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 영화 ‘파묘’가 개봉했다. 당시 매체들은 배우 김고은이 무속인 역할을 완벽하게 소화해 냈다는 기사를 쏟아냈다. 굿판을 실감 나게 그려냈다고 했다. 그즈음 언니에게서 파묘를 보러 가자는 전화가 왔다. 평소 공포영화는 선호하지는 않지만, 호기심이 발동해 따라나섰다. 결론적으로 내게는 조금 낯선 영화였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이런 장르의 영화를 오컬트(Occult) 영화라고 한단다. 악령, 사후세계 등 초자연적인 소재를 다룬 영화를 칭한다. 파묘 역시 수상한 묘를 이장한 풍수사, 장의사, 무속인에게 벌어지는 기이한 사건을 담고 있다.
이 영화는 개봉 한 달여 만에 1000만 관객을 동원했다. 베트남, 호주, 인도네시아 등 해외에서도 상영돼 인기를 끌었다. 이후 한국 무속신앙에 흥미를 느끼는 외국인들이 늘면서 한국의 사주카페와 신점 체험을 하는 외국인 관광객이 급증했다는 기사가 나기도 했다. 관광업계에서도 점술 투어 프로그램을 내놓았다는 소식이 들렸다. 관광 콘텐츠라는 게 기획자가 머리를 쥐어짜 내 만든 새로운 것만을 가리키는 건 아니라는 걸 보여주는 사례다.
사실 이번 기고를 통해 고백하자면 나는 최근 기독교가 모태 신앙인 친구를 데리고 철학관을 방문한 적이 있다. 물론 나도 10년간 교회를 다녔으니 나무라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여러 가지 이유로 자아 정체성이 궁금하다는 친구를 보니 문득 철학관이 생각났다. 일단 ‘통계학’이라는 말로 친구를 꼬드기는 데 성공했다. 경험이 있는 나로서는 처음 철학관에서 사주풀이를 듣는 친구 모습이 아주 웃겼다. 사주 보는 분을 마치 예언가처럼 여기고 질문을 하는 모습도 우스웠지만, 그들만의 용어를 알아듣지 못해 딴소리하는 건 더욱 그랬다.
친구도 태어나 처음 접해본 문화가 신기했는지 한참을 웃었다. 본의 아니게 통역사 역할하고 철학관을 나온 후 친구와 많은 대화를 나눴다. 점괘가 어땠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동안 그녀가 어떤 생각을 해왔는지 알 수 있어서 좋았고, 또 하나의 추억을 더할 수 있어 좋았다. 굳이 정리하자면 그날 친구는 외국인 관광객처럼 점술 투어를 체험한 셈이다.
점술 투어가 아니어도 우리 생활 속에는 수많은 종류의 관광 콘텐츠들이 산재해 있다. 얼마 전 누군가의 SNS에 게재된 짧은 동영상을 본 적이 있다. 서울 사람과 경상도 사람을 구분하게 한다는 일명 ‘블루베리 스무디’ 시연 영상이었다. 결국은 경상도 사투리를 소재로 한 것인데, 서울 사람과 경상도 사람이 말하는 블루베리 스무디의 억양은 극명하게 갈렸다. 아마 ‘빵터졌다’라는 표현은 그때 쓰는 말일 테다. 그 단어만 들어도 어쩐지 그냥 무조건 어느 지역 사람인지 구분할 수 있었다.
해당 영상을 본 후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사투리 체험도 하나의 문화 콘텐츠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 말이다. 경상도에서만 쓰는 단어나 사투리 억양을 관광객에게 알려주고, 따라 하게 해보고, 흥미로운 퀴즈를 풀게 하는 것도 충분히 새로운 즐길 거리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김해문화재단은 지난 7월 김해문화관광재단으로 이름을 바꾸고 ‘관광’ 요소를 강화하기로 했다. 이후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분야를 오가며 다양하고 굵직한 사업들을 추진하고 있다. 이달 초에는 지역에서 보기 드문 수준급 드론 라이트 쇼를 가야테마파크에서 선보였다. 드론 1000대가 동시에 날아올라 그려낸 금관가야는 빛으로 장관을 이뤘고, 관람객들에게 큰 호응을 얻었다. 재단은 올 연말까지 야간 개장도 불사하며 야간 콘텐츠 개발에 집중하는 모습이다.
지난 14일에는 김해한옥체험관에 복합문화공간 ‘명월’을 열었다. 명월은 2000년 전 금관가야 때 김수로왕과 허왕후가 처음 만난 ‘명월사’에서 따왔다. 1층에는 물 정원과 카페, 굿즈 숍이 들어섰고, 2층은 서점으로 꾸며졌다. 굿즈 숍에서는 지역 작가들이 만든 작품이 전시·판매된다.
김해는 역사 문화도시이고, 박물관 도시이며, 수많은 문화·관광 시설들이 지역 곳곳에 자리한 도시다. 김해문화관광재단 시설인 문화의전당, 클레이아크김해미술관, 가야테마파크, 서부문화센터, 천문대, 낙동강레일파크와 함께 각종 박물관도 많아 손가락으로 꼽기 어려울 정도다. 이러한 환경은 모두 김해시와 김해문화관광재단, 김해시민이 긴 시간 힘을 모아 만든 결과물이다. 그 수고로움이야 말해 무엇하랴. 개인적으로는 이제 큰 뼈대는 잘 구축됐다고 생각한다. 지금부터는 힘을 조금 빼고 주변을 둘러보는 여유를 가져도 좋을 듯하다.
잘 세워진 커다란 뼈대를 중심으로 조금씩 가벼운 살점들을 붙여 나가보길 제안한다. 우리 생활 주변에 흩어져 있는 소소한 소재들을 주워다가 흥미라는 숨을 불어넣어 보면 어떨까. 때로는 아이 얼굴에 붙은 수박씨가 우리에게 큰 웃음과 즐거움을 주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