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삶은 ‘엄마’가 된 후로 완전히 바뀐다. 아이의 어머니, 남편의 아내, 어머니의 딸, 시가의 며느리 등 맡아야 하는 역할이 많아지기 때문이다. 이들이 진정 바라는 것은 이 모두를 저버리는 것이 아니라 그중에서도 오롯이 자신으로의 모습을 잃지 않는 것이다.
김해 내외동에는 그 바람을 행동으로 몸소 실천하고 있는 주부들이 모인다. 열정적인 춤과 노래, 연기로 한껏 자신을 표출한다.
그중 극단을 책임지고 있는 배소완 단장과 김은희 뮤지컬 강사를 만나 이들의 꿈 가득한 동행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김해생활문화동호회, ‘언니’가 뭐니?
김해생활문화동호회 뮤지컬 극단 ‘언니’는 4명의 주부가 모여 2017년 ‘김해에 거주하는 주부 누구나’ 가입이 가능한 시민 동아리 형태로 시작했다. 결혼과 동시에 사회적 활동에 제약이 많은 주부가 모인 자리였기 때문에 모임의 주된 화두는 한동안 자아 상실, 우울증 등과 같은 무거운 이야기였다. 하지만, 뮤지컬의 매력에 흠뻑 빠진 단원들은 금세 우울을 극복해냈다. 매주 금요일마다 김해 문화의집 또는 회현동 소극장에 모여 끼와 열정을 발산하던 언니는 점차 진정한 동호회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3년이 흐른 현재 극단 언니는 ‘2017~2019 김해가야문화축제’, ‘2017, 2019 전국생활문화축제’, ‘2018 김해시 평생과학 학습축제’ 등 여러 행사에 참여해 <빨래>, <하이스쿨 뮤지컬>, <헤어스프레이>, <레베카> 등의 뮤지컬을 소화하며 활발한 활동을 펼쳐오고 있다.
이들은 극단명이 ‘언니’라는 점에서부터 사람들의 이목을 끈다. 언니의 배소완 단장은 극단명이 언니로 정해진 이유를 “여성들이 모여 있다는 특수성, 나이를 떠나 단원들끼리는 물론 시민들에게도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는 이름을 고민하던 중 ‘언니’라는 이름을 붙이게 됐습니다”라고 밝혔다.
“언니가 함께하고 있는 시간이 단원들 각자의 일에 활력소가 되면 좋겠습니다.”
극단 언니가 공연을 준비하고 있는 모습을 지켜보면, 단원들이 단순히 동호회 활동을 취미로 임하는 것이 아니라는 의지를 느낄 수 있다. 이들의 가장 큰 특징은 구성원의 다양한 직업군인데, 그 특징을 잘 살렸다. 예술 분야의 강사와 영어 강사, 시조 작가, 전업주부, 심리상담사, 보험설계사, 구연동화 강사 등 여러 영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만큼 각자의 능력도 다양해 단원들이 힘을 모아 직접 안무, 노래, 의상, 분장, 대본, 소품 제작, 홍보 등을 책임진다. 그뿐만 아니라 언니는 자체적으로 뮤지컬 수업을 진행하고, 교육을 목적으로 현역 뮤지컬 배우를 초빙해 더욱 완성도 높은 무대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늘 좋은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공연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함께 연습 시간을 맞추거나 공연 무대를 위한 의견을 주고받으면서 종종 난항을 겪기도 했다. 배 단장은 “각자의 사정을 고려하다 보면 동선이나 춤, 대사 등 수정 사항을 모든 단원에게 반영하는 데 상당한 시간을 소모하기 때문에 힘이 빠지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런 과정을 이겨내 성공적인 무대를 만드는 짜릿함도 극단의 성취를 더하는 요소가 되기도 합니다”라며 꿋꿋한 모습을 보였다.
“무대 위에서만큼은 온전히 자신의 모습으로서 당당한 모습의 단원들이 되길 바랍니다.”
단원들과 함께해서 행복한 극단 언니
‘뮤지컬’이라는 장르의 특성상 무대 위에 서야 하는 일이 많다. 배 단장과 김 강사는 김해 시민들에게 선보인 무대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무대를 ‘종로난장의 허왕후 신행길 퍼레이드’로 꼽았다. 언니는 퍼레이드 무대에서 우수상을 받기도 했다. 배 단장은 “복고 의상을 갖추고 단원들의 자녀들을 포함한 10~50대 20여 명이 함께 퍼레이드를 하고 난 뒤 공원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면서 잊을 수 없는 추억을 만들었습니다”라고 말했고, 김 강사는 “자녀들은 멋진 어머니의 모습을 보고 긍정적인 에너지를 얻고, 어머니들은 자녀들과 소통할 수 있어 모두가 행복했던 공연이었습니다”라며 지난날을 회상했다.
극단을 운영하는 데 앞장서 있는 두 사람의 목표는 명확하고 뚜렷했다. 바로 단원들의 행복이다. 배 단장은 “언니는 무대에서 악기나 기구 등 겉으로 드러나는 장치를 많이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무엇보다 단원 개개인이 가장 눈에 띕니다. 그래서 단원들은 항상 새로운 것을 선보여야 한다는 중압감을 느낍니다. 느리더라도 꾸준히 성장하는 팀이 되길 바라고, 언니가 함께하고 있는 시간이 단원들 각자의 일에 활력소가 되면 좋겠습니다. 무대 위에서만큼은 온전히 자신의 모습으로서 당당한 모습의 단원들이 되길 바랍니다”라는 바람을 밝혔고, 김 강사는 “뮤지컬은 우리에게 특별한 선물 같은 존재입니다. 지금도 삶의 애환을 단원, 관객 들과 함께 노래하며 행복을 찾아갑니다. 게다가 단원 각자의 재능을 지역과 사회에 나눌 수 있는 생활문화동호회가 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습니다”라며 의견을 덧붙였다.
두 사람은 더 나은 언니를 만들어 가기 위해 (재)김해문화재단 측에 바라는 바도 잊지 않고 전했는데, 이에 대해서는 김 강사가 먼저 입을 열어 ‘지원’에 관련한 의견을 내놓았다. “김해 내의 생활문화동호회 활동이 활발하고, 다채로워질 수 있도록 다른 동호회와 관련자 등이 한 자리에서 만날 수 있는 네트워킹 행사, 연습 공간 제공 등 많은 지원과 응원을 부탁드립니다.” 뒤이어 배 단장은 ‘무대 기회’를 언급했다. “일반생활문화동호회도 김해문화의전당 등 공연을 할 수 있는 자리를 많이 마련해주시면 좋겠습니다. 김해 시민을 만나고 소통하며 실력을 키울 수 있는 언니가 되길 원합니다.”
“김해 시민을 만나고 소통하며 실력을 키울 수 있는 언니가 되길 원합니다.”
무대에 서고 싶은 마음 굴뚝같아
지난 2월, 언니는 그웬돌린 피어슨의 작품 <버지니아 그레이의 초상>으로 회현동 소극장에서 낭독극을 펼칠 계획이었으나 모든 계획이 수포로 돌아갔다. 일상생활 속에 불쑥 찾아온 코로나19 사태 탓에 모든 일정이 무기한으로 연기되고야 만 것이다. 배 단장은 “공연을 준비하던 단원들 모두 사기가 저하됐지만, 이 사태가 어서 진정되길 바랄 뿐”이라며 안타까운 마음을 드러냈다. 이에 김 강사 역시 “<버지니아 그레이의 초상>은 신입 기자가 한때 명성을 크게 얻은 여가수의 죽음에 얽힌 진실을 추적하며 유령들을 차례로 만나는 이야기인데 인간의 내적 혼란을 보고, 진실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볼 수 있는 재미있는 작품이어서 무대에 올리고 싶습니다”라며 다시 무대에 서는 날을 꿈꿨다.
언니의 첫 시작은 주부들로 구성됐지만, 이제는 함께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제한을 하지 않고 있다. 뮤지컬에 관심 있는 여성이라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도록 극단의 문을 활짝 열어뒀기 때문이다. 현재 15명의 단원 중에서도 이미 창원, 양산 등 인근 지역의 단원들이 함께하고 있다. 하루빨리 코로나19 사태가 해결되어 언니 단원들이 더욱더 많은 기회를 만나, 많은 무대 위에서 끼와 열정을 펼칠 수 있는 ‘그날’이 오기를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