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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 - 시티 오브 가야금’을 기대하며
내게 김해는 ‘가야금의 도시’다. 다른 이들도 김해를 그렇게 불러주었으면 좋겠다.
글.송혜진 숙명여대 문화예술대학원 교수
내게 김해는 ‘가야금의 도시’다.
다른 이들도 김해를 그렇게 불러주었으면 좋겠다.

김해가 다른 나라에 ‘시티 오브 가야금(City of Gayageum)’으로 알려지고 세계 사람들이 꼽은 음악 도시 반열에 김해와 가야금이 함께 거론되기를 희망한다. 그런 일이 가능하겠냐고? 그야 하기 나름 아닐까? 이런 생각을 품고 있던 중에 임윤찬 피아니스트의 밴 클라이번 콩쿠르(Van Cliburn International Piano Competition) 우승 소식을 들었다. 이 대회는 미국 텍사스의 포트워스(Fort Worth)에서 열렸다. 임윤찬이 아니었더라면 별 관심 없었을 도시 이름이 행복하고 굉장한 음악 이미지로 각인 되었다. 그리고 이번 대회에서 전체 금메달과 현대음악상, 청중상을 수상한 우승자 임윤찬의 인터뷰에서 유난히 새겨들은 말도 있었다. ‘대회 기간 중 이 도시에서 경험한 하이라이트가 무엇이었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새벽 네 시까지 피아노 연습을 해도 잠 설치는 것을 꺼리지 않고 오히려 음악에 관심을 보여준 민박집 가족들의 배려’였다고 대답했다. 대회 역사 60년 사이에 자연스럽게 뿌리내렸을 도시의 파워가 이렇게 발현되는구나 싶어 부러웠다

우리도 그들처럼.
임윤찬 연주 동영상을 멈추고 연달아 떠오르는 ‘김해와 가야금’에 대한 생각들을 정리해봤다. 김해는 전국 유일, 자연스럽게도 세계 유일의 시립 가야금 연주단이 있는 도시다. 1998년에 창단 된 김해시립가야금연주단은 45회의 정기 연주회 기록과 3종의 음반 발매 실적을 보유하면서 도시의 역사를 음악으로 대표하는 고유한 정체성을 쌓아가는 중이다.

한편 2019년부터는 다양한 공연과 관련 프로그램으로 구성된 <가야금축제>를 개최하고 있으며 1991년에 시작된 <김해전국 가야금 경연대회>는 올해 제32회째 대회를 치렀다. 어느 모로보나 ‘시티 오브 가야금’이라 명명할만한 근거는 이미 충분하다. 그럼에도 ‘기왕이면 조금 더’라는 기대를 품어 몇 가지 희망사항을 챙겨본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음악 축제 도시, 유수 콩쿠르가 열리는 곳 부럽지 않게 우리도 그들처럼 해볼 수도 있지 않을까? 가야금이라는 주제가 올드(Old)한 것이 약점일 수도 있지만, 역사와 전통은 강점이다. 서양 클래식이나 대중음악에 비해 보편성도 떨어지고 시장도 제한적이라는 한계가 있지만 이는 오히려 고유성과 특이성으로 가다듬어 낼 수 있을 것이다.

김해 스타일 가야금 트렌드 - 어떻게 만들어갈까?
더구나 최근 들어 ‘K-국악’이라는 말이 생겨날 만큼 전통 음악의 힙한 트렌드를 즐기는 이들도 늘어나는 추세니 이와 연동하여 새로운 출구를 찾아볼 때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요즘 주목받는 국악을 K-국악으로 호명하며 환호하는 현상이 허상이 아닌 실상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해서는 전제 조건들이 있다. 어쩌다 한번 터진 일이 아니라 지속성을 가짐과 동시에 예술적 완성도를 높여감으로써 시대의 음악으로 정착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미디어 환경과 미래의 방향성에서 낙오되지 않고 고유한 콘텐츠를 안정적으로, 계속해서 축적할 수 있으려면 예술 콘텐츠와 행정 및 재정 지원, 교육 프로그램, 사회적 공감대 형성 등이 고려된 시스템이 작동되어야 한다. 이런 것들이 부재한 상황에서 막연히 누군가에 의해 K-국악이 꽃피어나기를 기다릴 수는 없는 일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김해와 가야금 전략을 모색한다면 우선 우리 곁의 국악 현실을 냉정하게 되돌아보며 목적과 방향성을 최대한 현실적으로, 구체적으로 정하시라 말하고 싶다. 먼저 ‘김해에는 ○○○한 가야금 축제가 있다’는 빈칸 채우기를 생각해본다. 경연 가야금 최고수들의 경연장, 가장 새롭고 획기적인 창작품 발표장, 시민들에게 가장 친밀도 높은 콘텐츠 플랫폼, 지금까지는 없었던 가야금 싱어송 축제, 왕릉 앞 가야금 버스킹 스타 발굴 프로젝트, 해외 뮤지션들이 가야금에 도전할 기회를 제공하는 인터내셔널 프로그램 등등…. 가야금 축제에 대한 생각을 활짝 열어 놓는다면 ‘시티 오브 가야금 - 김해’의 파워를 키워갈 수 있는 실현 가능한 지점을 발견할 수 있을 것 같다. 누가 어떻게 지속 가능한 모델로 프로듀싱해낼 것인가가 관건이겠지만 말이다.

한편 ‘축제를 어떻게 할까?’하는 문제보다 더 비중 있게 고려할 것이 있다. 김해 시민이 다양한 가야금 음악 활동에 충분히 공감하고 가야금과 내가 아는 사이, 친한 사이임을 체감할 수 있는 계기가 더 많아져야겠다는 것이다.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가야금을 배우고, 가야금 연주를 즐기며, 서서히 수준 높은 향유자가 될 수 있는 작은 프로그램들이 어딜 가도 눈에 띄고 발에 걸릴 수 있도록 여기저기 흩뿌려지면 좋겠다. 이렇게 가야금과 친해진 시민들은 자연스럽게 가야금 공연과 축제의 관객이 되어 때로는 응원단이자 후원자로, 때로는 평가단이자 비평가 역할을 맡게 될 수 있기를. 그래서 <김해가야금경연대회> 결선 무대가 세계 유수의 음악 콩쿠르처럼 현장과 유튜브로 공개된다면. 이 자리에 참여한 김해의 가야금 시민들이 함께 ‘청중상’을 선정할 수 있다면. 그리고 김해에서 받은 ‘청중상’이 동시대 최고의 가야금 연주자를 인증하는 권위를 갖추게 된다면 정말 멋진 일 아닐까? 이런 날이 ‘시티 오브 가야금 - 김해’의 가까운 미래에 펼쳐질 가야금 축제로 자리매김하게 된다면 정말 좋겠다.

작성일. 2022. 06.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