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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미술관 기행> 프라도 미술관
스페인을 대표하는 프라도 미술관과 프란시스 데 고야

스페인을 대표하는 프라도 미술관은 1819년 ‘왕립 회화 및 조각 미술관’으로 개관했다. 신고전주의 양식의 프라도 미술관의 건축물은 1785년 건축가 후안 데 빌라누에바(Juan de Villanueva)가 설계했다. 프라도 미술관의 수집품 역사는 합스부르크 왕조의 스페인 왕들이 미술 작품을 수집하기 시작한 16세기에 시작되었다. 이 시기는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하고 신대륙을 정복하는 과정에서 스페인이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제국으로 올라서기 시작하던 때였다. 스페인 제국은 신대륙에서 꾸준히 부를 축적했고, 이를 바탕으로 국제 미술 시장에서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사들일 수 있었다. 카를로스 5세와 그의 아들 펠리페 2세 그리고 수집가로 이름난 펠리페 4세를 포함해 계승자들이 모두 미술 작품을 열정적으로 의뢰하고 주문했다.

프라도 미술관 수집품은 12세기부터 19세기 사이에 제작된 스페인 미술이 주를 이루고, 특히 스페인과 정치적으로 좋은 관계를 유지했던 나라들인 플랑드르와 이탈리아의 작품이 많다. 특히 프라도 미술관은 화가 개인별로 작품을 전시하고 있어서 한 화가의 작품 경향을 살펴보기에 아주 편리하다. 프라도 미술관이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스페인 화가는 누구보다 디에고벨라스케스(Diego Velazquez)와 프란시스 데 고야(Francisco Jose de Goya)인데 특히 고야는 유럽의 다른 화가들과는 매우 다른 작품 경향과 다양한 기법을 구사했다는 점에서 아주 흥미로운 화가다.

고야가 살았던 시기는 스페인의 역사적 격동기였다. 나폴레옹 군대가 스페인의 양민들을 무자비하게 학살했고, 무자비한 종교 재판과 마녀사냥이 죄없는 사람들을 처단하던 혼란의 시기였다. 고야는 목격자이자 증언자로서 시대의 고통을 기록했다. 그런데 이러한 고야의 경향이 더욱 특별하게 느껴지는 것은 그가 50년 이상이나 왕실과 귀족들에게 봉사했던 궁정 화가라는 점 때문이다. 그는 가난했던 무명 시절, 귀족들의 초상화를 잘 그려서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그가 그린 초상화들은 인물의 특징을 잘 나타내면서도 화려하고 섬세했기 때문에 귀부인들은 그의 초상화를 아주 마음에 들어 했다.

그는 왕과 귀족들을 위한 초상화를 그려 돈벌이를 하면서 집에 돌아와서는 돈벌이와는 무관하게 자신이 하고 싶었던 작업을 했는데 그것이 <로스 카프리초스>, <전쟁의 참화>, <어리석음>과 같이 시대의 고통을 기록했던 판화 연작들이다. 이 시리즈는 성직자와 귀족의 위선과 타락을 풍자하고, 나폴레옹 군대의 만행을 고발했으며, 인간의 어두운 내면을 드러내고 있다. 화가로서 부족할 것 없던 그가 들키면 궁정에서 쫓겨날 뿐 아니라 이단 심문소에서 고문까지 받을 수도 있는 위험한 반체제 그림을 그렸다는 것은 매우 주목할 만하다. 이 점에서 고야는 전통과 현대의 분기점에 서 있다. 그는 자신의 시대를 인식하고, 자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초상화로 유명해진 그는 당대 최고의 궁정 화가의 자리까지 오르게 되는데 그가 그린 카를로스 4세의 가족 초상화는 그가 왕실에 대해 가지고 있었던 태도를 은밀하게 드러낸다. 값비싼 의상과 보석으로 치장하고 있지만, 얼굴 표정은 탐욕으로 얼룩져 있는 왕과 왕비의 모습에서 우리는 스페인의 현실을 외면한 위정자들의 허영과 무지를 읽을 수가 있다. 정작 왕과 왕비는 이 그림을 보고 매우 만족해했다고 하니, 고야가 얼마나 교묘하게 그림을 잘 그렸는지 짐작해 볼 수가 있다. 특히 1808년 5월 2일 스페인 양민들이 프랑스 점령군에 저항하는 모습과, 바로 다음날 3일 그에 대한 보복으로 스페인 양민들을 프랑스 군대가 처형하는 장면을 그린 연작들은 소름끼칠 정도로 사실적인 역사적 증언이다. 고야는 마흔이 넘어서 자기만의 세계를 표출하기 시작했고, 마흔 여섯에 열병으로 청력을 잃은 후 그의 작품은 점점 더 어두워지면서 인간의 어두운 본성과 시대의 위기에 대한 고발을 작품에 담았다. 그가 여든 둘의 나이로 죽기 일 년 전에 그렸던 그림의 제목 <지금도 나는 배운다>에서도 볼 수 있듯이 그는 죽을 때까지 평생 붓을 놓지 않고, 치열하게 인간과 역사를 고민했다.

작성일. 2020. 11.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