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역사는 이긴 자의 것인가?
나는 나이가 들면서 그간의 치열했던 관심을 접기 위해 관련 인터넷 서핑도 김해의 문화정책에도 눈을 감았었다. 그래서 〈김해시사〉를 처음 본 것은 오늘이다. 다행히 시민공개 열람을 했으니 진일보한 문화행정의 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아직 모두는 읽지 않았고 천천히 읽을 생각이다. 그러나 내가 존경했던 여성선배, 우리들이 뜨겁게 활동했던 여성문화 분야를 우선 보고나니 이런 말이 절로 떠오른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 현재의 김해를 끌고 가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그 역사의 한 가운데에서 일했던 사람들의 경험들과 활동들은 기사를 검색하면 찾을 수 있을텐데 많은 부분에서 엄연한 사실들이 누락되고 그 시기에 가장 길게 활동했던 현장 활동가로서 기억이 생생한 부분들이 과소 과대 기록되어 보이는 것에 그저 고개를 돌릴 뿐이다.
김해는 김해여성복지회가 운영하는 여성복지회관에서 본격적인 여성주의 여성축제를 전국 처음으로 만들어낸 곳이고 그 뿌리는 수십 년간 할머니학교, 한글학교, 문화강좌 등으로 지속해온 여성문화교육의 힘이며 김해 최초로 단체를 연합하여 시정평가 및 시의원 평가를 하고 여성의원을 배출하는 등 여성정치참여의 길을 열었던 곳이다. 현대 김해여성문화운동의 시발점이자 본격적인 김해시민교양 강좌의 시발지였던 곳이 김해시사 어디에도 기록된 게 없는 게 참으로 아쉽다.
역사란 결국 권력자들이 그들의 취향에 맞는 저술가를 선택하고 그들은 자신의 당파성과 가치관에 따라 사료를 취사선택할 수밖에 없지만 수많은 사료 중에 단체가 만들어 낸 책자를 그것도 선택적으로 모은 것을 주 자료로 하여 역사기술을 한다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 역사를 기술하며 인터뷰와 언론문헌 영상 신문 기사 등등 온갖 폭넓은 자료수집을 통해 객관성에 도달하려는 노력 없이는 당시의 열정과 헌신이 가져왔던 변화의 파노라마를 포착할 수 없기 때문이다. 부디 역사기술이 보수 진보(?)의 편 가르기가 아니라 풍부하게 양쪽을 다 가름하는, 미래를 위한 역사편찬이 되었으면 한다.
2. 김해문화와 유산의 의미화 작업이 필요하다.
김해는 정말 역사적 공간이 어느 지역보다 많은 곳이다. 나는 예전에 허왕후 축제를 위해 김해의 허왕후릉, 대성동고분박물관, 김수로왕릉, 구지봉을 걸으며 김해 관광을 생각했던 시간이 많았다. 그러면서 깨달은 것 하나가 김해의 문화해설조차 역사해설에 치우쳐있기에 흥미 유발이 부족하며 좀 더 대중화 하고 폭넓게 관광객을 유입하기 위해선 김해의 문화관광 홍보전 분야를 아우를 전문기획자가 필요하다는 생각이었다.
문화관광 홍보는 인문학을 바탕으로 하는 다방면의 지식과 조예를 가진 창조적인 기획자와 열정적인 활동가인 홍보자가 결합해야만 김해를 아주 매력적인 부분으로 만들어 낼 수 있다. 고대 여성 지도자가 묻혀있던 김해 고분박물관, 여성의 성기 모양을 한 대성동고분박물관의 윗부분과 생명성의 가야 연결, 건축 설계자의 말과 고분박물관 설계의미, 자신의 성을 아들에게 물려준 허왕후의 시대를 넘어선 주체성과 김수로왕 매력 탐구, 허왕후의 궁전이 있던 김해시장에 오늘도 외국인들이 가득한 전경 등 과거와 현재를 잇는 이야깃거리는 차고 넘친다. 지루한 역사해설보다는 이런 이야기들이 더 흥미를 끌 수 있고 매력적인 관광지가 되게 한다. 그러나 김해의 문화해설에는 이런 내용이 없거나 스쳐 지나가는 수준이다.
김해의 매력적인 맛집을 찾아내 스토리텔링하고 한옥체험관의 촛불 아래 연차한담, 클레이아크 뜰에서의 저녁 음악회, 봉황대의 벚꽃과 여의의 추억축제, 연지공원의 아침 산책, 수로왕릉 뒤뜰에서의 〈왜 꽃들은 슬픈 전설이 많은가〉 식물 이야기, 고분박물관의 연날리기, 패총에서의 북두칠성 찾기와 고분박물관에서의 사랑하는 사람과의 〈별밤 언약식〉, 〈여성 무사의 이야기〉 등 끝없는 아이디어와 그것을 채우는 신성한 음악과 무용의 환상적 예술 경험을 연결하는 여행패키지를 만드는 것도 관광사업으로 해볼 만한 것이다. 예전에 문광부 프로젝트로 전국여성 문화인 60여 명을 초청해서 보여준 〈허황옥을 만나다〉 김해 여행 행사는 그 피드백이나 영향력에서 대성공을 거두었던 기억이 난다. 이후로 허왕후릉 방문자가 많이 늘었고 인류학자 조한혜정은 자신의 저서 〈다시 마을이다〉에 홍콩 같은 곳에서 김해로 학생들의 수학여행을 가면 좋겠다고 추천까지 했으니 말이다.
대성동고분박물관에는 단순하지만 아주 아름답고 의미 있는 이우환의 설치작품 〈무한의 언덕〉이 있는데 철판, 나무, 돌로 이루어진 자연에 가까운 작품이다. 이우환은 이 작품을 “어쩌면 폐허 같기도 하고 어쩌면 시원 같기도 한 가야”를 표현하고 싶었다고 한다. 나는 이 작품에서, 많은 영감을 얻는다. 그리고 이곳은 내가 사랑하는 김해의 한 장소이기도 하다. 이를 보면 의미 부여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된다. 평범하고 단순한 재료와 단순한 설치에도 그의 자기 작품 의미화는 그의 미술품을 몇 억이나 몇 십억으로 만든다.
김해의 관광자원도 마찬가지다. 어쩌면 폐허이고 시원 같은 김해, 모래 한 줌이 다이아몬드 한 줌이 되는 의미화 작업이 얼마나 필요한지 정책수립자들은 잘 모르는 것 같다. 김해는 아직 김해 관광을 위한 지역 의미화 작업 이전이거나 초기 단계기에 방향성 정립이 되어있지 않고 시설물들을 이것저것 늘어놓은 상태로 김해문화라는 정체성의 구슬이 꿰어지지 않은 듯 느껴진다. 언젠가 아름다운 고분박물관 대로변 출입구에 가야 무사군이 설치되어 미관을 심하게 해치더니 이제 그것이 치워져 고요하고 단정한 모습으로 변한 것도 천만다행이다.
김해의 역사와 더불어 산과 강과 문화와 유산에 대한 의미화 작업이 우선 필요하다. 또한 관광의 내용을 채우는 것은 그런 의미를 찾는 작업이기에 김해의 아름다움과 문화예술, 경험의 신비성·오락성을 담는 관광 기획은 문화기획자라는 전문가의 손길 없이는 어렵다. 행정은 그 기획을 받쳐주는 것이고 문화재단은 우선 그런 일부터 시도해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