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김해문화재단 웹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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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뮤니티 안에 무엇을 담을까?
커뮤니티 문화진흥을 위한 제언
글.김현수 모퉁이극장 대표

지금은 커뮤니티의 시대다. 과거의 어느 시대보다 커뮤니티가 넘쳐난다. 사적 취향을 공유하는 자발적 모임이자 사귐의 장을 커뮤니티라고 한다면, 휴대폰 속 카톡도 일상에 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커뮤니티이다. 최근 커뮤니티 기반 비즈니스 플랫폼들은 코로나19 시국에서도 생존하여 온라인 사업의 확장성을 확인시켜준다. 유료 독서 모임 ‘트레바리’는 최근 다양한 취미와 관심사를 공유하는 종합 커뮤니티 서비스를 제공하겠다고 선언했으며, 패션 커뮤니티로 시작한 ‘무신사’는 유니콘 기업이 되었다. 또 개인 공간으로 초대받아 취향을 나누는 커뮤니티 ‘남의집’은 당근마켓을 통해 10억 원을 유치했고, 영화 토론 모임에서 출발한 ‘넷플연가’는 흥미로운 커뮤니티 실험을 이어가고 있다

한편 부산국제영화제는 2018년에 커뮤니티 기반 축제 플랫폼인 ‘커뮤니티 비프’를 선보인 후 작년에는 부산 14곳의 구, 군의 커뮤니티 활성화를 지향한 ‘동네방네 비프’를 시작했다. 이런 흐름의 의미는 단단한 형식을 가진 문화예술 축제가 크게 변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전문가의 기획 프로그램이 중요했던 페스티벌이 시민들의 참여 기획을 포용하는 시대로 넘어가고 있다.

문화예술을 향유하는 방식의 변화는 시민 의식의 성장과 밀접하다. 이에 발 맞춰 문화기본법 등이 제정되고, 그 결과 문화예술 사업의 주체는 거점 지역의 커뮤니티에 더 관심을 갖게 되었다. 지역문화진흥원의 사업들, 각 지역 문화재단의 사업들뿐만 아니라 문화도시의 사업에서도 커뮤니티 매개 사업은 중요하다. 영화진흥위원회 사업도 마찬가지다. 영진위는 2020년 <커뮤니티 기반 영화관람문화 활성화 연구> 를 발간하며 영화 문화에서 커뮤니티 시네마의 중요성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커뮤니티를 지속하는 힘은 어디에서 나올까? 커뮤니티 매개 사업을 10여년간 지속해온 필자의 경험으로 볼 때, 커뮤니티에 대한 구성원의 ‘열정’이 원동력이 된다. 업무 외 시간을 커뮤니티에 쏟아 부으려면 구성원의 애정이 필요하다. 커뮤니티를 꾸준히 관리하고 운영하는 전 과정에 깃든 구성원들의 자발성은 애정 없이 불가능하다. 커뮤니티를 이루는 순도 높은 자발성은 곧 독립성이라고 할 수 있다.

커뮤니티와의 첫 만남에서 구성원들은 환대를 경험할 수 있어야 한다. 환대는 지역에서 자생하며 지속가능한 대안 문화의 흐름을 만들어 내는 토대가 된다. 환대의 마중물은 바로 ‘우리’다. 우리가 커뮤니티를 이끄는 얼굴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김해문화재단과 김해문화도시의 일원들이 곧 커뮤니티의 얼굴들이다. 커뮤니티의 얼굴들이 자연스런 미소를 지으려면 사람을 만나고 연결하는 일이 즐거워야 한다. 커뮤니티 인공 배양은 한계가 있다.

커뮤니티 영역에 대한 연구와 활동에 소요되는 시간은 그림자 노동에 불과했다. 이제는 이 영역에 대한 입체적인 공식화가 필요하다. 프로그램 기획자만으로는 온전한 문화예술 체험은 불가능하다. 커뮤니티 매니저는 일차적으로 구성원들과 기획자-프로그램- 참여자를 연결하며, 장기적으로는 축제와 축제에 참여하는 시민들을 연결하는 역할을 한다. 요약하면 커뮤니티 매니저의 경험은 우리가 하려는 무언가를 지속하게 하는 문화자양분이자 생동하는 문화 인력을 양성하는 인큐베이터 같은 역할을 한다. 우리들 안에서 이루어지는 교감에 주목하고 재배치하며 나누는 전문적인 일이다.

각 문화 기관들은 커뮤니티 전담 부서를 만들고 그 속에서 정책팀, 연구진, 스태프 및 전문 문화퍼실리테이터를 양성해야 한다. 그래서 이들이 새롭게 생성되는 커뮤니티의 형태와 특징을 이해한 후 거점 지역의 활동에 맞는 좌표를 설정할 수 있어야 한다. 오롯이 커뮤니티 업무에 집중할 인력이 충분히 배치되어야 하고 그 임무를 수행할 여건을 만들어야 한다. 영화 영역에서는 부산국제영화제가 먼저 커뮤니티의 시대를 예비하는 부서를 만들었다. 필자는 2018년 부산국제영화제 중장기 계획 수립 위원으로 활동하며 시민 영화 문화를 전담하는 부서를 제안하기도 했다. 올해 영화제 내에 커뮤니티비프실이민 영화 문화를 전담하는 부서를 제안하기도 생기고 중요한 부서로 승격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오래 전부터 바라던 관객 프로그램을 전담 실행하는 상근직이 생겨난 것이다.

커뮤니티는 이제 시대의 변화, 지역의 변화를 이끄는 하나의 중요한 축이다. 지역의 문화재단과 문화도시에서 이를 위한 정책적·제도적인 변화를 위한 과정 설계에 더 많은 노력과 에너지를 투자할 때 양질의 커뮤니티 문화가 지역에 뿌리내리고 지속된다. 한 마디로 아이디어 수혜자가 아닌 가공자, 창작자로 활약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이런 설계는 과정의 차이를 펼쳐내는 커뮤니티 매개 전문가가 담당해야 한다. 커뮤니티 매개 과정들은 현장의 경험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전담자가 필요하다.

커뮤니티 문화를 실제로 이끌어 갈 때 문서상의 매뉴얼은 커뮤니티를 움직이기 위한 50%에 불과하다. 나머지 50%는 인간적인 유대 관계의 형성이다. 교류와 유대를 위한 환대와 응원은 매뉴얼화하기 매우 힘들다. “두드리면 열릴 것이다.”는 한 문장을 전달하기 위해 일주일 간 설교를 준비하는 목사님의 노력과 같다. 이런 정성 평가에 해당하는 부분이 커뮤니티를 발전시키는 가장 중요한 동력이다. 우리는 빵만 먹고 살 수 없다. 목넘김이 필요한 물의 영역을 제도적으로 보장하고 자원을 통해 육성할 때 커뮤니티 문화는 생동하며 지속가능하게 된다.

모퉁이극장은 커뮤니티 활성화와 양질의 프로그램 개발을 위해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왔다. 관객문화교실 수업 전후 한 시간의 티타임 운영 부분이 가장 골치가 아팠다. 참 여자들은 즐거워했지만 운영진들은 인건비가 나오지 않는 시간을 투자하며 많은 희생을 치뤘다. 고민 끝에 모퉁이극장은 2년 전부터 정규 수업에 티타임을 넣고, 산책 프로그램도 넣었다. 커뮤니티 활동의 균형을 잡으려면 프로그램 바깥의 헌신이 오래가서는 안 된다. 우리 일상 활동의 작은 조각들을 프로그램 내부로 끌어들인다면 인간적인 호흡의 프로그램 모델들이 나올 것이다. 프로그램 안에 낮잠과 휴식, 사색과 산책, 사귐과 숨 고르기의 시간이 들어있는 커뮤니티 프로그램들이 문화도시 김해에서 야심차게 시도되기를 기대한다. 더 느린 호흡과 더 작은 단위로 커뮤니티를 생각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