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21세기 전 세계의 화두는 ‘다양성’이다.
20세기 이후 사회의 여러 맥락에서 다양성이 높아졌다. 이전까지 주류의 밖에 있었던 소수 집단에 대한 차별 제재와 권리 증진을 위한 관심이 법과 제도로 실현되었다. 글로벌 기업을 중심으로 조직에 다양성, 공정성, 포용성(DEI: Diversity, Equity, Inclusion)을 구현하려는 노력도 지속적으로 기울여지고 있다.
2001년 유네스코(UNESCO)의 ‘문화다양성 선언’으로부터 촉발되어 2005년 ‘문화적 표현의 다양성 보호와 증진 협약’으로 구체화된 문화다양성에 대한 관심과 활동도 그 대표적인 사례이다.
국내에서는 2010년 유네스코 협약 비준과 2014년 ‘문화다양성 보호와 증진에 대한 법률’ 제정을 계기로 문화다양성과 관련된 정책적 활동이 다양성을 대표하는 경향을 보인다. 유네스코 협약 제 4조에서 정의하는 바, 문화다양성은 ‘집단과 사회의 문화가 표현되는 다양한 방식’이다. 문화를 좁은 의미에서 본다면 ‘인류의 문화유산’ 혹은 ‘예술’과 연관된 활동으로, 문화다양성은 다양성의 하위 범주로 볼 수 있다. 넓은 의미에서 문화는 사람들의 생각이나 생활 방식을 포괄하는 개념이다. 이처럼 문화다양성과 다양성은 유사한 의미를 담을 수 있지만, 다양한 맥락과 관점으로 이야기할 수 있는 다양성을 굳이 문화다양성으로 한정해서 논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문화다양성 관련 활동들 이외에, 국내 기업 등 조직에서 다양성 관련 인사나 정책 등이 해외에 비해 매우 더디게 실현되고 있는 현실도, 넓은 의미의 다양성으로 논의가 확대될 필요성을 제기한다.
문화다양성이든 다양성이든 그 안에 담긴 가치는 개개인이 지니는 타고난, 혹은 경험적으로 학습되거나 선택된 다름을 인정하고 포용하는 데에 있다. 인간의 존엄성이 존중되기 위해서 다양성의 가치는 그 자체로 의의가 있는 중요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 자체로 선하고 중요한 가치이니까 당연히 수용해야 한다는 이유로 다양성을 이야기한다면 그건 그리 설득력이 크지 않아 보인다. 현실에서는 드러내고 표현하지 않더라도 이에 공감하지 못하거나, 받아들이기 꺼리는 의견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예컨대 이윤 추구를 목표로 하는 기업에서는 한정된 재화를 투입하여 최상의 성과를 끌어내는 효율이 매우 중요하다. 다양한 특성과 의견을 지니는 구성원들로 이루어진 조직은 효율 면에서는 최고의 조직이 아닐 수 있다. 효율은 공통된 특징을 가진 구성원들이 하나의 목표를 향해 일사불란한 소통과 의사 결정하는 조직이 더 높을 수 있다. 다양성이 오히려 사회 갈등을 촉발하거나 구성원의 신뢰와 참여를 저해한다는 우려도 있다. 이러한, 충분히 경청할만한 의미가 있는 의견에 다양성은 중요하니까 받아들여야 한다는 접근은 답을 제공하지 못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에서 다양성은 어떤 실질적인 가치가 있을까? 다양성은 우리에게 어떤 혜택을 주나?
먼저, 다양성은 지속가능성을 높인다. 사회과학 분야의 연구에 따르면 문화적, 인종적 다양성이 높은 사회일수록 동질적인 사회에 비해 정치·경제적 체제의 지속가능성이 높다는 결과가 축적되고 있다. 단기간의 성과를 위해서는 동질성이 높은 사회와 조직이 효율적일 수 있으나, 여러 가지 환경 변화에 유연하게 대처하는 문제 해결 능력을 위해서는 다양성이 높은 조직이 더 낫다. 실제로 최근 연구에서, 다양성을 포용하는 조직이 세계적으로 유행하는 감염병의 위기에도 더 높은 회복탄력성을 보인다는 보고가 있었다.
또한, 다양성은 혁신적이고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준다. 맥킨지에서는 다양성의 실질적 효용에 주목한 보고서를 발간해 왔다. 보고서에 따르면 다양성이 존중되는 수평적인 조직 문화 속에서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아이디어가 만들어지고 이것이 기업의 성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글로벌 기업이 조직 구성원의 다양성을 확보하기 위해 기업 문화의 새로운 틀을 설정해 온 주된 이유 중 하나가 이것이다. 다양한 구성원이 모인 조직에서는 다각도의 관점이 주어지고, 정보 처리에도 다양한 스타일이 생긴다. 이러한 인지적 다양성(cognitive diversity)이 혁신성과 창의성의 근간이 되기 때문에, 구성원의 인적 다양성이 중시되는 것이다.
이렇듯 다양성이 우리에게 주는 실질적인 혜택이,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이때, 그리고 우리의 미래에 더 주목되는 이유는 자명하다. 지난 몇 년간 팬데믹의 시간을 지나온 우리가 직접 경험한 바와 같이 환경의 변화는 개개인의 삶에 직접적으로 관여한다. 예측 불가한 변화 속에서 사회의 지속가능성은 가장 중요한 가치 중 하나이다. 불가피한 변화에도 삶이 뿌리째 흔들리는 것을 방지하고 다시 일어서 살아갈 수 있는 힘도 본질적으로 중요하다. 더욱이 지금까지 사람들이 담당해 온 많은 일을 인공지능이 대체하게 될 미래의 사회에서는 오직 창의적인 분야만이 인간의 영역으로 남을 것으로 예측된다. 변화에 대한 대응 없이 해오던 일을 익숙한 방식으로 하는 조직은 쉽게 도태되고, 혁신만이 생존력을 갖는다. 이것이 지금 우리가 다양성을 이야기하는 이유이다. 선하고 중요한 가치이니까 번거로워도 받아들여야만 하는 것이 아니라, 생존과 번영을 위한 실질적인 가치로서의 다양성. 마치 다양한 종이 공존하는 자연 생태계가 더 지속 가능한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