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웠던 여름에서 한 걸음 멀어지는 9월. 너무 덥지도, 춥지도 않은 날씨 덕분에 가을은 ‘독서의 계절’로도 불린다.
이번 김해생활문화동호회 취재를 통해 맺은 인연은 햇수로 8년째 김해시 구봉초등학교에서 학부모 독서 동호회를 운영 중인 ‘책품’ 회원들이다.
책 읽기 좋은 계절에 책 읽기를 좋아하는 사람들과의 대화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만남이 되었다.
8년 차 학부모 독서 동호회 ‘책품’
한적한 8월의 어느 날 오후, 구봉초등학교를 찾았다. 학교 정문에서부터 출입 일지를 작성하고, 손 소독제를 바르며 학교 내 도서관에 들어섰다. 책품 동호회 회원인 구봉초등학교 손은경 교사와 김영아 회원이 기쁜 표정으로 반겨주는 자리, 그곳에서 학부모 독서 동호회 ‘책품’의 이야기를 나눴다.
구봉초등학교에 뿌리를 둔 학부모 독서 동호회 책품은 ‘책을 품은 사람들’, ‘책 품앗이’ 뜻을 품고 2013년 시작됐다. 2000년 초부터 경기도 남한산초등학교에서 불어 온 혁신학교 바람이 이곳 김해에도 닿은 것이다. 아이들 삶을 가꾸는 행복한 교육 공동체를 만들어 보자는 마음으로 한 달에 한 번 학부모와 교사가 함께 모임을 이어왔다. 구봉초등학교는 경남형 혁신학교인 행복학교로 ‘행복맞이학교’ 2년을 거쳐 올해 행복학교를 4년째 운영하고 있다. 그 중심에 교직원뿐만 아니라 책품 회원들도 있다. 인터뷰에 함께한 손 교사는 2016년 구봉초등학교로 와서 지금까지 책품 동호회의 일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자리에 함께한 김 회원은 그보다 더 오래된 7년 차 회원으로 아들이 입학하면서 졸업할 때까지 책품 활동을 이어 왔다.
책뿐만 아니라 ‘교육’에도 초점 맞춰 운영해
책품 모임에서는 그림책부터 어린이 책, 어른 책 구분하지 않고 읽는다. 특히, 김해시 올해의 책은 빠지지 않고 읽는다. 작년 선정된 도서 『숲으로 간 사람들』은 학생, 교사, 학부모가 함께 읽었고, 해마다 지역의 학교(구봉초, 대감초, 대동초, 봉황초) 연합으로 꾸리는 낭독회 때 구봉초에서는 원전과 책을 연결해 낭독 영상을 만들어 환경과 에너지에 관한 생각을 나누었다.
“책품은 기획력과 실행력 갖춘 동호회, 서로의 힘이 되어주는 모습이 멋져…”
8년 차 동호회 책품은 현재 약 30여 명의 회원이 있고, 모임이 진행될 때는 여건이 되는 사람들이 자유롭게 참여한다. 이에 김 회원은 “매번 책 얘기만 심각하게 한다면 모임을 오래 유지하기 어려웠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책을 매개로 삼아 서로의 감정을 터놓고 희로애락을 공유하고, 진정성 있는 회원들 간의 소통이 이 모임을 따뜻하게 합니다”라고 전했다. 김 회원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이던 손 교사는 동호회의 장기 운영 비결로 ‘동호회가 추구하는 가치’를 덧붙였다. “동호회는 유기체처럼 탄생-성장-노화-소멸의 과정이 필연적입니다. 모임이 조금 더 건강하게 이어지려면 차이를 인정하고 배려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시간과 공을 들여서 모임을 챙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에게는 단지 모임에 참여하는 것만으로도 최선일 수 있습니다. 모임의 리더도 실력과 역량이 되는 사람이 맡는 것이 아니라 역할을 맡으면서 역량이 키워지는 것입니다. 그런 태도가 모여 모임을 길게 이어간다고 생각합니다.”
“구봉초등학교의 역사 함께한 동호회 그래서 더 특별해”
구봉초 재학생 자녀 둔 학부모는 ‘책품’, 졸업생 자녀 둔 학부모는 ‘댕댕이 바구니’로
동호회가 운영된 지 어느덧 8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한 가지 변화가 생겼다. 바로 회원들의 자녀들이 구봉초등학교를 졸업하면서 학교를 떠나게 된 것. 책품 회원들 간의 유난히 끈끈한 관계 덕분에 자녀 졸업을 맞은 회원들이 흩어지지 않고 졸업생 동호회 ‘댕댕이 바구니’로 파생했다. 코로나19로 올해 책품 정기 모임이 쉽지 않았던 반면, 댕댕이 바구니는 책 『이상하고 자유로운 할머니가 되고 싶어』를 읽고 다섯 번째 모임을 앞두고 있다. 김 회원 역시 현재 이 그룹에 속해 있다.
책품(댕댕이 바구니 포함)은 ‘구봉초등학교’라는 특정 연고를 가진 탓에 아무나 가입할 수는 없다. 학부모가 구봉초등학교의 재학생 자녀를 둔 경우 책품으로, 자녀가 구봉초 졸업생이면 댕댕이 바구니에 가입할 수 있다. 김 회원은 회원 모집의 말로 이렇게 말했다. “책에 대한 부담은 갖지 않으셔도 됩니다. 모임에 참여할 수 있는 분이라면 누구든 환영합니다.”
책품은 구봉초등학교의 대소사 함께한 동호회
회원들이 책과 독서라는 공통분모만으로 보낸 8년의 세월은 결코 쉽게 지나지 않았다. 책품은 단순한 동호회를 넘어 구봉초등학교의 역사를 함께한 존재다. 이와 관련해 2018년, 책품 동호회 회원들에게 큰 걱정거리가 찾아왔다. ‘김해 가야사 2단계 사업 구역에 대한 문화재 보호 구역 지정 심의’가 문화재청에서 통과되면서 김해시 구산동 일대의 교육기관의 이전 혹은 존폐의 기로에 놓이게 된 것이다. 물론 구봉초등학교도 포함 대상이었기 때문에 이 문제는 자연스레 동호회 책품의 존립 여부와도 결부됐다. 당시 비상대책위원회와 책품 회원들은 힘을 합쳐 학교 존속을 도모하며 각종 행사에 함께했다. 또한 김해시, 경남도 교육청 등과의 이견 조율에 집단의 역량을 선보인 책품 회원들은 현재 구봉초등학교의 40년 역사를 이어갈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책품, 열린 동호회로서 지역 사회와 함께하고 싶어
올해 코로나19 사태로 모임의 활동이 많이 잦아들었다. 하지만 책품 회원들은 기존에 해왔던 문학 기행이나 2학기를 마무리하는 시점마다 1년간 읽은 책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고, 내년 활동을 도모하는 북 콘서트, 인근 학교와 함께하는 낭독회 등의 행사를 코로나19 확산 정도에 따라 차츰 재개할 계획이다.
이들이 바라는 동호회의 미래상은 간단했다. 모임이 ‘열린 모임’으로서 유지되는 것. 이에 손 교사는 “학교 밖으로의 연결고리 또는 협업의 여지를 열어 두고 동호회가 운영되면 다양한 활동으로 연계할 수 있습니다. 1년에 한두 번씩은 ‘마을 학교’의 개념으로 지역 사회와 함께하는 행사를 하고 싶습니다.” 김 회원도 “구봉초등학교 혹은 지역 사회에 도움이 될 수 있다면 미력하지만, 보탬이 될 수 있는 동호회가 되기 바랍니다”라며 의견을 덧붙였다.
두 사람과의 대화를 마무리하면서 오랜 기간 독서 동호회를 진행해 온 이들에게 한 권씩의 책을 추천해 주길 부탁했다.
손은경 “재일 한국인 3세 김송이 작가의 어린 시절을 그린 『낫짱이 간다』를 추천합니다. 작가는 한국 해방 직후 오사카에서 태어나신 분으로 재일 조선인으로서 겪었던 힘든 생활과 그 생활을 당당하게 헤쳐나가는 모습이 읽는 내내 가슴 뭉클하게 느껴집니다.”
김영아 “『태양의 아이』를 추천하고 싶네요. 하이타니 겐지로 작가의 장편 소설인데, 17년간의 초등학교 교사로 근무하면서 경험한 글이고, 작가 특유의 애정과 따스함이 묻어나는 책입니다.”
“그림책의 매력에 흠뻑 빠져… 일찍 알았더라면 더 좋았을 것”
동호회 책품
활동 분야 독서
정기 모임 시간 매월 첫째 주 토요일 10시
정기 모임 장소 김해시 구봉초등학교
대표자 안경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