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잉글랜드의 북동쪽에는 뉴캐슬이라는 인구 27만 명의 작은 도시가 있다. 축구 마니아들에게 잘 알려진 프리미어 리그의 뉴캐슬 유나이티드가 둥지를 틀고 있는 도시다. 20세기 후반까지만 하더라도 이곳은 철강과 조선을 비롯한 중공업이 성행했었다. 그러나 1980년대 이후 굴뚝산업의 퇴조로 실업자가 넘쳐나고 젊은이들은 이 도시를 떠나기 시작했다. 암울했던 뉴캐슬이 다시 활기를 찾은 것은 1997년 토니 블레어의 신노동당이 집권하고 나서부터다.
‘Cool Britannia’라는 슬로건을 앞세운 블레어 총리는 굴뚝산업은 접고 문화예술로 영국을 먹여 살리기 위한 문화정책들을 펼쳐 나갔다. 자타공인 세계 최고의 미술관으로 성장한 테이트의 초석을 다진 것도 그였다. 런던 사우스뱅크 슬럼가의 중심에 있던 흉측한 외관의 폐기된 화력발전소를 현대미술관으로 탈바꿈시켜 지금의 테이트 모던으로 키워냈다. 그러자 범죄의 소굴로 알려졌던 이곳이 런던의 문화예술중심지로 변모했다.
최근의 뉴캐슬도 신노동당의 주도하에 문화예술로 도시재생에 성공한 케이스이다. 그 중심에 밀가루공장을 리노베이션한 발틱현대미술관과 소라모양의 오페라하우스, 그리고 이 도시를 상징하는 거대한 조각 ‘북의 천사’가 버티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이 세 명물들로 인해 매해 1백만 명이 넘는 관광객이 뉴캐슬을 찾았다.
김해에 비해 도시규모도 더 작고 문화 예술적 전통이 별반 없었던 뉴캐슬이 영국의 중심적 문화도시로 성장한 사례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주지하다시피 김해는 가야토기와 조선분청사기의 명맥을 잇는 도자문화의 중심지다. 이러한 문화와 전통을 현대적으로 계승하기 위해 개관한 클레이아크김해미술관을 비롯하여 현재 열 곳이 넘는 박물관, 전시관, 기념관, 아트센터 등이 운영되고 있고 개관을 준비 중인 곳도 있다. 바야흐로 김해도 소위 문화르네상스를 맞이하기 위한 기본적인 인프라를 구축했다고 본다.
그러나 문화와 예술은 하드웨어만 갖추었다고 저절로 성장하는 것이 아니다. 뉴캐슬도 도시재생 초기에는 방문객들의 발길이 뜸했었다. 지속적인 홍보 마케팅과 교육 사업에 투자한 결과 지금 같은 성과를 올릴 수 있었다. 건국신화와 도자문화의 역사가 면면히 이어져온 김해는 지역을 넘어 국내외 문화예술의 중심지가 될 수 있는 잠재력이 많은 도시이다. 장구한 역사와 내러티브를 잘 엮어서 문화예술로 풀어내는 소프트웨어의 질적 담보는 지역 문화예술가들의 몫일 것이다. 창작활동을 직접 담당하는 주체와 지원하는 주체 간의 긴밀한 협력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