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김해문화재단 웹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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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가 보이는 망원경이 있었으면 좋겠다’ 싶은 나날
극장 속 관객의 고독

공연이나 영화를 보러 극장에 가서 ‘땡잡았다’ 싶을 때가 있다. 물론 제일 복 터진 경우는 본 공연이 가슴 미어지게 좋을 때지만 때로는 그러한 감동도 옆자리나 근처에 앉은 관객들의 상식을 깨는 행동 때문에 바사삭 부서지기도 한다. 그 때문에 아직 불이 꺼지지 않은 극장에서 좌석을 찾아 앉았는데 불이 꺼지고 막이 올라가고도 앞자리나 옆자리가 비면 속으로 신나게 ‘앗싸!’를 외치며 마치 그 자리가 내 자리이기라도 한 듯 쓱 좌석을 내려 가방을 올려놓는 만용을 부리기도 한다. 그런데 그런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 모든 관객에게 말이다.

코로나19로 인해 전 세계의 극장가가 문을 닫고 오로지 한국의 극장만 문을 여는 사태가 벌어졌을 때 한국의 공공극장들은 문을 닫아걸었고 상업 공연장 가운데 일부만 공연을 이어가는 상황 속에서 좁은 극장 안에서도 관객 사이의 거리 2m를 유지하라는 권고가 내려왔기 때문이다. 결국 이 강권은 없는 일이 되었지만 실제로 2m가 아니어도 어느 정도 유지하려는 시도가 가변 좌석 시스템을 보유한 극장들에서는 실제로 있었다. 인스타그램에서 화제가 된 독일의 베를리너 앙상블 극장의 좌석을 앞뒤로 떼어내는 장면이 준 스산함이 실제가 되어버렸다. 그렇게 되면 관객은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공연에만 집중할 수 있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았다.

갑상샘암을 치료하고 무대로 복귀한 배우 차지연의 복귀작인 연극 <그라운디드>가 공연된 (재)우란문화재단 우란2경 극장에 입장했을 때 본 풍경은 놀라웠다. 들어가기 전 철저한 체온 검사와 개인 연락처 기재 등의 절차는 물론, 극장 안의 좌석도 1m 간격으로 떨어뜨려 놓여 있었기 때문이다. 코로나19에도 공연을 강행하되, 관객과 스태프의 안전에 만전을 기하려는 결정이었다. (재)우란문화재단의 극장인 우란1경과 우란2경은 블랙박스 스타일의 가변형 무대와 좌석 구조이기 때문에 가능한 결정이기도 하다. 가변형 좌석이 아닌 베를리너 앙상블 극장의 경우는 좌석의 나사를 다 풀어서 해체하는 과정을 거쳐야 했다. 나는 앞뒤 양옆으로 떨어진 채 조심스레 가방을 의자에 걸었다가 바닥에 내려놨다가 겉옷을 입었다가 벗었다 하는 등의 일련의 불안을 증명하는 부산을 조용히 떨다가 이런 불안함이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대부분의 관객이 내적인 안절부절 현상을 드러내고 있었다. 일행과 같이 왔어도 일행과의 눈을 마주치기는 어려웠다. 손을 뻗어 일행에게 닿으려면 몸을 옆으로 깊숙이 기울여야만 가능했다. 어두운 극장 안에서 완전히 혼자다. 실제로 대부분의 공연을 혼자 보러 가건만 이 경험은 또 다른 외로움과 고독을 안겨주었다. 공연이 재미없다 해도, 무대를 전환하며 잠시 암전이 있다 해도 눈을 감고 그 시간을 느긋하게 기다리기도 어렵다. 갑자기 훅 줄어든 좌석 수만큼 나는 이 안에 못 들어온 최소는 두세 명의 관객 몫을 해내야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무감과 함께 마치 머리 위로 조명이 떨어지는 듯한 주목과 외로움이라는 상반된 감정을 동시에 느낄 수밖에 없었다. 무대 위 배우들은 열 명의 관객이든 백 명의 관객이든 똑같은 관객이라고 말하지만 사실 얼굴에는 마스크를 쓰고 멀리 떨어져 조용히 무대 위만 응시하는 리액션 없는 소수의 관객은 두려우면서도 고마운, 양면적 감정의 존재가 된다. 이 고독을 무엇이라 설명할 것인가. 이 두려움을 뚫고 극장에 와서 기꺼이 한 명의 외로운 관객이 되어주는 관객들에게서는 절박함마저 느껴질 정도다.

코로나19가 비말로도 감염된다는 사실이 알려진 이후 천장이 있고 밀폐된 실내에서 모이는 것은 위험하기 짝이 없는 일이 되었다. 그래서인지 유럽이나 미국에서는 오래전에 유행이 지나간 드라이브인 영화관이 다시 인기를 얻기 시작했고 심지어 오페라, 콘서트, 발레 등의 공연도 드라이브인으로 상영한다는 계획을 실행에 옮기고 있다. 그 시작으로 파리는 그 유명한 센강에 스크린을 세우고 강물에 전기 보트 38대를 띄워 한밤의 상영회를 열고 이 보트를 타고 싶은 사람들을 신청받아 1차 추첨을 마쳤다. 센강과 루아르 은행 사이에 흐르는 빌레트 운하를 가르는 전기 보트는 평소라면 관광객들이 임대해 노니느라 가장 인기 있는 저녁 시간에 한 자리에 머무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지금은 관광객은커녕 자국민들도 움직이지 않는 시기이다 보니 이런 자구책을 내놓게 되었다.

문제는 그다음부터다. 미국의 브로드웨이 극장가는 내년 1월 6일까지 폐쇄가 이미 결정되었지만 유럽의 도시들은 재정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가을부터 서서히 문을 열 계획을 세우고 있다. 하지만 베를리너 앙상블 극장의 예를 보듯이 대부분의 좌석을 들어낸 공연으로는 수익을 기대할 수가 없다. 후원자들과 세금 지원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좌석을 다 채우고도 늘 허덕이는 것이 비영리 극단의 현실이다. 반면, 개인 요트를 가지고 오거나 전기 요트를 대여해 수백만 원의 티켓값을 지불할 능력이 있는 사람들을 위한 공연은 그 나름의 수요를 유지하고 있다. 단지 형평성의 문제 때문에 과감하게 실행에 옮기지 못할 뿐이다. 안 그래도 영화보다 몇 배나 비싼 무대 장르가 팬데믹의 시대에 와서는 극단적인 고급 장르로 폐쇄적인 팬층만을 위한 공연이 되어버릴 수도 있다는 우려가 조금씩 흘러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오페라와 클래식 콘서트는 애당초 저렴한 공연이 아니었지만 몇천 석의 객석을 갖춘 극장에서 공연할 때는 학생을 위한 할인 티켓이나 마지막까지 팔리지 않은 티켓을 일정한 가격에 팔아주는 정책들이 있었기에 주머니가 가벼운 학생들이나 공연 애호가들이 무대를 즐길 여지가 있었다. 하지만 각자의 요트 위에서 보게 된다면 주머니 가벼운 사람들을 위한 좌석은 없다. 앞으로도 영원히(물론 그럴 리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되지만) 유튜브에 올라온 스트리밍 공연만 돌려볼 수는 없지 않은가.

지구를 뒤흔든 이 역병의 끝에서 무대공연의 관객들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사무치게 객석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설문 조사의 결과처럼 극장 문이 활짝 열리는 날, 그들은 이전처럼 극장을 가득 메워줄 수 있을까? 우리는 다시금 약간의 불편함을 감수하고 어깨를 맞대며 주변의 반응을 받아들이고 거기에 내 반응을 더하며 하나가 되어 무대를 즐길 수 있는 날이 돌아올 수 있을까? ‘미래가 보이는 망원경이 있었으면 좋겠다’ 싶은 나날이다.

작성일. 2020. 07.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