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서부문화센터 스페이스 가율은 장기화된 코로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작은 위로의 메시지를 건네고자 시각예술가 켡의 〈안녕: 파인 땡큐, 앤 유?〉전을 전시 중이다. 요즘 같은 언택트 시대에 작품으로나마 서로의 안부를 나누고 싶었다는 켡 작가를 만나, 작품과 작가 본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어보았다.
켡이 걸어온 예술적 발자취
작가 켡은 평면 일러스트에서부터 영상, 설치미술까지 다양한 작품 연출을 시도하는 시각예술가로 알려져 있다. 켡 작가의 본명은 박현지다. 켡이라는 예명을 가지게 된 이유는 생각보다 단순했다. 본명이 다소 흔한 이름이라는 생각에 자신을 부를 때 ‘켠지’라 발음되는 것에 착안하여 외자인 ‘켡’으로 이름을 지었다는 것이다. 그의 초기 작품들은 내면에 초점을 맞춰 정서적 자아를 신체 기관에 투사하여 표현한 것들이었다. 하지만 점점 초점의 대상이 확대되면서 최근에는 주로 동네 시장을 스토리텔링하며 일상의 경험을 작품에 녹여내는 작품들로 변해왔다. “나 자신을 알아가는 과정으로의 작품 활동은, 자신을 제대로 알려면 나를 둘러싼 주변을 알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뻗어나갔고, 저의 탐구적 시선은 제가 사는 지역으로 확대되었습니다. 그렇게 제가 사는 지역의 오랜 문화와 역사를 담고 있는 전통시장을 주제로 작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가 걸어온 예술적 발자취를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난 괜찮아. 당신은 어떤가요?
코로나로 인해 모두가 힘든 시기를 건너고 있지만, 특히나 전시·공연에 있어서는 지금이 최대의 암흑기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지금처럼 어려운 시기에 문화예술을 향유한다는 것은 조금 뒤로 밀릴 수밖에 없고, 자연스럽게 저의 영역이 위축되는 것이 사실입니다.”그의 말처럼 문화예술계 전체가 궁지에 몰리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는 좌절하는 모습이 아니라 긍정적인 대답을 들려주었다. 이번 전시회처럼 많은 곳에서 새로운 문화예술 향유의 방향을 모색하고 있고, 켡 작가 또한 이 위기를 계기로 여러 다양한 시도들을 하게 되어 자신의 작품세계가 더 풍부해졌다는 것이다. 〈안녕: 파인 땡큐, 앤 유?〉전의 모티브 역시 이러한 시도들의 일환이었다. 코로나로 단절된 세상에서 우리가 느끼는 불안과 스트레스를 어떻게 하면 치유해볼까 하는 고뇌 속에서 작품의 모티브를 찾았다는 그의 말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안녕’이라는 단어가 소중해진 오늘날, 예술작품과 관람자의 만남을 통해 ‘난 괜찮아. 당신은 어떤가요?’라 되물으면서 서로의 안부를 나누는 전시라는 것이다. 힘든 상황임에도 이렇게 각자의 자리에서 가장 잘할 수 있는 활동을 해나가고 있구나 하는 생각에 내일의 희망을 느낄 수 있는 순간이었다.
살아있는 존재로서 불쑥 말을 건네는 작품
켡 작가의 전시회 작품들을 감상하면서 딱 드는 느낌은 ‘참 놀랍다’였다. 일러스트 작품들 속 친근한 애니메이션적 화법과 전통 민화적 요소의 콜라보는 추상과 구상의 절묘한 조화를 보여주고 있었다. 색감의 농도 차이로 더 부각되는 재료의 질감, 작품과 조명과의 공간적 거리로 표현되는 음영의 입체적 레이어, 그것들이 서로 한 몸이 되어 보여주는 복합적 완전체로서의 느낌은 감탄을 자아냈다. 작품들 하나하나가 2차원적 평면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존재로서 불쑥 말을 건네는 느낌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작품 낱장들이 촤르르 넘어가며 애니메이션을 보여주는 플립 북 박스 작품들도 아주 신선했다. 작품 앞에서 바라보면 자동으로 작동이 되거나 직접 태엽을 돌려 작동하는 작품들이었다. “언택트가 자연스러워진 요즘, 작품으로나마 직관적 소통을 하고자 했습니다. 여러 작품들이 관객과 상호 작용을 목표로 하고 있고, 안부를 묻고 있습니다.” 작품을 감상하기 위해 걸음을 옮기는 동안에도 전시된 작품들이 개별로 끊어진 단락이 아니라 유기적인 연결고리로 이어져 시너지가 발생되는 느낌이었다. 전시장 자체가 하나의 작품이라는 생각을 했다는 작가의 대답에 절로 수긍이 갔다. 이번 전시회를 준비하면서 다양한 시도에 따른 우여곡절도 많았다고 그는 말했다. “작업 과정에서는 꽤나 힘들기도 했지만 완성하여 전시가 되니 감동적이고 뿌듯했습니다. 무엇보다 함께 기획 하고 준비한 문화예술기획 단체 띠앗 여러분과 박은주 큐레이터님의 꾸준한 피드백이 참 좋았고, 저에겐 너무나 의미 있는 전시가 되었습니다.”
일상을 예술의 모티브로
대전에서 활동해온 작가는 이곳 김해에 내려와 전시 작업을 하면서 자유로운 여행자가 된 기분이라 말했다. 김해의 탁 트인 평야와 스페이스 가율만의 넓은 전시 공간, 이곳에서의 시간이 무척 좋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도 자신이 느낀 것, 생각한 것들을 시각예술로 표현하며 기존의 틀에서 벗어난 실험들을 나누고 싶다고도 전했다. “일상의 안녕이 소중해진 지금 우리의 일상이 예술의 모티브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작품으로 알리고 싶어요. 주변의 고유한 환경과 문화를 바탕으로, 제가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방법으로, 좀 더 저만의 길을 만들어 보려고 합니다.” 이번 전시회를 통해 평범한 일상의 소중함을 더 깊게 느끼고 있다는 켡 작가. 코로나로 인해 단절된 상호작용 에너지가 아쉽다는 그의 말을 들으며, 이번 작품들을 통해 그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음미해보았다. 상호작용의 부재로 정서적 안정감을 잃어가는 시간 속에서, 우리에게 치유로서의 예술의 가치와 역할이 무엇인지를 생각해보게 되는 시간이었다.