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김해문화재단 웹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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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울한 시기를 견뎌내기 위한 ‘영상’이라는 대안
무대를 영상으로 보는 낯섦에 익숙해지기

2020년 5월 7일(목) 어두운 새벽, 문득 기적 같은 기쁨을 맛보았다. 노트북에 내장된 스피커에서 루치아노 파바로티의 ‘로돌포’, 레나타 스코토의 ‘미미’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기 때문이다. 1977년 녹화된 푸치니의 오페라 <라보엠>의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프로덕션 공연 실황이었다. 메트로폴리탄 오페라를 매일 한 작품씩 스트리밍하던 레퍼토리 가운데 화질은 많이 떨어지지만 천상에서 울려 퍼지는 듯한 이 프로덕션이 포함되어 있었다. 시공간을 뛰어넘어 지구 반대편 작은 방에 앉아 전설처럼 내려오던 공연을 보다니. 세상에, 레나타 스코토의 소프라노는 얼마나 아름다운가!

코로나19 발병 이후 공연이 대부분 취소됐고, 낯선 이와 밀폐된 공간에서 함께 하기가 두려운 지금. 사람들은 라이브 공연에 대한 목마름을 ‘스트리밍 서비스’로 달래고 있다. 게다가 전 세계 다양한 장르의 공연과 현장에 가지 않았다면 결코 보지 못했을 공연, 현장에 갔다 해도 너무 비싸서 보지 못했을 고가의 공연 들의 향연이 온라인에서 펼쳐지고 있다.

이런 현상은 미국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하우스, 영국의 내셔널 시어터, 한국의 국립극장이나 정동극장과 같은 대규모 예술단체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공연이 중단되자 배우들과 오케스트라 연주자들은 각자의 집에서 리시버를 귀에 낀 채로 합주를 하고 노래를 부르며, 외로움을 달래고 관객을 만날 기회를 찾는다. 뮤지컬 <스위니 토드>로 한국에서도 유명한 뮤지컬 작곡가 스티븐 손드하임의 90세 생일 축하 콘서트는 배우들 각자의 방에서 핸드폰 카메라로 소박하게 찍어 유튜브에 업로드됐다. 그의 전 세계 팬들은 하나씩 추가되는 영상들을 해시태그로 찾아보며 그의 생일을 함께 축하했다.

지금 우리는 지나간 연극과 오페라, 발레, 뮤지컬을 보면서 무대 공연에 대한 갈증을 해소한다. 이면에는 마땅히 해당 작품에 출연하는 배우, 창작자들에게 돌아갔어야 하지만 아마도 돌아가지 않을 그들의 출연료, 저작권료등의 문제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을 넘어 이미 본 공연을 보고 또 보는 이 절박한 심정을 무엇이라고 할 수 있을까? 온라인에 몰린 사람들은 이미 실제로 보았던 작품을 다시 보거나, 자신이 본 작품의 다른 나라, 다른 프로덕션의 버전을 찾아볼 것이다. 이것은 또 다른 신선한 자극이다. 이것이야말로 ‘이야기’가 가진 가장 중요한 기능이기도 하다. 우리는 이미아는 이야기를 보고 또 보고, 듣고 또 듣는다. 이 이야기들이 매번 새롭게 만들어질 때마다, 그 이야기를 보는 우리의 상태에 따라 다른 속삭임을 듣게 되기 때문이다.

무대 공연의 가치는 항상 ‘라이브’였다. 그 때문에 지금 수많은 무대 관련 종사자들이 할 일을 잃고 사회의 저변으로 밀려나고 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이 예상치 못했던 위기가 아니었다면 결코 접하지 못했을 온 세상의 공연들이 온라인 세상으로 단숨에 밀려들자, 정신이 아찔해질 정도의 기쁨을 죄책감과 함께 고백할 수밖에 없다. 마치 한꺼번에 이 나라 저 나라에 동시에 존재할 수 있기라도 한 듯이, 시간을 초월한 듯이, 수많은 공연을 탐욕스럽게 검색해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애당초 영화가 발명되었을 때, 지금과 같은 이야기 구조를 갖춘 영화를 만들 능력을 지닌 사람들이 많지 않았던 1910년, 1920년대 사람들은 가장 인기 있던 상업 무대 장르였던 ‘보드빌’을 필름으로 찍어 라이브 음악과 함께 극장에서 상영했다. 덕분에 그 시절의 보드빌의 흔적들이 필름으로 남겨졌다. 보드빌은 현대적인 뮤지컬의 전신 중 하나로 여러 엔터테이너가 등장해 자신의 무대를 꾸미는 화려한 쇼였다. 백 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그 무대를 필름으로 보고 있다.

코로나19 사태가 지구를 휩쓸자 다시금 사람들은 공연 무대를 필름으로 보관하는 일에 관심을 쏟기 시작했다. 현재 한국에서 무대 예술인을 위한 재정 지원금은 대부분 무대를 영상화하는 기획에 몰려 있다. 한시적인 실업 상태를 영상화를 통해서라도 타개해 보겠다는 의미겠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분명한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이제, 무대 예술가들은 어떤 방식으로 생계를 유지할 것이며, 영화와 다른 무대의 영상화는 어떤 방식을 택할 것인가. 그리고 영화가 아닌 무대의 영상화는 어떤 방식으로 이익을 창출할 수 있을까? 현재까지 무대를 영상화한 기획은 의미가 있을 만한 이익을 내지는 못하고 있다. 무대 영상화가 유튜브와 같은 스트리밍 방식으로 수익을 내는 것이 가능해진다면 라이브 장르로서의 무대의 의미는 사라지는 것이 아닐까? 게다가 화면으로 옮겨진 무대란 싱싱함을 잃은 냉동 건조 식품과도 같은 대체품 이상의 가치를 지닐 수 있을까?

그런데도 이 암울한 시기를 견뎌내기에, 영상이라는 대안은 관객의 입장에서 아주 큰 위로가 된다. 코로나19가 지난 후 무대는 어떠한 방식으로 세상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현재 미국 뉴욕 브로드웨이 극장가는 9월까지 셧다운을 연장했고, 아마도 올해 안에 다시 막이 오르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처음 맞는 이 사태가 지난 다음에 어떤 상황이 닥칠지 알 수 없지만 넋을 놓고 기다리기보다는 이 쏟아지는 영상들을 함께 보며 다음을 대비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그리고 무언가를 볼 수 있다면 서두르는 게 좋을지도 모르겠다. 언제까지 이렇게 많은 무대를 무료로 보는 호강을 누릴지도 알 수 없으니까. 트위터나 인스타그램, 페이스북에서 ‘#공연스트리밍’이라는 해시태그만으로도 수많은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작성일. 2020. 05.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