동 지원 사업’에 선정되어 축제를 다시 이어갈 수 있게 되었다. 우리는 지속 가능한 축제의 가치를 환대, 교류, 자발성으로 정했다. 환대와 적극적인 교류로 대동면을 찾는 이들이 많아져서 지역이 활성화되고, 주민들이 축제의 주인공이 되는 과정에서 공동체성을 되살리는 것이 축제를 통해 우리가 얻고자 하는 것이다.
올해는 매월 1회 유람선을 타고 오는 관광객을 환영하는 뜻에서 버스킹 공연을 진행했다. 큰 기대 없이 배에서 내린 손님들은 자신들을 반기는 공연에 함께 와서 춤추고 즐기며, 생활문화동호인들을 부러워했다. 무엇보다 타지역 생활문화동호회와 함께 무대에 서는 일이 잦아지면서 우리 지역 어르신들이 변하기 시작했다. 자신에게 박수를 보내는 이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무대를 만들겠다며 일주일에 두 번씩 모여 연습하고 있다. 지금 대동면은 밤마다 마을회관과 연습실이 들썩인다.
지속가능성을 위해
축제는 지역민들이 기획하고 공연무대를 채우는 ‘지역형 생활문화축제’이다. 하지만 내년에도 축제를 진행할 수 있는지 묻는다면 쉽게 그렇다 답하기 어렵다. 그 불확실성의 끝에는 예산 마련이라는 숙제가 있다. 공모사업에 도전하여 예산을 받는 것은 결과를 장담할 수 없다. 예산을 보장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매년 축제를 준비하기에는 여러모로 어려움이 뒤따른다. 모처럼 피어난 주민 주도 지역형 생활문화축제의 불씨가 지속해서 환하게 타오를 수 있도록 김해시와 김해문화재단의 뒷받침이 필요한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