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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역의 장으로 탈바꿈하는
봉하마을마을로 간 예술 - 봉하창작센터

봉하마을은 김해의 문화자원이다. ‘문화자원’으로 규정하는 까닭은 봉하마을을 정치 영역에서 문화 영역으로의 전환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지난 10년간 봉하마을은 존재 자체로 정치의 장이었다. 정치란 어디에든 존재하지만, 특히 봉하마을은 뜨거운 격정과 팽팽한 긴장이 공존하는 현실정치의 장이었다. 대통령이 임기를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온 것 자체가 이례적인 일이었을 뿐만 아니라 전직 대통령의 사저가 퇴임 후 대중의 방문지로 주목받은 것도 새로운 일이었다. 故 노무현 대통령은 봉하마을에서 생태 공동체를 일구고자 했지만, 정치적 음모가 빚어낸 비극적인 사건으로 인해 봉하마을은 격동하는 정치적 장으로 자리매김했다. 정치적 장에서 발생하는 소통 불가능성과 이데올로기적 대립 등을 극복하고 새로운 소통의장을 마련하고자 했던 그의 꿈은 남은 사람들의 몫으로 돌아갔고, 이후에도 봉하마을은 여전히 뜨거운 정치적 장으로 주목받아왔다.

봉하창작센터의 의미

그러나 이제 봉하마을은 서서히 정치적 장으로서의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민주주의 가치를 소통하고 재생산하는 사회적 장으로 전환되고 있다. 현실 정치가 갈등과 대결을 통하여 대중적으로 소통하면서 국가권력을 중심으로 새로운
합의를 하는 것이라면, 사회적 장은 대화와 소통으로 갈등과 대립을 해소하는 데 보다 유연한 틀을 가지고 있다. 사회적 장에도 갈등과 대결이 존재하지만, 적어도 정치적 장처럼 극한의 이데올로기적 대립과 는 다른 차원으로 대화하고 소통한다는 점에서 다르다. 예술은 바로 이 지점, 정치와 사회가 차별화하는 소통의 지점에서 융합과 협력을 통하여 공존과 상생의 장을 마련한다. 봉하마을에서 새로 출발한 봉하창작센터는 이렇듯 정치의 장에서 사회의 장으로 진화하면서 20세기의 패러다임인 대립과 갈등을 넘어서 21세기의 패러다임인 융합과 공존의 모델을 만들어가는 변곡점에 서 있다. 이제 봉하마을은 민주주의 가치를 지역적으로 한정하지 않고 이 시대의 보편적인 가치로 재구성하고 확대 재생산하기 위해 사회적 합의에 따른 가치생산의 기지로 작동할 준비를 하고 있다. 정치적 장에서 사회적 장으로의 전환 과정에서 소통과 융합은 필수적이다. 특히 민주주의 가치를 정치적 이데올로기가 아닌 사회적 가치로 자리매김하는 데는 문화적 소통을 매개로 한 융합적 관점이 필수적이다. 그의 묘비명에 새겨진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시민들의 조직된 힘’이라는 말의 힘 또한 이른바 미디어가 생산하는 가치 생산, 조작이 아니라 생활 세계에 기반을 둔 문화적 차원의 소통을 통하여 가능한 일이다. 이렇듯 봉하마을이 처한 전환의 순간, 즉 정치적 상징을 문화자원으로 재생산하려는 이 중차대한 지점에 김해문화재단이 시작한 봉하창작센터는 문화적으로 매우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

봉하창작센터의 역할

올해의 이 시작이 만들어낸 결과와 올해 이후의 일들에 대해 다소간의 주관적 견해와 낙관적전망을 섞어 진단과 예견을 해보자면, 봉하창작센터는 문화자원으로서의 봉하마을을 견인하는 문화생산의 전진기지 역할을 할 것이다. 그것
은 분노와 원한, 대립과 갈등을 딛고 민주주의를 사회정치적인 맥락에서 문화적인 맥락으로 재생산하는 일이다. 오랜 역사 도시임에도 불구하고 동시대적인 의미에서 문화적 종 다양성이 그렇게 풍부하지 않고, 50만 인구의 다수가 산업화와 도시화에 따른 신규 유입인구이다 보니, 김해를 문화적 정체성의 구심점으로 삼을 만한 동인이 그다지 강렬하지 않은 게 사실이다. 따라서 김해의 문화 및 예술 행정은 기성의 가치만을 내세울 일이 아니라 새로운 문화를 창출하는 데 중점을 둘 수 있다. 봉하창작센터는 이렇듯 김해의 새로운 문화 창출, 특히 봉하마을의 새로운 문화 생산을 위한 전진기지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기 위하여 야심 차게 새로운 장을 열었다.

봉하창작센터의 입주작가

봉하창작센터는 새로운 문화생산의 정신을 담아 첫출발을 했다. 뜨거운 여름을 보낸 입주작가들은 가을의 결실을 보는 자리에서 각각 다른 모습으로 봉하의 비전을 이야기했다. 첫해의 봉하마을표 예술은 각자 다른 색채로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정치인과 사진가의 개인적인 만남이라는 사적인 인연을 보편가치로 확장해나가는 과정과 결과를 보여주는 작업으로부터 문학서사를 시각 서사로 연결하는 동화작업, 김해의 근현대를 탐사하고 기록을 보관한 작업, 문화적혼성이라는 김해의 현실을 중층적 레이어로 담아 낸 젠더 이슈 작업에 이르기까지 다종다양하다. 사진가 최광호는 故 노무현 대통령과의 사적인인연을 사후에 새로운 작업으로 풀어냄으로써 봉하마을에 위치한 창작센터로서의 의미를 십분 살려냈다. 문학 기반의 강지예는 그림책 만들기 작업을 통하여 생활예술 활동의 지평을 넓혔다. 송성진과 김도영 두 작가는 김해의 근대와 현대를 체험하고 그것을 일종의 아카이브로 재구성하는 작업 과정에서 김해에 복합문화공간을 만들고 정주하기로 하여 마을로 간 예술의 성과를 남겼다. 진이칸은 허황옥을 소환했다. 식민지 여성의 정체성에 관심이 있는 그는 허황옥을 통하여 새로운 여성주의 담론을 찾고자 했다.

문화자원 봉하마을

봉하창작센터는 ‘마을로 간 예술’의 씨앗이다. 그것은 정치의 장에서 사회적 공간으로 진화하고 있는 봉하마을로 찾아간 예술이 무엇을 할 것인지를 알려주었다. 봉하마을이라는 장소의 특정성과 나아가 김해라는 도시의 문화적 정체성을
탐구하고 재해석한 작업 과정과 결과들이 봉하마을에 새로운 씨앗을 뿌린 것이다. 이 소중한 씨앗이 생태 공동체 마을의 꿈과 더불어 문화도시 봉하라는 새로운 꽃을 피우는 일이 시작된 것이다. 그것은 말과 글, 그림과 노래, 몸짓과 어우
러짐이 넘쳐나는, 그리하여 민주주의가 무엇인지를 들려주고 보여주는 문화자원으로서의 봉하마을을 향해 나아가는 대장정의 첫걸음이다.


작성일. 2019. 10.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