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김해문화재단 웹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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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 역할을 논하다
전염병이 돌아도 예술은 필요하다, 더 절실하게

뮤지컬 <영웅본색>, <줄리 앤 폴> 등도 공연기간이 많이 남아 있었지만 막을 내렸다. 김해문화의전당에서 2월 말에 공연될 예정이었던 육군 뮤지컬<귀환>도 취소됐다. <위윌락유> 등의 라이선스 공연도 중단됐고 열렬한 팬층을 보유한 뮤지컬 <팬레터>의 안양, 인천 공연 또한 취소돼 5, 6월 공연의 예매를 진행 중이다. 이렇게 취소된 공연들 가운데는 코로나19가 발발하기 전부터 이미 티켓판매 상황이 저조했다가 더 큰 적자를 보기 전에 코로나19를 빌미로 막을 내린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의 눈길을 던지는 작품들도 있지만, 흥행에 자신하던 작품들도 있다. 어느 쪽이 됐든 작품을 보고 싶었던 관객들에게는 상실감이 크다.

물론 공연하는 작품도 있다. 뮤지컬 불패 신화를 이어온 배우 김준수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뮤지컬 <드라큘라>는 프리뷰와 공연을 강행했다. 이 작품을 올리기 위해 대본을 대대적으로 수정하고 무대 세트를 만든 데다 대극장을 대관했고 배우들의 향후 일정도 문제가 되면서 미룰 수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뮤지컬 <드라큘라>를 상연 중인 샤롯데 극장은 바이러스 확산 방지를 위해 통로를 정문 하나만 열어두고 열화상 카메라로 드나드는 관객들의 체온을 측정한다. 별일이 없는 한 공연이 끝나는 6월까지 이러한 엄격한 통제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큰 투자금이 들어가는 대극장 공연만 공연을 강행한 것은 아니다. 제작사의 상황에 따라 취소할 수 없는 사연의 공연이 많다. 초연 공연과 비교해 새로 쓰다시피 한 뮤지컬 <마리 퀴리>는 충무아트센터 중극장 블랙에서 재공연을 시작했다. 시야장애석이 많은 극장임을 고려해도 기대했던 만큼의 관객이 찾아 주진 않았지만, 소수 관객들의 반응은 열띠다. 의도치 않은 ‘집콕생활’로 좀이 쑤신 관객들은 공연장에 오는 시간마저 소중하게 여긴다.

연극처럼 좁은 공간에서 낯선 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해야 하는 공연장에서는 체온을 재고 마스크 사용을 강제화했다. 마스크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으면 공연장에 들어갈 수 없고 공연 중에도 마스크를 벗어서는 안 된다. 마스크가 답답하다고 턱에 걸친다든가 코를 내놓아서도 안 된다. 제대로 꽉 조여 써야만 한다. 사실상 두 시간 가까이 진행되는 공연장의 좌석에서 마스크를 내내 쓰고 있자면 이만저만 곤혹스러운 일이 아니다. 안경이라도 썼다면 안경에 김이 서리고 안경을 안 썼다 해도 마스크 줄 때문에 귀가 아파지기도 한다. 하지만 누구 한 명 귀찮아하거나 불편함을 내색하지 않는다. 관객들은 극장이 열려 있고 무대 위에 공연이 상연된다는 사실에 안도하며 관객이 될 수 있음에 감사한 마음으로 공연을 본다

올해의 창작산실 작품들 가운데 연극은 공연 횟수를 15회에서 4회로 줄여서 진행하고 있다. 특히 연극들은 공연 횟수가 확 줄어들면서 오히려 조용히 매진사례를 빚고 있다. 극단 물리의 신작인 <대신목자>는 첫 공연부터 매진을 기록했다. 매진이라는 말에 깜짝 놀라는 현매 관객도 볼 수 있었다. 뮤지컬인 <비아 에어 메일(Via Air Mail)>과 <아티스(ARTIS)>는 예정대로 공연을 진행한다. 지원금으로 올라오는 작품들인지라 제작사의 여러 이해관계가 맞물리면서 공연을 강행하기로 한 것이다. 덕분에 마스크를 쓴 조용한 관객들이 조심스레 객석을 채우고 있다. 숨소리는 조용하지만, 박수는 뜨겁다.
이 어려운 시기에 보내는 응원이기도 하다.

공연장만 아니라 갤러리들도 조심스레 전시를 열고 있다. 지금의 어려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연합하는 갤러리들도 있다. 한 건물에 위치한 웅갤러리, 본화랑, 프랑스 브루지에-히가이 갤러리 한국 지점은 연합 전시 ‘W299Project’를 열었다. 전시 제목은 <서울 종로구 자하문로 299>로 입주 건물 주소에서 따왔다. 마냥 문을 닫는 것만이 정답은 아니라는 판단에서다. 대부분 입구에 손 소독제와 체온계를 구비해 두고 입장 관객들을 점검한다.

상업 공연의 경우 자체적인 판단에 맡기는 한국과 달리 지구상에서 가장 유명한 상업 공연장이 모여 있는 미국 뉴욕시 브로드웨이는 쿠오모(Andrew Cuomo) 뉴욕 주지사의 결정으로 4월 12일(일)까지 모든 공연을 중단한다. 브로드웨이는 파업이나 자연재해 때 말고는 2001년 9·11사태 때도 공연 중단 이틀 만에 문을 열어 뉴욕의 굳건함을 상징하는 곳이었으나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브로드웨이 프로듀서 및 공연장 협회는 쿠오모 주지사의 결정을 따르기로 했다. 유럽 또한 유명 극장들이 속속 휴관을 결정하는 가운데, 한국의 극장과 갤러리는 서로와 공적 의료 시스템에 대한 믿음을 바탕으로 조용히 흘러가는 모양새다.

여전히 사람들이 대규모로 모이는 행사는 위험하고 코로나19는 강력하지만, 얼어붙은 마음들을 조금씩 위로해 주는 역할을 예술이 해낼 수 있음을 얼어 붙은 듯한 극장가를 거니는 사람들의 조심스러운 발걸음에서, 갤러리를 거니는 반짝이는 눈빛들에서 확인한다. 온 가족이 재택근무를 하느라 키우는 강아지만 신났더라는 트위터의 우스개도 있지만, 언젠가는 이 모든 일들이 지나가고 새삼스레 소중해진 ‘일상’이라는 것이 깨닫지 못한 사이에 돌아와 있을 것임을 믿는다.

작성일. 2020. 03.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