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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예술로 태동하는 김해를 꿈꾸는 조각가, 김영원
창원 출생의 김영원 조각가, 김해서 배태된 예술혼 불태워 세계로, 다시 김해로!
글.권혁제 에디터 사진.권혁제 에디터
지난 11월 30일(수), 김해문화의전당 로비와 진입로에 3~5.2m에 달하는 대형 예술 작품 세 점이 우뚝 섰다.
세 작품 모두 세간에 ‘서울 광화문 광장에 세종대왕상을 제작한 조각가’로 잘 알려진 김영원 조각가의 작품,
<그림자의 그림자> 시리즈다.

김영원 조각가는 중·고교 시절, 김해 진영읍의한얼 중·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김해에서의
연(緣)이 시작됐다. 김해에서 배태된 그의 예술혼은 점차 전 세계로 뻗어나갔다.
그리고 최근, 일부가 김해로 향했고 앞으로도 수많은 작품이 김해 시민들 곁으로 돌아올 예정이다.

‘예술’이라는 영역에서 평생을 바쳐온 고목(古木)과도 같은 존재의 작품이
김해 문화·예술의 허브 역할을 하는 장소,김해문화의전당에 자리하니 그 상징적
가치는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다.

그를 직접 마주해, 예술가로서 태어난 시점부터 오늘날까지의 시간을 함께 돌아보며 문화와
예술이 꽃피는 ‘내일의 김해’를 논했다.

Q1-1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조각가로서 예술을 시작 하기 전, 미술에 관심을 두게 된 기단이 궁금합니다

어린 시절 창원에서, 정말 가난하게 자랐습니다. 초등학생이기 전부터 소에게 먹일 여물을 베고, 먹이를 주는 일이 일상이었습니다. 흙을 스케치북 삼아 나뭇가지로 그림을 그리며 혼자 놀았습니다. 제가 초등학생 때는 보조용 교육 자료를 직접 그려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선생님께서 제가 전담하여 그리도록 하셨고, 그 대가로 저녁밥을 주셨습니다. 방학에는 숙제로 소 그림을 잔뜩 그려서 개학 때 제출했는데, 그 그림이 학급 뒤편에 걸리는 모습을 보면서 그림에 대한 흥미를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Q1-2 작가님께서 예술에 대해 본격적으로 ‘활동’이 시작이 된 시기는 김해로 진학하면서부터라고 들었습니다

한얼중학교로 진학했는데 당시 미술부가 있었지만, 여전히 힘들던 가정 형편 탓에 학교 일과가 끝나면 집으로 가야 했습니다. 미술 선생님의 미술부 활동 권유가 있었지만, 학교 공부가 끝나면 집으로 돌아가 농사를 지어야 했습니다. 항상 지쳐 잠드는 일상이 반복됐는데 주변 친구들은 고등학교로 진학하는 모습을 보고, 저도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싶어졌습니다. 할아버지께 ‘고등학교 보내주시면, 군수가 되어 돌아오겠습니다’라는 약속과 함께 고등학교에 입학했죠. 이후 미술 선생님께서 저의 소질을 알아보시고 ‘이번 주 토요일, 김해에서 전국학생미술대회가 있으니까 비닐에 점토를 싸서 가지고 오너라’라고 하셨습니다. 미술부 친구들을 따라갔는데 그때, 고등부 최고상을 받게 됐습니다. 이후로 수채화 등 다른 미술 영역에서도 대회에서 상을 자꾸 받으니, 예술적 재능이 제게 있다는 생각도 하게 됐습니다.

Q1-3 군수와 예술가 사이 고민이 많으셨겠습니다

할아버지께서 아주 엄하신 유학자였기 때문에, 공부를 잘해서 안정적인 직업을 갖길 원하셨습니다. 하지만 막상 시골에서 입시 공부를 하던 제가, 가까운 대도시인 부산의 학원에서 입시를 준비해 보니, 제 성적으로는 도저히 서울대 법대에 갈 실력이 아니라는 한계를 느꼈습니다. 당시에 생각이 참 많았는데, 옆에 홍익대학교 미대 입학을 위해 재수하는 친구가 한 명 있었습니다. ‘너 미술 하면 배는 안 굶고 살겠다’라는 친구의 말을 따라 실기를 준비했고 3개월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막무가내로 입시를 준비했습니다. 그리고 같이 시험을 쳤는데 그 친구는 떨어지고, 저는 합격을 했죠.

Q1-4 이후 대학에서는 어떤 작품들을 만드셨나요?

장학금을 받으며 학교에 다녔고, 대학 생활은 실기실에서 거의 다 보냈습니다. 국전에 출품해서 입선을 받고, 추상 미술을 시작했습니다. 대학교 3학년때 첫 ‘전국 학생 실기 대회’가 열리면서 조소 부문에서 그랑프리를 받았습니다. 교수님과 선후배, 동기들이 칭찬해주니 제 작품에 대해 ‘전통에 대한 거부의 몸짓’이라며 정말 으쓱대고 자만했던 기억이 납니다. 이후 군대에 가고 한창 힘들던 때, 대학 시절을 생각하고 버티곤 했습니다. 그런데 문득, ‘모든 문화와 예술은 그 지역, 그 역사에서 태동한다’라는 문장이 제게 크게 다가왔고, 여태까지의 행동들이 정말 부끄러워졌습니다. 미술사, 미학 등 모든 지식에서 서양의 것이 대부분이고, 우리의 전통은 없는데, 마치 우리 역사인 듯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때부터 저만의 정체성을 찾고 저의 미술에 대한 개념을 바로 잡기 위해서 이론 공부를 다시 하기 시작했습니다.

Q2 김해시에 기증해주신 <그림자의 그림자> 시리즈는 세계적으로도 예술성을 인정받은 작품입니다 기증하신 세 작품에 대한 설명을 자세히 듣고 싶습니다

<그림자의 그림자> 시리즈는 ‘인체’에 대해 실체가 아니라 그림자에 불과하다는 메시지를 표현합니다. <홀로 서다>는 작품을 바라보는 모든 방향에서의 관객의 시선이 ‘정면’이게끔 의도한 작품이며, <꽃이 피다>는 2013년 이탈리아 파도바시 초청 전시의 작품으로, 중앙을 향해 인간의 형상이 꽃 피듯, 레이어가 포개진 형식을 선보입니다. <바라보다>는 LED를 활용해 ‘복제에 의한 무한 증식’의 형상을 보이며, 기존 작품에 첨단 기술이 활용된 형태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Q5 광화문광장의 랜드마크인 세종대왕 동상 관련 인터뷰에서 ‘공간’에 대해 깊게 고민하셨다고 답하셨습니다 조각품과 공간의 관계에 대한 작가님의 고견이 듣고 싶습니다

작품은 그저 만들어졌다고 해서 끝이 아닙니다. 동상이 놓일 환경을 중심축으로 놓고 근처 유명한 빌딩들 사이에 있어도 존재감이 묻히지 않는 규모를 생각해야 했고, 군주는 항상 남쪽을 바라보며 백성을 아우르는 우리 전통성을 부여해서 정남형으로 방향을 정했습니다. 광장의 형태가 좁아서 시민들이 통행하는 데에 문제되지 않게 만들어야 했습니다. ‘세종대왕’의 발명품 세 점도 앞으로 일자로 놓았고, 동상 뒷면에는 '세종 이야기'라는 지하 전시장으로 연결되게끔 하는 등 공간 구성에도 상당히 많은 신경을 썼습니다. 이 모든 고려사항은 그 환경과 특성에 대해서 제대로 알지 못하면 반영할 수 가 없는 것들이죠.

Q6 작품을 준비하실 때, 작가님의 ‘작품을 대하는 하루 일과’에 대해서 설명해주시겠습니까?

인생이 원래 오직 일 뿐입니다. 언젠가 농부가 매일 농사 지으러 나가듯이 작품 작업하러 나간다고 말한 적 있습니다. 작업실에서 노는 게 가장 재밌는 오락이기 때문에, 눈만 뜨면 작업실에 작업을 하러 가죠. 어디 좋은 곳을 가도 마음이 편치 않더라고요.

Q7 김해시가 작가님의 성명을 딴 미술관을 만들 계획을 밝혔습니다 작가님께서 바라는 미술관의 모습과 방향성에 대해서 듣고 싶습니다

박물관 같이 작품을 전시해 두고 멈춰 있는 미술관은 원치 않습니다. 무릇, 공간은 살아 꿈틀거려야 합니다. 여러 가지 이벤트를 통해서 김해 시민, 젊은 예술가들과 함께 무언가 새롭고 창의적인 몸부림이 생겨나길 기대합니다. 김해로 작품들을 가져가는 이유는, 김해에 새로운 문화의 꽃이 피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김해는 찬란한 문화가 숨쉬던 역사를 간직한 곳인데, 이대로 멈춰선 안 됩니다. 김해의 예술과 문화가 살아 숨쉬고 미술 문화의 중심축이 되어 활발하게 움직였으면 좋겠습니다. 김해의 많은 문화인과 중앙에 있는 문화인들이 협력해서 신나게 노는 지역이 되기를 희망 합니다. 물론 혼자 해낼 수 없는 일입니다. 계기가 되고 싶을 뿐이고, 그 과정에 여생을 태우고 싶습니다.

Q8 마지막으로, 김해 시민에게 인사말 부탁드립니다

앞으로 김해에서 저의 많은 작품을 보실 수 있게 됐습니다. 작품들이 너무 과대평가 되거나 반대로 과소평가 되기를 원치 않습니다. 그저 있는 그대로 보고, 느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김해시 측에서 제가 김해 시민분들과 호흡할 기회를 많이 만들어주실 거로 생각합니다. 적극적으로 참여해서 함께 대화할 기회가 많아지기를 기대하겠습니다.

작성일. 2022. 12.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