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김해문화재단 웹진

search
세기의 대결: 브루넬레스키와 기베르티
영화 <냉정과 열정 사이>의 피렌체 두오모

<세계 미술관 기행> 이탈리아 피렌체

이탈리아 피렌체에 가면 어디에서나 우뚝 솟은 한 성당을 볼 수 있다. 바로 꽃의 성모 마리아라는 의미를 가진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 성당’이다. 사람들은 그것을 ‘피렌체 두오모’라 부른다. 영화 <냉정과 열정 사이>를 본 사람이라면, 10년 만에 두 연인이 다시 만나게 되는 피렌체 두오모 성당을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오늘은 아름다운 이 성당을 완성한 건축가와 그의 라이벌에 대해 이야기하려 한다. 세기의 대결 필리포 브루넬레스키(Filippo Brunelleschi)대 로렌초 기베르티(Lorenzo Ghiberti). 승자는 누구였을까?

두오모는 성당 이름이 아니다

‘두오모’(Duomo)는 둥근 지붕을 의미하는 이태리어로, 영어에서 돔(Dome)에 해당하는 말이다. 이태리 각 도시에 있는 가장 큰 성당들은 대부분 이 둥근 지붕으로 된 경우가 많다. 그렇다 보니 간편하게 도시 이름에 두오모를 붙여 대성당을 지칭한다. 피렌체 두오모인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 성당은 빼어난 아름다움 때문에 피렌체의 상징이자 관광 명소가 되었다. 이 성당은 1,300년 전후로 착공해 140년이 걸려 건물이 세워졌지만 마지막 돔 지붕을 완성하지 못해 공사가 중단됐었다. 직경이 46m나 되는 거대한 돔을 쌓아 올리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것을 해결한 사람이 바로 건축가 필리포 브루넬레스키다. 그는 돔을 팔각형으로 만드는 혁신적인 비책을 내놓았다. 꼭대기부터 아랫부분까지 이어지는 8개의 뼈대를 세워 돔을 강화하고 하중을 분산시켰다. 1435년, 드디어 돔이 위용을 드러냈다. 피렌체 두오모 성당은 크기와 규모도 놀랍지만 그 아름다움 또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르네상스 시대를 대표하는 작가 미켈란젤로도 ‘피렌체 두오모 성당보다 더 큰 성당은 건축할 수 있어도 더 아름답게 만들 수는 없다’고 하니 성당의 미적인 완성도를 짐작해 볼 수 있다. 이 성당 옆에는 브루넬레스키의 동상이 놓여 있다. 여기서 그는 자신이 만들어 놓은 돔을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올려다보고 있다.

조각가에서 건축가로

브루넬레스키는 건축가가 아니라 당대 아주 유망한 젊은 조각가였다. 당시 조각가들은 대개 금 세공사 출신으로 장인들 아래에서 도제로서 기술을 전수받았고, 명성을 얻은 금 세공사나 조각가들은 상당한 부를 얻을 수 있었다. 촉망받던 젊은 조각가 브루넬레스키는 어느 날 홀연히 로마로 떠나 건축을 공부하고 피렌체로 돌아와 당대 최고의 건축가가 되었다. 조각가로서도 최고의 위치에 서 있던 그가 갑자기 피렌체를 떠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그 해답은 피렌체에 있는 바르젤로 미술관에서 찾을 수 있다. 1865년 문을 연 바르젤로 미술관은 약 4만여 점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으며, 특히 르네상스 조각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컬렉션을 가지고 있다. 이 미술관에는 바로 브루넬레스키와 당시 그와 어깨를 나란히 했던 또 하나의 조각가 기베르티의 경연 작품이 나란히 걸려 있다. 바로 여기에 두 사람의 대결 이야기가 담겨 있다.


세기의 대결, 결과는

1401년 피렌체에서는 당시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던 직물 제조 조합의 주최로 ‘산 지오반니 세례당’의 북문을 제작할 조각가를 뽑기 위해 대규모 경연이 열렸다. 7명이 참가했는데 최종 심사에 24살의 브루넬레스키와 23살의 기베르티가 뽑혔다. 경연의 주제는 성경에 나오는 ‘이삭의 희생’으로서 아들 ‘이삭’을 제물로 바치는 아버지 ‘아브라함’의 이야기였다. 테크닉 면에서만 본다면 기베르티의 작품이 한 수 위다. 화면 구성은 균형이 잡혀 있고 인물들은 세밀하게 묘사되어 있으며, 사실적인 아름다움을 드러내고 있다. 아들을 제물로 바치라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단검을 쥐고 아브라함은 아들을 칼로 찌르려 하고 있다. 여기에는 신에 대한 믿음과 아들에 대한 사랑이 충돌하고 있다. 금 세공사로서의 섬세한 술을 가지고 기베르티는 아브라함의 내면의 고통을 정교하게 그려냈다. 반면에 브루넬레스키의 재현 방식은 기베르티와 조금 달랐다. 그는 이 주제의 가장 클라이맥스 부분을 선택했고 조화보다는 극적인 긴장감을 부각시켰다. 아브라함이 이삭의 목을 겨누고 이삭은 공포에 몸부림칠 때 한 천사가 아브라함을 저지한다. 작품의 구성 또한 균형보다는 그것이 담고 있는 의미를 강조한다. 하인 한명은 고개를 숙인 채 졸고 있고, 다른 한 명은 발에 박힌 가시를 빼고 있다. 각자 다른 일에 정신이 팔려 신의 기적이 일어나고 있는 줄 모르는 이들은 죄와 무지한 인간을 상징한다. 아래쪽은 세속적인 세계, 위쪽은 믿음의 세계다.

브루넬레스키의 전기에 따르면 심사단은 두 사람에게 각각의 세례당 문을 하나씩 맡겨 작업하게 하려고 했지만, 공동 작업에 관심이 없었던 브루넬레스키는 스스로 물러났다. 그래서 피렌체 산 지오반니 세례당 북문은 기베르티에 의해 20년의 세월에 걸쳐 예수의 일생이 담긴 28개의 패널로 완성됐다. 브루넬레스키는 조각 자체를 포기하고 로마로 떠나 고대 건축 유적연구에 온 열정을 쏟았다. 산 지오반니 세례당 문 경연은 브루넬레스키의 일생과 작업에서 그가 건축으로 방향을 돌리게 되는 중요한 사건이었다. 그가 혼자 경연에서 이겼다면 우리는 아름다운 피렌체 두오모를 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또한 기베르티는 북문 완성 후 피렌체에서 가장 유명한 조각가가 되었고 이후 세례당 동문까지 더욱 노련한 솜씨로 완성해 낸다. 이 문은 미켈란젤로가 했던 찬사를 본떠 지금까지도 <천국의 문>이라 불린다. 이것이 바로 르네상스 시대를 대표하는 최고의 건축가 브루넬레스키와 조각가 기베르티에 얽힌 흥미로운 이야기다.

작성일. 2020. 07.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