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한 분위기 속에 “토각토각…”, “챙… 챙…” 망치로 끌, 칼 따위를 치는 경쾌한 소리가 퍼진다. 편평한 목판 위로는 글과 그림 등이 새겨진다.
마음을 비워야 하고,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한 예술이자 한 치의 실수도 허락하지 않는 예술, 바로 ‘서각’이다.
작품 제작에 오랜 시간이 소요되는 만큼 이들의 작품은 목판과 동시에 이들 가슴에도 새겨진다.
김해시 삼정동에는 매주 수요일, 토요일 서각 삼매경에 빠진 동호회, 관선재 회원들이 모인다. 이들을 대표하는 보광(普光) 안강수 조각가를 만나 김해생활문화동호회 ‘관선재’의 서각 이야기를 들어 봤다.
안강수 조각가, 관선재 동호회 통해 ‘서각’을 알리다
안강수 조각가는 보광불교조각연구소를 운영하며 주로 사찰에서 사용하는 신상을 조각하고 있다. 조각가가 되기 전까지 그는 일반 사업가였다가 1988년, 결혼 후 일본에서 조각 연수를 하면서 불교 조각에 관심을 돌렸다. 경남 하동 지리산 자락의 불자 집안에서 태어난 그에게 불교와의 인연은 자연스러웠다.
그런 그가 지난해, 김해에서 서각 동호회 관선재를 운영하기 시작했다.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의 일원이자 예술가 중 한 사람으로서 사회적 책임감을 느낀 안 조각가는 자신의 재능을 십분 살려 문화적 보시를 결심한 것이다. “물질적 보시에는 한계가 있어 문화를 보급하는 측면에서 봉사 실현의 길을 택했습니다.”
관선재라는 이름은 양산에서 출발했다. 평소 안 조각가가 가까이 지낸 권승열 박사가 학습 의지가 있는 일반인들이 편하게 공부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마련한 공간이 바로 관선재인 것이다. 이 공간에서 권 박사는 일반인을 상대로 인문학을 가르치는 등 남다른 사회 활동을 펼쳐 왔다. “보광이라는 제 호(號)도 있지만, 그분의 숭고한 뜻을 기리고 전달하기 위해 동호회 이름으로 ‘관선재’라는 이름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서각 동호회지만, 너무 서각 활동에만 집중하면 회원들이 지루할 수 있으니 유명한 교수님들께서 인문학 강의도 한 번씩 해주고 계십니다.”
맹자(孟子) 曰
“다른 사람에게서 선을 취해서 자신의 선으로 만들고 선을 행하는 이런 행위는 곧 사람들이 더욱 선을 행하도록 돕는 것이다. 그래서 군자에게는 사람들이 선을 행하기를 돕는 것보다 큰 것이 없는 것이다”라고 하였으니, 사람의 선한 본성을 회복하기 위해 서로 보고 연마하는 관선(觀善)이야말로 공부와 인격 수양의 가장 좋은 방법이라하 겠다.
- 觀善齋記(관선재기) 中 -
서각 삼매경에 빠진 관선재 회원들
현재 관선재 동호회는 회원 수 12명으로 운영되고 있다. “누구나 우리 동호회에 오시는 걸 환영합니다. 하지만 일부러 회원 수를 늘리고자 홍보 활동을 하지는 않고 있죠. 동호회 정기 모임 때는 서각 수업과 회원들의 작품 제작 활동을 병행하는데, 제가 불교 조각가라고 해서 불교와 관련한 작업을 하지는 않습니다.”
이들은 주 2회 수요일 19시에 시작해 두세 시간가량, 토요일 11시부터 대여섯 시간가량 동호회 활동을 펼치고 있다. 최근 코로나19 여파로 인해 약 두 달간 동호회 운영을 중단하기도 했지만, 회원들이 보이는 서각에 대한 열정과 요청에 못 이겨 손 소독제를 비치하고 마스크를 쓰는 등 철저한 예방 수칙 준수 아래 동호회 활동을 조심스레 재개했다.
이토록 관선재 회원들이 서각에 대해 열의를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안 조각가는 덤덤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자신이 좋아하는 글귀나 그림, 채색 등을 작품화할 수 있다는 점이 서각의 큰 매력입니다. 그래서일까요? 한 번 서각을 배운 사람은 쉽사리 그만두지 않고 오래도록 취미로 삼는 분이 많습니다. 또한, 작품 제작에 돌입하면 완전히 몰두하기 때문에 서각 삼매경에 이르죠.”
안 조각가는 관선재 활동이 시작된 지난해를 반추하며 자신의 동호회 운영 철학을 전했다. “보통 동호회를 운영하다 보면 의견 차이로 갈등이 생기곤 하는데 우리는 좋은 마음으로 서각을 시작한 사람들인 만큼 서로에게 선한 영향력을 공유하고, 회원들이 즐겁게 서각 활동을 펼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고 있습니다. 자율적으로 작품 활동을 하고, 선의의 경쟁을 통해 회원들의 서각 실력이 향상되길 바랍니다. 또한, 회원들과 함께하는 동호회를 제 것으로 생각해서도 안 되겠죠.”
동호회 작품 제작 활동 통해
지역 사회 볼거리 제공하고 봉사로 연계할 것
봉사 활동에 관심이 많은 안 조각가는 지역 사회 공헌에 초점을 맞춘 동호회의 운영 목표를 밝히기도 했다. “김해시 안에 정말 다양한 분야의 단체가 활동하고 있음에도 지역 사회를 위해 활동하는 단체는 많다고 느끼기 어렵습니다. 우리 관선재는 서각이라는 분야를 통해 김해의 특성과 상징성이 돋보이는 소재들을 작품화하여 다양한 전시 활동을 펼치고, 김해 시민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이와 같은 활동이 이슈화되기 위해서는 서각뿐만 아니라 다양한 분야의 예술 활동이 함께해야 합니다”라고 주장했다. 또한 “이러한 일이 성공적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시에서도 유연한 작품 활동 지원 시스템이 갖춰져야 합니다. 일례로 일시적 행사와 상금 지급을 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지급될 상금을 다음 전시를 위한 상금이나 마일리지처럼 제도화한다면 김해 예술 진흥에도 도움 될 것”이라며 관공서의 적극적인 관심에 대한 필요성을 역설했다.
대화를 갈무리할 즈음, 그는 관선재의 활동 목표와 계획을 말했다. “코로나19의 확산으로 인해 이번 여름은 활발한 활동을 펼치지 못했습니다. 올가을 전국의 다양한 장소를 작품화해서 김해에서 전시를 펼칠 것이고, 울산의 반구대 암각화를 가구로 만들려는 계획도 세웠습니다. 회원들의 작품 전시 활동도 중요하지만, 작품 판매까지 잘 이루어져서 지역 사회에 봉사로 이어질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서각을 하는 동안은 물아일체를 경험… 결코 따분한 취미 아니야”
“전시에 화환 대신 ‘쌀’을 요구해 주변 어려운 단체에 기부하기도”
동호회 관선재
활동 분야 예술(서각)
정기 모임 시간 수요일 19:00~ / 토요일 11:00~
정기 모임 장소 김해시 삼정동
대표자 안강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