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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 만나는 미술가
화면으로 만나는 미술사

2008년 드라마 <바람의 화원>이 큰 인기를 얻으면서 신윤복이라는 화가에게 큰 관심이 집중되었던 적이 있다. 그즈음 열린 간송미술관의 <보화각 설립 70주년 기념 서화대전> 개막일에 2만 명의 관람객이 몰렸고, 간송미술관에는 신윤복의 <미인도>를 관람하려는 사람들로 수백 미터의 줄이 이어졌다. 아마 그 드라마가 방영되지 않았더라면 이런 광경을 볼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니 한 예술가와 그의 작품을 발굴하고 조명하는 데 드라마나 영화와 같은 대중 매체는 더없이 좋은 수단이라고 할 수 있다

미술가의 생애는 이미 오래전부터 영화의 단골 소재가 되어 왔다. 그 이유는 두 가지 정도로 생각해 볼 수 있다. 일단, 미술가들의 삶 자체가 허구적인 소설보다 훨씬 더 극적인 경우가 많다. 화가들은 일부러 지어낼 수 없을 정도로 기이한 행동을 일삼기도 하고 오히려 평범하게 살았던 미술가를 찾는 일이 더 어려울 정도이다. 빈센트 반 고흐는 화가 나서 자신의 귀를 잘랐고, 친구의 부인을 빼앗아 결혼한 살바도르 달리는 그녀가 죽자 자신의 저택 지하에 그녀의 시신을 간직했다. 라파엘이나 구스타프 클림트는 과도한 애정 행각을 벌였고, 카라바지오나 앤디 워홀은 동성애자였다고 알려져 있다. 장 미쉘 바스키아는 마약 중독으로 죽었고 잭슨 폴록은 음주 운전 사고로 사망했다. 우리나라 화가 장승업 역시술과 여자가 없으면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고 한다. 대개 미술가들은 자신의 명성과 부를 누리기도 전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경우가 많았다.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한 화가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미술가들은 세상의 관습이나 규범을 무시하고 살았으며 그 삶이 평탄하지 않았다. 예술 작품은 보통 사람들과는 다른 자유분방한 사고나 정신적 아픔 속에서 탄생하는 것일까? 어쩌면 위대한 예술 작품이란 한 사람의 삶을 완전히 망가뜨리고서야 이루어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러한 미술가들의 삶이 보여 주는 극적인 드라마는 영화의 소재로 사용되기에도 아주 좋다.

또 하나, 시각 매체인 영화에는 많은 볼거리가 필요하다. 영화 <고야의 유령>에서와 같이 미술 작품이 영화에 등장하는 경우도 많은데, 이 경우 작품은 그 자체로 좋은 볼거리가 된다. 그리고 미술 작품은 영화의 화면 이미지를 구성하고 연출하는 데 중요한 영감을 제공한다. <프리다>는 그 화가의 작품을 화면 구성에 그대로 이용했고, <카라바지오>나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는 해당 작가의 작품과 같은 느낌과 분위기로 영화 화면을 연출했다. 그래서 영화의 화면을 보고 있으면 그 화가의 그림을 보는 듯한, 그리고 영화 속에 빠져들다 보면 마치 그 화가의 그림 속에 들어가 있는 듯한 기분마저 든다.

그런데 이러한 영화들은 미술가마다 조금 다른 스타일로 만들어져 있다. 영화의 스타일은 그 미술가가 가진 특징을 가장 잘 부각할 수 있는 방식을 취한다. 미술가를 다룬 영화의 스타일은 크게 세 가지 정도의 스타일로 구분될 수 있다.

가장 일반적인 방식은 사실적인 스타일로서 화가에 대한 다큐멘터리처럼 만들어진 영화들을 말한다. 이 경우 극적인 어떤 사건이나 갈등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화가의 삶과 작품, 주변 인물, 당대의 사회적 분위기나 역사적 사건 등을 가능한 사실에 근거하여 객관적으로 묘사한다. <폴락>, <모딜리아니>, <서바이빙 피카소>, <나는 앤디 워홀을 쏘았다> 등이 그러한 영화이다. <팩토리 걸>과 같이 허구 영화이면서도 다큐멘터리 형식을 취해 주인공의 실제 인물을 인터뷰하는 영화들도 있는데, 이런 경우 사실적인 느낌을 더 강조한다.

이와 조금 다르게 영화적인 기교를 동원하고 특별한 개성을 발휘하여 미술가와 작품을 인상적으로 부각하는 영화들이 있다. 예를 들면 <프리다>, <바스키아>, <클림트>와 같은 영화들이 그것이다. 이들은 독특한 영화적 기법들을 동원하여 화가와 그의 작품 특성을 영화적으로 좀 더 생생하게 살려내고자 한다.

세 번째 스타일은 신윤복을 다룬 드라마 <바람의 화원>이나 영화 <미인도>, 그리고 <고야의 유령>이나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와 같이 어떤 화가 혹은 하나의 그림으로부터 상상력을 발휘하여 허구적인 이야기를 꾸며 내는 것이다. 이러한 방식은 화가나 그림에 관한 역사적 사실이 비교적 잘 알려지지 않은 경우 더 효과적이다. 영화 <미인도>와 드라마 <바람의 화원>은 신윤복의 화풍이 여성의 모습을 섬세하게 그린 것으로 미루어 보아 신윤복은 여성이었을지도 모른다는 가정으로부터 출발하여 이야기를 전개한다

우리가 어떤 미술가를 이해하기 위해서 그 미술가를 소재로 한 영화를 찾아 보는 것은 그에 대해 좀 더 즐겁고 깊이 있게 다가가는 좋은 방법이다. 또한 각각의 영화가 그 화가와 작품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을 강조하는 스타일로 만들어져 있음을 살펴보는 것도 무척 흥미롭다. 그러한 영화의 스타일을 이해하는 것 역시 화가와 작품에 대한 이해를 풍부하게 해줄 것이다.

작성일. 2020. 12.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