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김해문화재단 웹진

search
역사와 함께 그려진 빵의 의미
스트레스를 달래주는 향긋한 빵

코로나19 사태로 사람들이 집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외식하는 횟수가 크게 줄어들었다. 반면 음식을 직접 만들거나 배달 주문을 해서 먹는 경우는 훨씬 늘었다. 덩달아 배달 주문하는 빵의 매출도 많이 늘었다고 한다. 소비자들은 완제품을 사서 먹기도 하고 발효시킨 냉동 생지를 사서 에어 프라이어 등으로 구워 먹기도 한다. 향긋한 빵 냄새가 집안에 퍼지면 바이러스 스트레스가 조금이라도 덜어질 수 있을 것 같다. 이번 호에서는 빵을 그린 그림들을 살펴보자.

빵의 역사와 의미

빵은 밥과 더불어 인류가 먹어온 가장 중요한 주식에 속한다. 특히 서양 사람들에게는 가장 중요한 탄수화물 식품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서양에서 빵은 단순히 영양 공급의 차원을 넘어 역사·사회·정서적 가치를 띤 상징물 같은 것이 되어 버렸다. 밥이 한국인에게 그러하듯이 말이다.

동료 혹은 회사를 뜻하는 영어의 company는 ‘빵을 함께 먹는다’는 의미의 라틴어 ‘cum panis’에서 나온 것이다. 우리말의 식구(食口)가 ‘밥을 같이 먹는 사람’인 것과 유사하다. 기독교에서는 성찬식 때 빵과 포도주를 먹는다. 빵과 포도주가 예수의 살과 피라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이가 태어 날 무렵 쌀 한 그릇과 미역 한 다발, 정화수를 준비하여 삼신께 빌었고, 제사 때는 반드시 쌀로 지은 밥을 올렸다. 이처럼 어느 민족에게든 주식은 그들의 소망과 기원을 담보하고 애환을 반영하는 중요한 상징물이다.

빵의 기원을 따져 보면 3만 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부들이나 고비 같은 식물의 뿌리에서 추출한 녹말을 구워 원시적인 빵을 만들어 먹은 것으로 추정된다. 신석기 시대인 1만2천 년 전쯤에는 곡식 재배 덕에 곡물 빵이 만들어졌다. 빵 만드는 기술은 로마 시대에 들어 급속도로 발전 했는데, 이는 말총체로 밀가루를 곱게 고르고 반죽에 설탕을 더해 효모의 작용을 향상시킨 데 따른 것이었다. 이처럼 오랜 세월 서양인들의 입맛을 사로잡아온 빵. 서양화가들이 그린 빵 그림에서는 그 유구한 역사와 애정이 자연스레 느껴진다. 특히 빵을 앞에 두고 기도하는 사람을 그린 그림들을 보노라면, 빵이라는 것 자체가 매우 숭고한 하늘의 선물로 느껴진다.

마스의 <기도하는 할머니(끝없는 기도)>

17세기 네덜란드 화가 니콜라스 마스의 <기도하는 할머니(끝없는 기도)>는 소찬을 앞에 두고 깊이 감사 기도를 드리는 할머니를 그린 그림이다. 할머니의 집은 좁고 누추하다. 벽에는 때가 타 있고 벽지도 일부 벗겨지려 한다. 무엇보다도 식탁이 일인용 테이블이라는 점에서 이 집에는 할머니 외에 다른 누구도 살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생선 냄새가 난다고 앞발을 뻗어 테이블보를 끌어내리려는 고양이만이 유일한 가족이다. 할머니는 고독하고 외롭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할머니는 두 손을 모아 감사의 기도를 드린다. 단순히 식사에 대한 감사를 넘어 주어진 모든 것에 대해 감사를 드리는 모습이다. 그게 매우 인상적이다. 가진 것도 별로 없고 식구조차 없는데도 할머니는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것에, 지금껏 살아온 모든 나날에 진심으로 감사를 드리고 있다.

바로 그 감사의 자리에 빵이 함께 하고 있다. 비록 생선은 한 토막에 불과하지만, 빵은 크고 작은 것 여러 덩어리가 있다. 화려하고 기름진 음식은 부족해도 빵이 풍족하다는 것은 굶주림으로부터 자유롭다는 것을 뜻한다. 할머니는 지금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해 아쉬워하지 않고 주어진 것에 대해 감사한다. 부와 권세는 없어도 삶의 근원적인 필요는 신이 이미 다채워주셨다. 지나친 욕심은 불만과 좌절, 불행을 가져올 뿐이다. 할머니는 자족할 줄 안다. 테이블 위에 놓인, 화려하지는 않지만 넉넉한 빵이 그것을 증명한다. 할머니는 행복이 어디서 오는지 잘 아는 사람인 것이다.

샤르댕의 <브리오슈>

역사책을 넘기다 보면 빵을 먹지 못해 떨쳐 일어선 사람들이 있다. 바로 프랑스 대혁명 당시 베르사유 궁전으로 몰려간 여성 시위대다. 빵의 공급이 급속히 줄어들면서 빵값이 폭등하자 여인들은 “우리에게 빵을 달라!”며 과격한 시위에 나섰다. 이 소식을 들은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가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라고 하세요”라고 말했다는 야사가 있다. 그러나 이 일화는 왕비가 세상 물정을 모르는 여자인 것처럼 선전하기 위해 누군가가 지어낸 이야기라고 전해진다. 그렇다 하더라도, 이 이야기는 당시 민중이 얼마나 도탄에 빠져 있었는지 그리고 왕실은 이에 얼마나 무감각하고 무능 했는지 알 수 있게 해주는 ‘에피소드’가 아닌가 싶다.

재미있는 것은, 이때 왕비가 말한 케이크는 요즘 우리가 먹는 케이크가 아니라 ‘브리오슈’라는 빵이라고 한다. 루소의 <고백록>에는 농부들로부터 빵이 떨어졌다는 이야기를 들은 한 공주가 자신이 먹던 브리오슈를 나눠 주라고 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렇듯 ‘빵 대신 브리오슈’라는 말은 혁명 이전부터 프랑스 사람들에게 어느 정도 알려진 표현이었다.

브리오슈를 그린 그림 가운데 널리 알려진 것이 18세기 프랑스 화가 장바스티스 시메옹 샤르댕이 그린 <브리오슈>다. 그림 한가운데에 있는 먹음직스러운 빵이 바로 브리오슈다. 브리오슈는 버터와 달걀, 효모를 넣어 만든 카스텔라와 비슷한 빵이다. 버터와 설탕이 귀했던 옛날에는 여유 있는 사람들이나 즐길 수 있는 고급 빵이었다. 그 주위에 복숭아와 버찌, 마카롱 그리고 작은 술병이 곁들여져 있다. 소박한 구성이지만, 브리오슈의 존재가 은근한 풍요를 느끼게 해준다. 브리오슈 위에 꽂힌 꽃은 이 음식이 단순히 배를 채우기 위한 것이 아니라 영혼까지 채우기 위한 것임을 시사한다. 이 지점에서 예수가 한 유명한 말이 떠오른다.

“사람이 떡(빵)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그림의 꽃은 어쩌면 우리의 이상과 소망의 상징물 같은 것이라 할 수 있다. 우리는 굶주리지 않기를 원할 뿐 아니라 우리의 삶을 하나의 꽃으로 아름답게 피워내기를 원한다. 꽃이 꽂힌 브리오슈에는 그 두가지 소망이 진하게 어려 있다.

작성일. 2020. 06.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