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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려, 공감 그리고 문화예술
장애와 문화예술

우리는 언어를 배울 시기부터 배려에 대해 교육을 받고 배려를 당연하게 생각한다. 그렇게 우리는 자연스럽게 버스에서 노약자에게 자리를 양보하고, 다치거나 몸이 불편한 친구가 있으면 그 친구의 부족한 부분을 대신하기도 하고, 문화가 다른 사람들을 만나면 상대방의 문화를 이해하고자 노력하기도 한다. 더구나 최근에는 다양한 매체를 통해 취약계층들의 생활을 소개하는 영상들이 공유되면서 우리는 배려와 한층 더 가까워지고 있다. 이는 부쩍 우리 사회에서 많이 등장하는 유니버설디자인·배리어프리 같은 단어들로 체감할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배워온 배려들을 문화예술에 접목시키면 어떨까? 우리가 아무런 의심 없이 즐겨온 문화예술들이 그 누군가에게는 당연하지 않다면, 우리는 그들에게 어떠한 배려를 하고 있는 것일까? 필자는 시각장애인들이 박물관과 미술관에서 문화예술을 체험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조사를 하고, 시각장애인들과 인터뷰를 할 기회를 가진 바 있다. 그 결과는 우리의 예상과 꽤나 달랐다.

먼저, 유니버설디자인의 측면에서 시각장애인을 배려하는 수단으로 점자를 가장 먼저 떠올릴 것이다. 비장애인들은 시각장애인들이라면 점자를 누구나 읽고 독해 할 수 있을 거라고 여긴다. 하지만 실제로 국내 시각장애인 중, 점자를 독해할 수 있는 시각장애인은 전체 중 5%도 채 되지 않는 적은 비율을 가지고 있다. 당연히 점자는 시각장애인들의 글자라고 알고 있지만 후천적인 장애요인이 많은 시각장애에서 점자는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것과 마찬가지인 셈이다. 공공기관에 들어가기 전에 세워져있는 촉지도 또한 마찬가지이다. 시각장애인을 위해 설치되어 있지만 실제 건물 앞에서 시각장애인분들이 촉지도만을 만져본 채로 건물 안에서 해당 위치를 찾아가기란 전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럼 마지막으로 우리가 문화예술공간에서 접할 수 있는 오디오가이드는 어떨까? 오디오가이드는 점자나 촉지도보다 기능적인 도움이 되긴 하지만 시각장애인의 입장에서는 집에서 책을 읽는 것과 아무런 차이가 없다고 한다.

시각장애인들이 문화예술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외부적인 요인들로 참여하게 만드는 공간이 아니라 내부적인 콘텐츠들로 시각장애인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프로그램들이 구성되어야 한다. 예를 들면 점자로 구성된 안내판이 아니라 미술품이나 전시품의 만져볼 수 있는 복제품이나 부조, 입체도면 등의 구성을 살릴 필요가 있다. 촉지도가 건물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손에 지참할 수 있는 카드 형태로 만들어진 지도를 활용해 건물을 다니면서도 현재 위치를 파악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전적으로 오디오가이드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현장감을 느낄 수 있는 환경을 적절히 조성한다거나 신체를 활용한 콘텐츠들이 배치되는 등의 방법도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생각해보면 어렵지 않은 해결방법인데다 몇 번의 인터뷰로 쉽게 도출해낼 수 있는 결과물들이다. 그럼에도 아직도 점자, 촉지도, 오디오가이드가 최선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이유는 우리가 머릿속으로 배려를 배워왔기 때문이다. 사회적 약자에 대해 배려하려는 마음은 있으나, 그것을 피상적으로 아는 방법을 통해 실행하다보니 체험객들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과 동떨어진 현상이 나타나게 된다. 그래서 필자는 단순히 배려하는 문화 예술을 만들기보다는 공감하는 문화예술을 만들자는 이야기를 꺼내고 싶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이 공간에서 어떤 필요성을 느끼고 어떤 도움이 필요한지, 왜 이런 도움을 필요로 하는지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공감할 필요성이 있다. 배려의 대상으로 바라볼 것이 아니라, 우리의 친구이자 같은 고민을 해결해나갈 동지라고 생각한다면 어려운 문제들은 비교적 빠르게 풀린다.

본지에서는 시각장애를 중심으로 서술되었지만 시각장애 외 에도 다양한 장애를 가진 분들이 다양한 요인을 이유로 문화 예술과의 거리가 멀어지고 있다. 누군가는 “비시각장애인인 우리도 문화예술을 제대로 즐기지 못하는데 이런 고민은 사치가 아닌가?”라고 질문하기도 한다. 이러한 생각이 단순히 공리주의적인 측면에서는 옳다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한 사회가 선택할 수 있는 다양성을 열어준 상태에서 내가 선택하지 않은 것과 선택지가 없는 상황에서 선택하지 못한 것은 큰 차이가 있다고 생각한다.

전 세계적으로 시각장애인들이 문화예술을 체험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는 다양한 방법들이 시도 중이고, 많은 시행착오를 겪어가고 있다. 우리 지역에서는 최근 클레이아크김해미술관에서 진행되고 있는 〈시시각각; 잊다있다〉 전시가 이런 다양성의 신호탄이라는 긍정적인 생각이 든다. 전시가 꾸려지기 전부터 라운드테이블을 통해 다양한 사람들의 의견을 모았고, 시각장애인분들을 우선적으로 초청해 그들의 피드백을 수용했으며, 내부적으로는 시각장애인들도, 비시각장애인들도 편견 없이 즐길 수 있는 콘텐츠들로 구성되었다. 그동안 미술관이라고 하면 본인들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생각했던 시각장애인들에게도 미술관이라는 곳을 알아갈 계기가 된 듯하다.

2021년, 김해는 문화도시에 지정되었다. 이젠 시민들이 문화를 이끌어가고 지역의 가치를 시민들이 만들어가는 시대가 도래했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공감 없는 배려는 서로에게 필요 없는 도움을 준다거나, 최악의 상황에는 서로에게 상처만 남기고 끝이 나는 경우를 마주할 수도 있다. 공감이라는 가치를 핵심으로 두고 다양한 실험과 서로 간의 이해를 구축해야 할 필요가 있다. 김해라는 도시에서 시각장애를 비롯한 다양한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문화예술의 소비자로 참여하고, 나아가 문화예술의 생산자로 설 수 있는 날이 올 수 있기를 희망한다.

작성일. 2021. 07.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