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의 기후 위기 대응은 크게 세 가지 로 구분할 수 있다. 첫 번째는 기후 위기를 주제로 한 활동이다.
기후 위기에 대한 작품으로 시민들의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방식이다.
예술가들은 항상 인간 본질과 세계의 위기를 성찰해온 존재라는 측면에서 이는 가장 보편적인 방법이다.
설치 미술가 최병수의 <펭귄이 녹고 있다> 퍼포먼스는 즉석에서 얼음으로 펭귄을 조각해 펭귄이 녹아내리는 과정을 보여준다.
덴마크작가 올라퍼 엘리아슨은 그린란드의 빙하를 떼어다 공공장소에 설치하는 작품 <얼음시계>(2004)를 선보였다.
최근 작품들의 메시지는 더욱 직접적이고 관객에게 인식적인 충격을 안기는 경향을 보인다.
국립 극단은 <기후비상사태: 리허설>(2022)을 무대에 올렸고, 서울시립미술관은 <기후미술관: 우리 집의 생애>(2021) 전시를 개최했다.
음악과 문학, 영화와 무용을 비롯해 기후 위기를 주제로 삼은 작품 리스트를 나열하자면 지면이 부족하다. 예술가들의 이런 활동은 다양한 캠페인과 연결된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를 비롯한 유명 배우들은 대중적인 인지도와 영향력을 배경으로 전업 환경 운동가 못지않은 왕성한 활동을 보여준다.
문화예술이 기후 위기에 대응하는 두 번째 방식은 생산 방식의 변화다.
지금껏 유지해 온 탄소를 대량으로 발생시키는 활동을 바꾸는 것이다. 2019년 콜드플레이는 “공연이 지속가능할 뿐 아니라 환경적으로 유익한 방법을 찾기 위해 앞으로 2~3년 정도 공백 기간을 가질 예정”이라며 새 앨범 홍보를 위한 투어를 잠정 중단한다고 발표해 신선한 충격을 전했다. 이후 2021년에 는 관객석의 움직임을 동력으로 전력을 생산하는 방식을 포함한 친환경 투어 계획을 밝혔다. 국내에서도 이런 움직임에 동참하는 경향이 나타난다. 작업에 들어가는 재료나 무대 세트를 재활용하는 예술가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아예 비치코밍이나 플로깅을 통해 수집한 쓰레기를 작품의 재료로 삼는 일도 이제는 낯설지 않은 제작 방식이 되었다. 행위를 하는 반대편에서는 하지 않는 것을 통해 기후 위기를 성찰하는 기회를 만든다. 문화예술계에서도 축제와 행사는 물론, 기관별로 제작하는 굿즈가 상당하다. 그 중 상당수는 플라스틱이나 재활용이 되기 어려운 소재로 만들어지고 쓰임새에 따라 쉽게 버려져 환경에 악영향을 끼친다. 인쇄물 역시 마찬가지. 2020년 변방연극제에서는 인쇄물을 생산하지 않고, 굿즈를 스태프들이 직접 재배한 감자로 지급했다. 2021년 춘천문화재단은 문화도시 사업을 홍보하면서 지역에서 생산된 농산물로 굿즈를 제공했다. 트래쉬버스터즈 같은 팀들은 축제에서 사용되는 일회용품을 줄이기 위한 솔루션을 제공한다. 일부 축제에서는 ‘지속가능성 감독’을 통해 탄소 발생을 줄이는 축제가 어떻게 가능한지 탐구한다.1)
대중 예술 영역에서 벌어지는 일도 흥미롭다.
K-POP 팬들이 만든 ‘K-Pop 4 planet’이라는 웹사이트는 가수들의 지속가능한 활동 방식을 엔터테인먼트사와 산업계에 요구하고 자료를 제시한 다.2)
예술가들이 아니라 예술을 향유하는 이들이 생산자에 대해 사회적 책임을 요구하는 사례는 앞으로 더 많아질 것이다.
세 번째는 문화 정책 차원의 대응이다.
개별 예술가들의 실천을 넘어 정책적으로 이를 체계화하고 지향을 두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더군다나 한국처럼 예술의 공공 의존이 큰 사회에서는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기후 위기에 대한 정책적인 대응에는 영국이 가장 선도적인 모습을 보인다. 영국 예술위원회는 2012년부터 800여 개의 협력기관과 함께 환경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예술 활동의 환경적 관점을 제공하고 실천 활동을 전개하는 일이다.3) 영국 예술위원회의 경영 목표를 현실화하는 과정에서 민간 조직 ‘줄리의 자전거’(Julie’s Bicycle)의 역할이 눈에 띈다. 이 단체는 옥스퍼드 대학 환경 변화 연구소와 100여 개 음악 회사의 협업을 바탕으로 영국 음악 업계의 탄소 발자국을 측정했다. 이를 시작으로 문화예술 단체가 탄소 배출량을 측정할 수 있는 ‘크리에이티브 그린툴’이 개발됐고, 실제 연주 단체가 탄소 저감을 위해 적용할 수 있는 ‘그린 오케스트라 가이드’가 만들어졌다.4) 남성 백조라는 파격으로 유명한 <백조의 호수>의 안무가 매튜 본도 ‘줄리의 자전거’와 협업하여 그린 투어링을 진행했다.
한국에서도 기후 위기와 관련한 정책적 시도가 시작되고 있다. 아르코 정책혁신소위원회는 올해 4월 열린 ‘예술의 현재성과 정책 과제들’이라는 포럼을 통해 기후 위기 시대의 예술 정책을 제안했다. 정책혁신소위위원회 기후 위기 워킹 그룹의 이름으로 발표된 자료에서는 정책 과제를 ‘기후 위기 관점의 <문화 정책 중장기 비전·로드맵> 수립’, ‘예술인 사회적 안전망 확대’, ‘예술창작 활동과 단체 운영의 녹색화 지원’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기후 위기 문화적 적응과 이니셔티브 형성’ 등 네 가지로 꼽았다. 이 중에서 예술 현장과 가장 직접적인 연결을 가지는 것은 단연 세 번째 과제다. 구체적으로는 예술 단체가 현장에서 탄소 발자국을 측정할 수 있는 지표와 가이드라인을 제공하고 현장 적용을 위한 컨설팅, 워크숍 지원이 반드시 필요하다. 현재 국내에서는 단체들이 탄소 저감을 위해 무언가를 하려고 해도, 측정도 어렵고 구체적인 활동의 방향도 잡기가 곤란하기 때문이다.
세계를 바꾸는 것은 어렵고 고통스러울뿐더러 시간까지 필요한일이다. 기후 변화가 완강하게 산업의 영역이다 보니 예술가들에 따라서는 기후 우울증을 앓는 경우도 생긴다. 2021년 관련 좌담에서 만난 한 기획자는 기후 위기와 관련한 전문가들의 강의를 들었던 젊은 예술가들이 본인의 창작 활동에 대한 좌절감과 회의를 느끼는 경우가 있었다는 이야기를 전해주었다.5) 지금껏 자신들은 세계를 좀 더 나은 방향으로 만들기 위한 작업을 하고있다고 생각했는데, 그 행위들이 적건 크건 지구를 망쳐왔다는 생각, 다른 한 편으로는 거대한 기후 위기 앞에서 실제로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다는 생각에 깊은 우울감에 빠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삶이 지속되는 한 우리는 우리의 삶과 존재를 포기할 수 없다. 행동으로 무기력을 극복해야 한다. “이성으로 비관해도 의지로 낙관하라”는 그람시의 옥중 격언은 우리 시대, 기후 위기에 가장 걸맞은 예언이었을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