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전까지 독서문화의 키워드는 ‘함께 읽기’였다. 함께 읽는 독서의 중요성이 강조되면서 독서동아리가 많이 생겨났다. 도서관마다 크고 작은 문화행사와 강좌가 풍성했다. 김해 도서관들은 시민들의 교류와 문화공연, 강좌, 독서가 일상에 스며들도록 하는 문화의 거점이었다. 하지만 코로나19로 도서관 풍경이 바뀌었다. 도서관 전면 폐쇄와 일부 개방 조치가 오고 가면서 시민들은 불편을 겪었다. 도서관은 최대한 시민들이 불편을 겪지 않도록 스루 드라이브와 택배 서비스로 책 대출 반납을 하기도 했다. 서서히 위드 코로나로 가고 있는 분위기지만 도서관은 여전히 사회적 거리두기를 지키며 제한적 이용을 시행 중이다.
도서관에 자리 잡은 독서동아리 활동도 진행이 쉽지 않았다. 코로나19가 장기화되면서 9년 동안 매주 모였던 독서모임이 처음으로 휴지기를 가졌다. ‘함께 읽기’는 중단되었고 책읽기가 점차 소홀해졌다. 관의 지침을 계속 기다릴 수만은 없어서 낯선 비대면 줌으로 독서모임을 진행해보기도 했다. 그러나 익숙지 않은 줌 방식은 몰입이 어려웠고 이야기를 나눈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몇 번 진행하다가 결국 독서모임은 오프라인 모임을 기약하며 끝을 알 수 없는 쉼을 가졌다.
도서관에는 여전히 좋은 강좌들이 많지만 아직 비대면 줌이 대세다. 김해 시민들도 어느 정도 비대면 모임에 익숙해져 가는 느낌이다. 얼마 전, 김해독서대전이 독서단체, 책방 부스와 체험 행사를 대면으로 진행한다고 해서 모처럼 잠시 들썩였는데 돌연 취소됐다. 이틀 동안 진영한빛도서관에서 몇몇 초청강연과 북 토크, 공연이 비대면 줌과 유튜브로 진행됐다. 그중 하나였던 황정은 작가의 〈연년세세 이어쓰기〉 북 콘서트는 외부 활동을 거의 하지 않는 작가라 대면을 기대했던 만남이었는데 작가를 직접 보지 못해 정말 아쉬웠다. 유튜브로 대신 아쉬움을 달래긴 했지만, 프로그램이 취소될 경우를 미리 고려해 소수의 시민을 앞에 두고라도 작은 북 토크를 진행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김해독서대전은 올해로 세 번째 진행되는 독서 축제다. 몇 년 전, 서울에서 열린 ‘책읽는사회문화재단’에서 주최하는 전국 독서동아리 워크숍에 참여한 경험도 있고 해서 2018년 김해가 ‘대한민국 독서대전’ 다섯 번째 개최도시로 선정되었을 때 기대가 컸다. 국내 최대의 독서 축제답게 ‘2018 대한민국 독서대전’의 행사 규모도 컸다. 시민을 주체로 참여시키는 기획과 워크숍, 공모전이 많이 열렸고 가야의 역사와 결합한 행사, 전시 체험, 인문학 야행 등 다양하고 다채로운 프로그램이 많았다. 그중 기억에 남는 행사는 ‘전국 독서동아리 한마당’이다. 전국에서 모여든 이색적인 독서동아리와의 교류, 소통의 장이 인상적이었다. 열정적인 동아리 소개와 실질적인 조언이 오가는 공감의 시간이 김해 독서공동체에 새로운 자극과 활기를 줬다.
김해 독서동아리가 한데 모여 어울리는 축제의 장이 김해독서대전에서도 계속 이어지리라 기대했는데 행사 이후 만남은 없었다. 연이은 돼지열병과 코로나19로 인해 독서단체 부스와 체험활동은 3년 동안 계속 취소됐다. 유명 작가의 강연과 북 토크, 전시로 채워진 독서대전은 독서동아리들이 주체적으로 참여하는 독서 축제의 취지와는 멀어진 느낌이다.
‘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이란 책에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의 점령하에 있던 영국 건지섬의 주민들이 우연한 기회에 북클럽을 만들어 책을 통해 서로 위로와 소통을 하며 힘든 전쟁의 시기를 견뎌내는 이야기가 실려 있다. 섬 주민들이 모여 책을 낭독하고 토론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던 책인데 코로나19 시기의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무엇이 그 영화에 담겨있었다. 관계에서 느낄 수 있는 한 줌의 온기와 위로, 따듯한 소통, 지금 우리는 그것을 어디서 느낄 수 있을까.
다행히 김해에는 ‘생의 한가운데’라는 동네 책방이 있다. (물론 다른 책방들도 많다) 도서관이 폐쇄되어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도서관에 갈 수 없는 시기에도 책방은 항상 열려 있었다. 책방 대표의 열정과 의지로 좋은 작가들이 책방을 꾸준히 방문했고 소규모 북 토크가 계속 이어졌다. ‘생의 한가운데’는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수시로 드나들 수 있는 사랑방 같은 공간이다. 비대면 시기에 직접 대면이 가능한 독서 공간이 절실한 요즘, 책방이 주는 온기와 위로는 큰 힘이 된다. 비영리 독서단체 ‘이음지음’도 마찬가지다. 이음지음은 책을 읽는 공부와 함께 시의 지원을 받아 독서동아리 회원들과 책 읽는 시민들의 글을 모아 책으로 엮어내는 일을 하는 작은 공동체다. 책 읽는 시민에게 새로운 자극과 앎의 지평을 넓혀주는 소통의 매개체 역할을 하고 싶어서 시작한 일이 벌써 6년이 됐다. 6년 동안 차곡차곡 이야기를 쌓고 있는 이곳에도 온기와 열정이 있다.
문화도시로 가는 길은 긴 여정이다. 특히 책을 ‘읽고 쓰는’ 일은 당장 눈앞에 성과를 내기 힘든 오랜 축적과 노력이 필요한 문화 활동이다. 참신한 기획력과 실행력, 지속적인 지원 부재로 인한 운영의 어려움이라는 난관을 뚫고 묵묵히 움직이며 분투하고 있는 작은 공동체와 책방이 있어 든든하다. 결국은 이런 다채로운 작은 공동체들이 지역 독서문화를 만들어가는 주체가 되지 않을까. 우리와 그들이 쌓아가는 작은 이야기가 김해의 이야기가 될 수 있다. 당장 성과가 보이는 활동보다는 오랜 시간이 지나야 진가를 발휘할 수 있는 작은 공동체들의 존재에 지속적인 관심과 장기적인 지원을 해주면 참 좋겠다. 어쩌면 관 주도가 아닌 시민이 주체가 되는 독서문화의 장, 독서 네트워크와 플랫폼은 작은 독서 공동체들의 협업에서 시작될지도 모르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