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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 도시, 문화도시, 그리고 김해시립박물관
문화도시와 박물관

새해 벽두에 낭보가 날아들었다. 김해시가 문화체육관광부 주관의 ‘문화도시’에 선정되었다. 문화도시 조성 사업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지역 스스로 도시의 문화 환경을 기획·실현해 나갈 수 있도록 정부에서 포괄적으로 예산을 지원하는 사업이다. 쉽게 말하면 정부에서 5년 동안 약 100억 원을 지원하며, 그 예산으로 주민 스스로 축제, 행사, 동아리 활동 등을 기획하고, 직접 실행한다. 문화운동의 마중물을 제공하는 셈이다.
2019년 1차 문화도시로 부천시, 원주시, 청주시, 천안시, 포항시, 서귀포시, 부산 영도구 등 7개소가 지정되었고, 2차 연도에 김해시, 인천 부평구, 춘천시, 강릉시, 완주군 등 5개소가 지정되었다. 문화도시는 문화예술 분야, 문화산업 분야, 사회문화 분야, 역사전통 분야 등으로 구분되어 있다. 1, 2차 문화도시로 지정된 거의 모든 도시는 문화예술이나 사회문화 분야를 주제로 삼은 데 반해, 김해는 ‘가야의 왕도’답게 역사전통 분야로 지정을 받았다. 역사전통 분야로 선정된 첫 사례이다. 도내에서는 처음 지정된 문화도시이다. 우리가 자랑하는 가야뿐만 아니라 김해의 역사와 문화를 시민들이 직접 꾸려나가는 힘이 발휘될 것으로 믿는다.
잘 아시다시피 김해는 농촌 지역에서 산업도시로 탈바꿈하였다. 문화도시를 신청하는 과정에서 나온 통계자료를 살펴보자. 1995년 시군 통합 후 2020년 현재까지의 25년간의 자료이다. 인구 26만 5천 명에서 56만 명으로 2배, 재정 규모 2,510억 원에서 1조 7,595억원으로 7배, 기업체 수 1,752개에서 7,494개로 4배, 학교 수 66개에서 122개로 2배, GRDP(지역내총생산) 3조 2,767억 원에서 14조 9,187억 원으로 5배 늘었다고 한다. 실로 괄목할 만하다.
과연 성장하고 발전만 한 것일까? 난개발로 산은 깎이고 습지는 묻혔다. 급격한 도시화로 혼잡하여졌다. 외국인 노동자가 늘고, 다문화 가구가 많이 생겼다. 지역 정체성의 문제점이 드러나고 있다. 건강하고 활기차 보이지만 도시와 시민은 점점 병들어가고 있다. 이를 치유하는 데에는 ‘문화’ 만한 게 없다. ‘국제 슬로우 시티’에 이어 ‘문화도시’가 되었으니 치유를 위한 큰 얼개는 갖추어진 셈이다. 소프트웨어를 차곡차곡 채워야 할 시점이다. 무엇으로 채울까?

다시 문화도시 선정 시 제시한 틀의 하나인 ‘도시가 박물관’에 주목하여보자. 김해시장의 선거공약인 ‘박물관 도시’도 끌어들여 보자. 두 개념은 서로 통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전혀 다른 의미이다. 후자는 형식에 치중하였고, 전자는 내용에 더 의미를 두었다. 번잡하지만 여기서 경상남도의 박물관 현황도 살펴보자. (아래표 참조) 2020년 기준으로 도내에는 약 70여 개의 박물관과 미술관이 있다. 국공립박물관이 44개인데, 국립을 빼면 공립박물관은 41개이다. 다행스럽게도 김해시에는 국립도 있고, 도내에서 가장 많은 박물관 수를 자랑한다. 2020년 기준으로 도내에서 공립박물관 평가인증을 받은 기관은 19개인데, 김해시에는 대성동 고분 박물관, 윤슬미술관, 클레이아크김해미술관 등 3개나 포함되어 있다. 수뿐만 아니라 질적으로도 가히 ‘박물관 도시’인 셈이다. 이외에도 수도박물관, 진영철도박물관, 목재문화박물관과 분성산 생태숲 생태체험관 등도 생겼다. 김해시장의 선거공약을 실천한 성과이기도 하다.

전문 박물관 인으로서 도내 공립박물관의 활동 내용도 분석해보았다. 공립박물관 41개소 중 통영, 밀양, 양산, 의령, 함안, 창녕, 고성, 거창, 합천박물관 외에는 박물관의 종합적인 활동이 부족하다. 그것도 너그럽게 평가한 결과이다. 물론 여기에 포함되지 못한 곳은 작은 박물관이나 전시관으로 지역을 특성화하는 데 치중한 장점도 있기는 하다. 참담한 것은 도내에서 인구나 재정이 가장 크다고 할 수 있는 창원시, 김해시, 진주시에는 아직 제대로 된 시립박물관이 하나도 없다. 다행히 창원시는 최근 시립박물관 설립을 추진하여 문화체육관광부로부터 박물관 건립에 대한 조건부 허가가 났다. 김해시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일이다.
박물관의 수가 많아서 나쁘지는 않다. 그런데 속을 조금만 더 들여다보면 아쉬운 점이 있다. 공립박물관은 그 지역의 정체성 확보를 가장 큰 과제로 삼아야 한다. 지역의 역사와 전통을 선양하기 위하여 문화재의 수장, 보존, 전시는 물론, 조사, 연구,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여야 하고, 시민들의 문화공간 역할을 하여야 한다. 이런 기능을 할 수 있고, ‘박물관 도시’와 ‘문화도시’, ‘도시가 박물관’에 필요하고, 김해의 정체성을 살리는 데 충분한 문화 치료제는 과연 무엇일까? 인구 56만 명의 대도시를 포용하는 시립박물관의 설립이 대안이라고 믿는다.
김해시에는 이미 국립박물관이 있고, 여기에 더해 국립가야역사문화센터도 들어선다. 그러나 이 기관들은 모두 우리가 자랑하는 가야의 문화를 연구하는 기관이다. 김해시의 문화유산은 10%도 연구하고 전시하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김해는 가야의 역사만 중요한 것이 아니다. 낙동강 하구와 바닷가에 형성된 많은 선사 유적, 특히 우리나라 최대의 구산동 고인돌, 김해가 가장 번성하였던 고려 시대의 유물과 유적, 상동의 분청자와 백자,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 현대의 전국 최초 비닐하우스, 남명, 허웅과 이윤재 등 우리가 자랑하는 수많은 유산과 인물이 차고 넘친다. 현재의 김해 발전상도 기록하고 자료를 수집하여 둘 일이다. 대성동고분박물관에서 할 수 없는 일이다.
국립박물관 수장고에는 수만 점의 김해 출토 유물이 잠자고 있다. 보물 제951호인 ‘선조 국문 유서’는 선조가 1593년 임진왜란으로 의주 행재소(義州行在所)에 있을 때 내린 교서이다. 왜군의 포로가 된 백성을 귀국시키려고 임금이 직접 한글로 작성하였다. 희귀한 한글 문서일 뿐 아니라, 임진왜란 당시의 사회상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흥동에 어서각(御書閣)까지 지어서 보관하였는데, 현재는 부산박물관에 전시 중이다. 제대로 된 김해시의 문화유산을 전시할 수 있는 공간이 없기 때문이다. 김해시에 있는 많은 박물관의 가온머리 역할을 할 시립박물관의 건립이야말로 ‘박물관 도시’와 ‘문화도시’의 화룡점정이 될 것이다.

작성일. 2021. 01.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