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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미술관 기행>우피치 미술관
인간 세상을 사랑하기 시작한 르네상스 화가들

고대 그리스로의 부활

서양 미술사 최고의 황금기인 르네상스 미술의 정수를 보기 위해 사람들은 이탈리아 피렌체의 ‘우피치(Uffici) 미술관’으로 간다. 여기에는 미술사적으로 중요한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회화 작품이 다수 소장되어 있기 때문에 언제나 관람자들로 붐빈다. 이탈리아어 ‘우피치’는 사무소, 관청을 의미하는 단어로 영어로는 ‘Office’에 해당한다. 원래 이 미술관은 르네상스 시대의 중요한 도시 국가였던 피렌체를 다스린 명망 있는 가문 메디치가 행정 관청으로 사용했던 건물이었다. 소장된 많은 컬렉션은 메디치 가문이 후원했던 미술가들의 작품이다. 메디치 가문은 미술가들에게 지원을 아끼지 않았고, 덕분에 이탈리아 르네상스는 미술의 황금기를 구가할 수 있었다.

르네상스의 가장 중요한 전제는 신 중심 세계였던 중세로부터 인간 중심 세계로의 전환으로서 그 모범을 고대 그리스에서 찾는다. 르네상스 시대의 전제를 명확하게 보여주는 것이 바로 산드로 보티첼리(Sandro Botticelli)의 <비너스의 탄생>이다. 신비스럽고 화려한 아름다움 때문에 우피치 미술관에서도 보티첼리의 방은 늘 관람자들로 가득 차 있다. 중세 천 년 동안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신들은 이교도의 신이라 배척되었기 때문에 미술로 재현되지 못했다. 중세이후 그리스의 신이 최초로 미술로 재현된 것이 바로 이 그림이다. 고대 그리스로의 부활이라는 르네상스의 전제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입체 구현이 가지는 의미

우피치 미술관에는 미술사적으로 중요한 작품이 다수 소장되어 있다. 그중에서는 중세 비잔틴 양식으로부터 르네상스 양식으로의 이행 과정을 확인 할 수 있는 흥미로운 작품들이 있다. 지오바니 치마부에(Giovanni Cimabue), 두초 디부오닌세냐(Duccio di Buoninsegna), 조토 디본도네(Giotto di Bondone), 이 세 화가는 중세로부터 르네상스로 넘어가는 분기점에 있는 화가들이다. 이들 작품에는 중세적 전통과 새로운 르네상스 양식이 혼재되어 있어 미술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된다. 신 중심의 사회로 현세보다는 내세를 중요시했던 중세 시대에 화가들은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는 관심이 없었으며 인물을 사실적으로, 혹은 보이는 대로 그리려고 노력하지도 않았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신과 신이 있는 세상이었고 그것을 부각하는 데 집중했다. 그래서 중세의 화가들은 굳이 삼차원의 입체를 표현하려고 애쓰지 않았다. 그러나 르네상스 화가들은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 관심을 가지고 그것을 진짜처럼 표현하고 인물을 살아있는 것처럼 묘사하려고 노력했다. 그래서 무엇보다 이차원인 캔버스에 삼차원의 입체를 구현하는 것을 중요한 목표로 삼았다.

새로운 물결, 르네상스

위의 세 화가가 그린 세 점의 <옥좌의 성모자>를 살펴보자. 치마부에에서 조토의 작품으로 갈수록 후대에 작화됐다. 성모자가 앉아 있는 옥좌를 보면 이 세 화가 모두 입체적인 형태를 묘사하는 데 얼마나 관심을 두었는지 잘 알 수 있다. 심지어 치마부에의 경우 옥좌는 건축물과도 같은 웅장한 형태를 하고 있는데, 두초나 조토로 갈수록 옥좌의 형태는 훨씬 더 자연스러운 형태로 변모된다. 성모의 얼굴도 조토에게 오면 치마부에 보다 훨씬 더 인간적인 모습으로 표현되어 있다. 아기 예수는 어떨까? 본래 어린아이는 보통 4등신이다. 몸에서 머리가 차지하는 비율이 매우 크다. 그런데 치마부에의 예수는 어른의 비례를 보여준다. 이것은 아기를 관찰하여 그린 그림이 아니라는 것을 뜻한다. 이 역시 조토에게 오게 되면 아기의 비례에 가깝게 조정되어 있다. 옥좌 양옆에 있는 천사들을 보면 치마부에나 두초의 경우 천사들을 규칙적으로 층층이 쌓아 올리는 방식으로 배치하고 있기 때문에 천사들 사이의 공간적인 깊이가 잘 느껴지지 않는다. 그러나 조토의 경우 천사들을 불규칙하게 겹쳐지도록 배치하였기 때문에 그들 사이에 공간이 있다는 암시를 받게 된다. 그러나 이 세 그림 속에는 여전히 중세적인 전통이 남아 있다. 이 세 작품의 배경은 모두 중세 제단화에 항상 사용되는 황금색이다. 제단화란 교회의 제단 부분을 장식했던 그림을 말한다. 중세의 교회들은 신의 은총과 광휘를 드러내기 위해 번쩍거리는 황금이나 보석으로 제단을 장식하고, 스테인드글라스와 모자이크 들로 교회 전체를 빛으로 충만하게 만들었다. 르네상스 회화에서는 점차 중세의 황금색 배경이 사라지고 자연스러운 하늘이나 풍경이 배경으로 등장하게 된다.

한편, 치마부에와 두초의 그림에서 성모 얼굴은 중세에 성모를 묘사했던 전형을 보여준다. 갸름한 얼굴과 옆으로 긴 눈과 긴 코, 고개를 옆으로 갸우뚱하게 기울인 자세 등이 그러하다. 이렇게 중세적 전통을 따르는 치마부에와 두초의 성모 얼굴은 아직 살아있는 인간 같기보다는 나무로 만들어진 인형처럼 딱딱해 보인다. 그러나 조토의 그림 속 성모는 훨씬 더 자연스러운 인간의 얼굴을 하고 있다. 요컨대 치마부에, 두초, 조토로 이어지면서 점차 깊이 있는 공간과 입체감이 세련되기 시작하고 인물 역시 좀 더 살아 있는 인간에 가깝게 사실적이고 자연스럽게 묘사되어 간다. 이러한 초창기 르네상스의 노력 위에서 다 빈치, 라파엘로, 미켈란젤로 등 이후 전성기 르네상스 화가들은 더욱 세련되고 자연스러운 르네상스 양식을 탄생시킨다.

작성일. 2020. 08.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